국극사

국극사

[ 國劇社 ]

요약 8·15광복 직후 창설된 창극단체의 하나.

1947년 조직된 (大韓國樂院)의 산하단체인 국극사의 대표는 (丁南希)·(趙相鮮), 이사는 (吳太石)·(愼淑)·(朴貴姫)·(劉里村)·(姜章沅)·(金載先)·(金桂鍾)·(成順鍾)·(南慶興)·(劉起龍), 단원은 (朴桃娥)·(金桂花) 외 10명이었다.

1947년 (高麗星) 작, (朴珍) 연출의 "(阿娘哀話)"를 공연했고, 1948년 유성촌(柳星村) 작, 안영일(安寧一) 연출의 ""(善花公主)를 서울과 지방에서 공연하였다. "선화공주"의 공연 때 출연자의 배역은 강장원()·백인(진평왕)·성추월(왕비)·박귀희(맛동방)·조상선(쇠돌이)·신숙(선화공주)·조순애(시녀)·오태석(상대등)·정남희(석품)·성순종(길치)·김재선(옥사정)·(사신)이었다.

서울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두자 국극사는 광주·목포·순천·여수 등 전라도 지방에서 크게 호평을 받았다. 1950년 6·25전쟁 때 국극사의 단원들은 정훈공작대(政訓工作隊)에 편입됐다가 부산에서 해체됐다. 1950년 추해상(秋海常) 작, 박춘명(朴春明) 연출의 ""(萬里長城)을 공연했다. 1952년 김성민(金成民) 작, (李扶風) 연출의 ""(烈女花)를 공연했으며, 1954년 백완(白浣) 작, (白雲) 연출의 ""(月下三更)을 공연하였다.

1953년 박녹주(朴綠珠)가 재건한 국극사는 새 단원을 중심으로 "열녀화"(烈女花)를 창단공연물로 무대에 올렸고, 국군장병을 위한 위문공연에도 나섰다. 1955년 국극사는 두 번째로 김향(金鄕) 작 "애모랑(愛毛郎)과 더벅머리"를 신마산극장(新馬山劇場)에서 공연했다. 그 후 백완(白浣) 작 "월하삼경"(月下三更)·"한양은 천리원정(千里遠情)"·"" 같은 새 창작물을 무대에 올렸다. 박귀희가 이끌던 국극사는 1957년 시범국극단(示範國劇團)으로 병합됐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1.279~80쪽, 권5.2079~83쪽
  • 『文藝總鑑』,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년, 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