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준

유성준

[ 劉成俊 ]

요약 성악가(판소리). 고종(1863~1907)·대한제국(1897~1910) 때 동편제(東便制) 명창. 전라북도 남원(南原) 또는 구례(求禮) 출생. 송우룡(宋禹龍)의 제자. 김정문(金正文)의 외숙.
출생 - 사망 1874년 ~ 1949년

김창환·의 후배이고 ·신명학과 동년배인 유성준은 (鄭春風)·(金世宗)의 지침을 받아 견문이 매우 높은 명창이었으므로, 실제보다 이론에 밝았다. 당시 그는 이론가로 (全道成)과 쌍벽을 이루었다. 하동·진주·사천·마산 등 경남서부 지역에서 활동한 유성준은 고종으로부터 참봉(參奉)직을 제수받았고, (兎鱉歌)에 뛰어났다. 그 대목은 정노식(鄭魯湜)의 『朝鮮唱劇史』에 전한다.

1909년 (圓覺社)의 폐지 이후 김창환협률사(金昌煥協律社)라는 사설 유랑창극단에서 그는 ··· 등 50여 명의 단원과 함께 주로 지방에서 공연활동을 전개하다가 1910년 한일합방의 소식을 들은 후 경상도 남해(南海)공연을 끝으로 해산하였다. 1928년 7월 28일 호남악우회(湖南樂友會) 주최 납량명창대회 때 출연했다. 1928년 (南道立唱) 방송을 위해 (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일제강점기 그가 취입한 삼국지··"조자룡(趙子龍) 활 쏘는데"·"토끼와 자라"는 오케음반에 전한다. 구례 장터에서 흥행하는 오협률사에서 로 출연했으며, 『朝光』(1938) 31호에 발표된 어조동실주인(魚鳥同室主人: 정노식의 필명)의 글 "조선광대의 사적 발달과 그 가치"에 소개되었다. 신일선과 함께 오케음반에 취입한 "낙랑공주"와 "마의태자"는 『別乾坤』(1934) 69호와 『中央』 4호의 광고에 소개되었다.

해방 후 무대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구례(求禮)에 거주하며 후학들에게 수궁가·삼국지 등의 판소리를 가르친 명창이다. 제자로 (金正文)·(林芳蔚)·(金壽岳)·(愼淑)·(姜道根)·(金演洙)·(鄭珖秀)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573~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