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률사

협률사

[ 協律社 ]

요약 대한제국(1897~1910) 시절 재인광대(才人廣大)들을 관할하고 연희하던 기관.

1902년(광무 6)에 설치된 협률사는 궁중 밖의 줄타기·땅재주·재담··창극·무용· 등의 연예활동을 관장하였다. 김창환(金昌煥)·(宋萬甲)·(李東伯) 같은 은 판소리와 창극을 맡았고, (張判介)·(趙進榮)은 ""(報念)·""(花草四巨里)·""·""·"성주풀이" 등의 (南道雜歌)를 불렀다. (朴春載)·(崔景植)·김홍도(金紅桃)·(寶貝)·강진(康津)·연연(妍妍) 등은 (京畿雜歌)··로 이름을 날렸다.

(平壤捺蕩牌)의 (文泳洙)·(李正華)는 을 비롯해 와 서도입창을 잘했다. 박춘재와 문영수는 재담(才談)을 잘하여 인기가 있었다. 특히 박춘재는 ""(張大將打鈴)·장님흉내·장사흉내·짐승흉내·개넋두리와 같은 재담을 잘 했고, 또한 발탈로도 유명하였다. 김홍도는 ""를 잘 불렀고, 보패는 새타령을 잘해서 (光武臺) 시절에 유명하였다.

참고문헌

  • 『文藝總鑑』,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년, 286쪽
  • 『民俗藝術事典』,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9년, 288쪽

참조어

협율사(協律司) , 김창환협률사(金昌煥協律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