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쾌동

신쾌동

[ 申快童 ]

요약 거문고 연주가. 거문고산조 명인.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16호(거문고산조)의 예능보유자. 전북 익산군(益山郡) 삼기면(三箕面) 오용리(五龍里) 출생. 호는 금헌(琴軒). 본명은 신복동(申卜童).
출생 - 사망 1910년 ~ 1978년
신쾌동

신광조의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21년 박생순(朴生順)에게 양금 풍류를, 1923년 박학순(朴學淳)에게 가야고 풍류 및 가야금산조를, 1927년 정일동(鄭一東)에게 거문고 풍류를, 그리고 1929년 백낙준(白樂俊)에게 거문고산조를 각각 사사하였다.

백낙준 가락을 배운 후 고향 익산에서 산조에 전념하고 있을 때, 당시의 명창 임방울·이화중선·이중선의 권유로 전북 부안군 줄포(茁浦) 가설무대에서 처음으로 거문고산조를 연주했고, 그 뒤 목포극장에서 명창 이동백·정정렬·박녹주와 함께 공연했으며,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에 가입하여 많은 연주활동을 벌였다.

1936년 2월 조선성악연구회의 직속단체로 창극좌(唱劇座)가 창단됐을 때 강태홍·김세준·김연수 등과 함께 창극활동을 전개하였다. 그가 활동한 무대는 서울의 부민관·단성사·동양극장·조선극장, 평양의 금천대좌(金千代座) 및 함경남도의 함흥극장이었다. 1936년 조선성악연구회 창극좌의 거문고 주자로 한주환(대금박상근(가야금)·강태홍(가야금)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30년대 후반 전북 고창군 율계 모임에서 거문고를 지도했다.

1937~1945년 국본정엽(國本正葉)·김난파·김재선 등과 함께 가야금병창·가야금산조·"까투리타령"·"농부가"·"도화타령"을 포함한 20여 곡의 민요를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일제강점기 그가 취입한 "둥가타령"·"진도아리랑"·"남도 방아타령"·"쾌지나칭칭"은 일본 빅타음반에 전하고, 거문고로 반주해 취입한 김소희·신숙·이화중선·임방울·정정렬의 노래는 오케음반에 전한다.

1937년 6월 21~25일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가극 편시춘 때 출연했고, 1938년 8월 8일 창극 옹고집전(雍固執傳) 때 중으로 출연하였다. 1939년 5월 22일 조선성악연구회 제6회 정기총회 때 이사로 당선되었다. 1940년 2월 20~30일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창극 옥루몽(玉樓夢) 때 반주자(단소)로 그는 강태홍·박동준·박종기 등과 함께 관현반주를 맡았다. 1940년 3월 18일 한해구제명창대회 강장원·김소희·김여란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광복 직후 박초월의 권유로 원각사(圓覺社)에서 박초월(朴初月)·김병두(金炳斗)와 함께 3인 연주회를 개최했고, 연세대 나운영(羅運榮) 교수의 추천으로 미대사관에서 제1회 산조독주회를 열었다. 한국전쟁기 부산에서 여성국악동호회 산하단체로 재건한 햇님국극단의 "가야금" 공연 때 박성옥·김윤덕과 함께 반주음악을 맡았다. 1953년 서울 미국공보관에서 거문고발표회를 열었고, 1954년 대한국악원(大韓國樂院) 이사로 취임했으며, 창극단체에서 거문고 주자로 활동하면서 제자를 양성하였다. 스승 백낙준이 세상을 떠나자 엇모리휘모리를 새로 만들었고, 중중모리를 확대시키고 새로운 가락을 첨가하여 신쾌동류(申快童流) 거문고산조를 완성하였다.

1958년 제1회 국악경연대회에 참가해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1959년 원각사에서 거문고독주회를 열었다. 1960년 출범한 국악예술학교(國樂藝術學校)의 박헌봉 교장, 실기교사인 지영희·이병우·성금련 등과 함께 후진을 양성했다. 1962년 국립국악원 및 서라벌예술대학 음악과의 거문고강사로 활동했고, 1964년 아시아학회의 초청으로 4개월 간 미국의 각 대학교에 순회공연을 했으며, 1965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됐고, 제자로는 강성재·김영재·김무길·김병두·성기군·양기평·윤경순·이세환·이창홍·이형환·정옥자·조위민·구윤국·황오익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현금곡전집』(玄琴曲全集 1977)이 있다. 1969년 김기수(金琪洙)가 채보한 『한국음악』 제3집에 전하는 그의 거문고산조가 5선보로 채보되었다. 1976년 12월 문화재관리국과 문화재보호협회가 공동 제작한 『한국의 음악』에서 거문고산조를 취입했고, 1997년 11월 25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서거20주기 추모연주회가 열렸다. 악보로 『현금곡전집』(1977)이 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486~88쪽

참조어

신복동(申卜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