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기

박종기

[ 朴鍾基 ]

요약 대금 연주가. 대금명인. 전라남도 진도(珍島) 출생. 소리 더늠의 대금산조(大笒散調) 창시자. 세습무가(世襲巫家) 출신.
출생 - 사망 1880년 ~ 1947년
박종기

젓대 시나위로 불리는 의 창시자로 알려진 그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젓대 시나위를 배운 뒤 수련을 쌓아 신접한 경지에 이르러, 젓대를 불면 산새가 날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1920년대에 소리 즉 의 가락을 따라 엮은 제(制)의 대금산조를 만들었다. 강백천(姜白川)과는 으로 인해 친구가 됐으며, (韓周煥)에게 산조를 전수하였다.

1920년대 (京城放送局)에 출연해 대금산조를 방송했고, 또한 산조명인 (安基玉)·(李素香)·(金雲仙)의 반주를 박종기가 맡았고, 또한 그는 대금독주와 대금산조를 방송하였다.

1927년 11월 7일 경성방송국에 처음으로 출연하여 대금독주를 방송한 이래 1941년 7월 13일까지 대금독주(63회)·대금산조(29회)·대금합주(11회)·(2회)·(4회)·(4회), 이상 총 113회 방송국에 출연했다. 총 113회 중 대금산조 이외 남도가요(南道歌謠)··봉작취(鳳雀吹)·신방곡(神房曲)·신아위·(民謠) 등의 대금반주로 출연했을 뿐 아니라, 김운선·이소향· 등의 과 ·김운선·이소향 등의 , 의 와 ·· 등의 , 그리고 의 단가와 ··문명화 등의 남도단가(南道短歌)의 로도 출연하였다.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대금산조의 박종기와 가야금산조의 김종기(『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 평전』)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대금산조의 박종기와 가야금산조의 김종기(『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 평전』)

일제강점기 그가 여러 음반회사에서 취입한 음반은 콜럼비아음반(2매)·오케음반(15매)·다이헤이음반(6매)·빅타음반(1매)·밀리온음반(1매), 이상 총 25매이다. 그가 대금으로 취입한 갈래는 대금산조와 대금독주를 비롯해 가야금병창·(南道雜歌)·단가··기악· 등 다양했다.

1927~1941년 ·· 등과 가야금병창·가야금산조·"강산유람"(江山遊覽)·"개고리타령"·"군로사령"을 포함한 20여 곡의 민요를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1931년 12월 29일 대구에서 열린 조선일보 주최 독자위안 조선음악무용대회 때 출연했고, 1936년 2월 9~11일 의 가극 배비장전(裵裨將傳) 공연 때 그는 ·· 등과 함께 출연했다고 조선일보(朝鮮日報) 1936년 2월 8일자에 전한다. 1940년 2월 20~30일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 주최 창극 옥루몽(玉樓夢) 공연 때 반주자(젓대)로 그는 ··신쾌동····과 함께 관현반주를 맡았다.

1940년 3월 18일 에서 열린 한해구제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과 함께 취입한 대금독주·"군로사령 나가는데" 등의 여러 곡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그가 젓대로 취입한 "남도 방아타령"·""·""·"쾌지나칭칭"은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일제강점기 그가 젓대로 취입한 대금산조(··)··"타령" 및 그의 반주로 고영태·(젓대)·김소희 등이 취입한 곡은 오케음반에 전한다. 그의 젓대반주로 이소향·이난향·가 취입한 가야금병창·남도잡가·단가 등 여러 곡은 태평음반에 전하며, 그가 젓대로 취입한 기악 ""(鳳長醉)·흥보가·"구만리"(九萬里) 및 강태홍의 가야금병창은 군소회사음반에 전한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367~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