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월

김추월

[ 金秋月 ]

요약 성악가(여창가곡·민요). 대정권번(大正券番)·한성권번(漢城券番) 기생. 대구 출생. 1918년 당시의 나이는 22세. 원적은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현주소는 경성부 인사동(仁寺洞) 215번지. 기예는 시조(詩調)·서남잡가(西南雜歌)·경사거리·좌창(坐唱)·입창(立唱) 무소불통(無所不通).
출생 - 사망 1896 (또는 1897)년 ~ 1993년
김추월

『朝鮮美人寶鑑』(1918)에 의하면 여창가곡으로 유명한 기생이었고, 1920년대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의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남도잡가(南道雜歌)를 방송하였다.

원각사(圓覺社) 시절 김창환·송만갑·이동백 등과 함께 활동한 그녀는 김난홍·이영산홍·한경심 등과 함께 활동했고, 1930년대 "육자배기"·"흥타령"·"성주풀이" 등의 여러 남도민요를 음반에 취입했다. 이화중선·김금옥·이소향처럼 판소리 외에 남도잡가를 잘 부른 명창이었다. 김추월의 "육자배기"는 콜럼비아음반(C40009AB)에 전한다. 심청가 중 "심청자탄"은 리갈음반(C152A)에 전하며, 1927년 일축조선소리반의 『춘향전 전집』에서 이동백·신금홍 등과 함께 취입하였다(K594-A, L598-A, K599-A, K609-A, K611-A).

1927년 2월 17~20일 조선고가무회(朝鮮古歌舞會) 주최 「조선명창대회」 때 출연했고, 1927년 8월 12일 경성방송국 주최 DK명창대회 때 이동백·신금홍·강소춘·이화중선과 함께 방송했다. 1928년 3월 7일 보우친목회(普友親睦會) 주최 「남녀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1928년 3월 25일 조선음악협회(朝鮮音樂協會) 주최 「신춘남녀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1928년 7월 28일 호남악우회(湖南樂友會) 주최 「납량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1930년 9월 15일 「팔도명창대회」 때 출연했으며, 1931년 7월 1일 「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1931년 12월 29일 「독자위안 조선음악무용대회」 때 출연하였다. 1933~1941년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송연화·고영원·김채봉·정금홍과 함께 가곡·가사·"가진난봉가" 외 수십 곡의 민요를 방송했다. 1932년 4월 20~22일 전조선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三千里』(1931) 3권 9호에 발표된 "춤 잘 추는 서도기생 소리 잘하는 남도기생"에 소개됐고, 『三千里』(1936) 8권 8호에 발표된 "조선·한성·종로 삼권번(三券番) 기생 예도(藝道) 개평(慨評)"에 소개되었다. 1933년 요절한 사망기사는 조선일보(朝鮮日報) 1933년 2월 22일자에 나온다.

1938년 5월 3~4일 전조선향토연예대회 중 여류명창경창대회 때 고일심·김벽도·장학선 등과 함께 서도민요를 공연하였다. 그녀가 취입한 경성잡가 "방아타령"·"광한루가"(廣寒樓歌)를 포함한 10여 곡, 그리고 그녀가 가야금병창(伽倻琴併唱)으로 취입한 "유람가"(遊覽歌)는 일축(日蓄)조선소리반에 전한다. 김계선·박명화·한성준 등과 함께 취입한 경기잡가·"고당상"(高堂上)을 포함한 수십 곡의 민요 등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하고, 그녀가 김종조와 함께 취입한 서도속요 "배뱅이굿"은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장학선·김승진(提琴)·김영순(장구)·김계선(젓대)과 함께 취입한 "다리굿"·"베틀가" 등 여러 곡은 오케음반에 전하고, 박세명·장옥화와 함께 취입한 "난봉가"·"노래가락" 등의 민요 십여 곡은 태평음반에 전하며, 그녀가 취입한 "과거보는데" 등 여러 곡명은 『조선레코드총목록』에 전한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250~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