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당포성지

통영 당포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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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통영시 산양면 삼덕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성지로 경상남도 기념물이다. 이 성은 고려 공민왕 23년(1371)에 최영(崔瑩)이 많은 병사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고 전한다. 조선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6월 2일 왜구들이 이 성을 점령하였으나 이순신이 다시 회복하여 통제영이 있을 때까지 사용되었던 성이다. 이때의 전투를 당포승첩(唐浦勝捷)이라고 하는데 옥포승첩(玉浦勝捷)에 이은 이순신의 두번째 승리였다. 당포성의 특징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2단의 기단을 형성하는 고려·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석축진성(石築鎭城)이며 평산성(平山城)으로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남쪽 방향으로 성을 쌓았는데, 남·북쪽으로 정문지(正門址)를 두고 사방에는 각각 포루(砲樓)를 설치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 높이 2.7m, 너비 4.5m이다. 남쪽 일부의 석축이 붕괴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 동서북쪽의 문루지는 잘 남아 있으며 문지에는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이 있는데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기와편과 토기편, 자기편들이 흩i져 있다. 참고로 옛 통제영의 군제를 살펴 보면 이 곳에는 만호(萬戶 : 武班 從四品의 벼슬)를 두었는데 그 임무는 우척후(右斥候)였다. 만호는 전선(戰船) 1척, 장교(將校) 6명, 사부(射夫) 18명, 화부(火夫) 19명, 포수(砲手) 24명, 타공(舵工) 3명, 격군(格軍) 120명과 군량미(軍糧米) 57석, 중미(蒸米) 3석, 미식(味食) 3석을 관장하였고, 병선(兵船) 1척에 장교 1명, 사부 10명, 포수 10명, 타공 10명, 격군 14명과 사후선(伺候船) 2척에 격군 5명과 좌초관영귀선(左哨官營龜船)을 관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진

통영 당포성지 전경

통영 당포성지 전경 당포성지는 통영 미륵도의 산양읍 삼덕리 야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된 산성으로 길이 752m의 성지가 남아 있다. 자연석 이중기단에 높이 약 2.7m, 약 4.5m의 폭으로 쌓은 이 성벽은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23년(1374) 왜구(倭寇)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최영(崔瑩) 장군(將軍)이 병사(兵士)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전승지(戰勝地)이며,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이순신(李舜臣) 장군도 왜적(倭賊)을 물리친 곳이다. 1983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통영 당포성지 성곽

통영 당포성지 성곽 당포성지는 통영 미륵도의 산양읍 삼덕리 야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된 산성으로 길이 752m의 성지가 남아 있다. 자연석 이중기단에 높이 약 2.7m, 약 4.5m의 폭으로 쌓은 이 성벽은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23년(1374) 왜구(倭寇)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최영(崔瑩) 장군(將軍)이 병사(兵士)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전승지(戰勝地)이며,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이순신(李舜臣) 장군도 왜적(倭賊)을 물리친 곳이다. 1983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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