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민속의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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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무속 신앙

제주인의 무속(巫俗) 신앙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주인 특유의 종교심성을 전승해 왔다. 그것은 탐라국 이래로 복합적인 종교적 관행 가운데서도 그 원형을 상실하지 않은 ‘뿌리의 신앙’이며, ‘고유한 체계를 가진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무속 신앙은 한반도나 중국으로부터 표류 이동해 온 북방·남방 문화의 전파로(傳播路)를 따라 흘러 들어온 불교를 흡수하게 되었다. 탐라가 고려에 예속되었을 때,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하고 있었지만, 무속 신앙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하였고, 탐라국 호국신사 광양당을 국사당으로 지정하여 오히려 무속을 국가 지배에 활용하였다. 때문에 국교로서의 불교와 민중 신앙으로서의 무교(巫敎)가 별 다른 마찰 없이 흡수되어 무속과 불교는 ‘당(堂) 오백, 절[寺] 오백’의 찬란한 무불합일의 신앙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오늘날 제주의 민중은 ‘당에도 가고 절에도 간다’는 종교 심리를 지니게 되었다. ‘당에도 가고 절에도 간다’는 말은 불교와 무속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며, 무속을 당에도 가고 절에도 갈 수 있는 ‘무교(巫敎)’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칠머리당 : 영등환영제나 영등송별제가 모두 칠머리당에서 한다. 칠머리당은 제주항 동쪽 사라봉과의 중간쯤, 바닷가의 평평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당의 형태는 58평 넓이의 정방형 울타리를 돌담으로 쌓고, 북쪽 담벽엔 신위의 위패를 만들어 붙였으며 그 앞에 제단을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다. 출입구는 동쪽으로 내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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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칠머리당영등굿 : 해산물의 풍어를 가져다 주는 영등할망을 기리는 굿으로 음력 2월 1일에 『영등손맞이』가 있고 2월 14일에 『영등송별제』가 치러진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등굿 : 해산물의 풍어를 가져다주는 영등할망을 기리는 굿으로 음력 2월 1일에 『영등손맞이』가 있고 2월 14일에 『영등송별제』가 치러진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의 영등굿은 온 마을 사람들이 당에 모여 지내는 무속적 마을 제사로, 동국여지승람, 동국세시에 영등굿 놀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영등신은 일반적으로 영등할머니라고 부르는데, 음력 2월 1일에 들어와서 같은 달 15일에 나가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영등신은 들어올 때 제주시 구좌읍 우도로 들어와 보말(고동류의 일종)을 까먹으며 제주의 해변을 도는데, 이때 미역씨·전복씨·소라씨 등을 뿌려 번식케 하고 떠난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2월 1일에는 영등환영제를 지내고, 같은 달 13~15일 사이에 마을별로 날을 잡아 영등송별제를 지내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영등굿이라 하며 어부나 해녀들의 해상 안전과 생산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기도하다.

오늘날의 영등굿 놀이는 마을의 여성들이 주관하여 심방(무당) 5~6명을 불러다 북·징·설쇠(꽹과리)·장구 등 악기를 울리며 노래와 춤으로 집행하게 된다.
제일(祭日) 아침이 되면 심방들과 마을의 임원들은 당에 모여 큰 대를 세우고 각종 어선의 깃발을 휘황하게 걸어 놓게 되는데 그 밑에는 제상을 마련하고, 좌우에 마을의 각 집에서 차려온 제물을 진설한다. 제례는 각종 악기가 울리는 가운데 정장을 한 수심방[首巫]이 첫번째 초감제, 두번째로 용왕맞이, 세번째 씨드림과·씨점, 네번째로 산받음, 다벗번째 액막이, 그리고 마지막인 배방선을 끝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영등환영제 : 영등굿에서 영등신이 제주를 찾는 음력2월 초하루에 '영등신맞이(영등환영제)' 를 말한다.

*영등송별제 : 영등굿에서 영등신이 제주를 떠나기전 하루전날인 2월14일날 거행되는 행사가 '영등송별제'이다.

*지드림 : 해녀들이 공동으로 치루는 집단 의례로는 영등굿이 있다. 개인 의례로는 음력 정초에 ‘할망당’에 가서 빌거나 바다에서 용왕에게 비는 ‘지드림’을 행한다. ‘지드림’은 영등굿이 끝난 때이거나 새해가 되어 처음 물질을 시작할 때 밥이나 쌀을 종이로 싼 후 실로 묶어서 바다에 던지는 것을 말한다. 지드림은 요왕신에게 그리고 바다에서 죽은 영혼에게 바치는 조그마한 정성이라 할 수 있다.

*해신당 : 종달 생개납 돈짓당이라 하며, 바닷가에 비교적 큰 바위가 솟아 있고 그 앞에 속칭 '개꽝낭'이라 하는 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이 나무에 지전과 물색이 걸려 있다. 제단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어부와 해녀들이 다니는 당이다. 바다의 신, 용왕신, 선왕신, 개로육서또 등을 모시는 해신당은 해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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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의 당신들은 어부, 잠수들에게 개방적인 신이지만 돼지고기를 먹는 천한 신으로 여긴다. ‘일만 잠수 일만 어부를 차지한 신’이기 때문에 어촌 마을 생업수호신이다. 이 계열의 당은 그 명칭을 어떻게 부르든 전도를 뺑 돌아가며 해안마을마다 거의 다 있다. 그러면서 이 신들은 그 신화가 길게 성장하지를 못하여 그 신격이 뚜렷하지 못하고 용왕과 선왕신들과도 혼돈되는 데가 있다.

*어부당 : '개당'이라고도 불리는데, 큰개(대포)에 있는 당이라 하여서 불린다. 어부와 해녀들이 다니던 곳이나, 지금은 주로 어부들이 초하루 보름에다니며, 따로 生氣를 보아 다니기도 한다.

*무혼굿 : 무혼굿은 바다에서 빠져 죽은 영혼의 넋을 건져 내어 위로한 뒤, 저승으로 고이 보내는 굿인데, 바다에서 일이 많은 섬 지역인 제주 지역에서는 자주 벌어지는 굿이며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경우가 아니므로 간절하고 애절한 양상을 띤다. 2002년에 조사된 제주 지역의 무혼굿은 하루 안에 마치는 굿으로 대략 6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준비 과정인 초혼을 부르는 ‘초혼쐼’에서는 음악이 없고, 본격적인 굿이 시작되는 초감제에서부터 무가와 반주 음악이 나온다.

*그물코 ; ‘그물코사’란 일명 ‘멜굿’이라 하는 굿으로서 해안 마을 중 모래밭이 있는 마을에서 멸치잡이의 풍어를 비는 굿이다. 매해 늦봄이 되면 멸치 떼가 제주도 연안에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모래밭이 있는 해안 마을에서는 지인망(地引網)으로 멸치 떼를 끌어당겨 잡으니, 이의 풍어를 비는 굿인 것이다. 약 30년 전까지는 심방을 빌어 굿으로 해 왔고, 그 후 유교식 제법으로 바꾸어 해 오다가 근래에는 멸치 떼가 몰려오지 않아 지인망어업이 없어지면서 그 제의도 소멸되었다. 굿으로 할 때는 그 이름을 *'그물코사' 또는 '멜굿'이라 했고, 유교식 제법으로 바꾸면서 유식층에서 해신제(海神祭)라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배코사 : 배코사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어업관련 개인의례이다. 모슬포의 경우 선박이 약 200여 척이 있는데 거의 모두가 매달 초하루에는 정기적으로 그리고 집에서 큰행사가 있거나 제사 지내는 날, 설과 추석 다음날에도 배코사를 한다. 배코사의 제물은 간단하게 나물, 메, 과일 서너가지, 돼지고기 정도이다. 메는 선두, 기관실, 선미, 요왕에게 각각 하나씩 올리는데 뱃일하다가 죽은 사람이 있는 집안에서는 메 하나를 더 올린다. 명절이나 크게 빌 때는 돼지 머리를 올리고, 보통 매달 지내는 배코사 때에는 돼지고기를 썰어서 올린다. 요왕에 올린 메는 나물과 함께 백지에 싸고 실로 묶어 바다에 던지는데, 가라앉으면 요왕이 잘 받아먹는 것으로 뜨면 안 받아먹는 것으로 관념한다.

*잠수굿(요왕굿) : 잠수굿은 물질이 활발한 해안마을에서 해녀들 물질조업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열리는 굿이다. '잠수굿', '잠녜굿', '해녀굿' 등으로 일컬어진다. 의례 중 『요왕(龍王)맞이』는 해산물의 풍요와 해녀들의 안전을 수호해 주는 요왕신을 맞아 요왕길을 닦는 차례다. 요왕신을 잘 대접한 후 재물을 실은 짚배를 바다로 띄운다. 요왕과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하여 종이에 싼 재물인 『지』를 바다에 던지며 정성을 다한다.

*선왕굿 : 민속놀이의 일종인 영감놀이 중 어선을 새로 짓고 선왕을 모셔 앉히려는 것릉 선왕굿이라고 한다. 오늘날은 칠머리당 영등굿에서는 ‘요왕맞이’가 끝난 뒤 어부들을 위한 선왕굿을 행하면서 ‘영감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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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잠수굿 : 잠수(潛嫂)는 해녀를 일컫는 원래의 말이다. 잠수굿은 주로 해녀의 해상 안전과 생업의 풍요를 비는 굿인데, 어부의 풍어도 겸하여 비는 굿이다.

우도는 해변 자연부락 단위로 돈짓당이 있어 2월 보름에 '요왕에 지를 드리는' 돈짓제를 지낸다. 서천진동에서는 3년에 한번 크게 <잠수굿>을 하였고, 각 가정에서는 매해 개인적으로 심방을 데리고 바다에 가서 앉은제로 요왕에 지를 드린다. 동천진동에서는 매해 돈짓당에서 심방을 데려서 요왕제를 지내고, 바다에 지를 드리고, 짚으로 만든 배를 바다에 띄워보냈는데, 이 요왕제를 <돈짓제> 또는 <영등제>라 한다. 동천진동, 서천진동 하우목동에서 영등굿을 하였다. 우도는 해변 자연부락 단위로 돈짓당이 있어 2월 보름에 '요왕에 지를 드리는' 돈짓제를 지내기도 하지만, 하우목동 목지당에서는 영등굿을 크게 하였다. 특히 우도는 제주도에 입도한 영등신이 떠나가는 길목이므로 영등 2월 보름날은 모든 도항선의 항해를 금하고, 당굿을 하는 본향을 청하고 요왕맞이를 하여 씨를 붙이고 한해 바다농사의 풍흉을 점치고, 바다에 지를 드린 후에 짚으로 만든 배를 띄워 영등신을 보낸다. 영등신이 떠난 후에야 모든 선박의 출항이 가능하다.

*김녕잠수굿 ; 잠수굿은 영등굿의 일종으로 물질이 극성스러운 해안마을에서 ‘수굿’, ‘녜굿’, ‘해녀굿’등으로 일컬으며 따로이 치르는 굿이다. 이 굿도 영등굿과 마찬가지로 해녀들의 안전과 채취하는 해산물의 등풍(登豊)을 기원하는데, 채취물의 등풍이 해안마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기 때문에 이 굿을 마을의 주요 행사로 여겼다. 물질을 극성스럽게 치르는 대표적인 마을이 김녕리이다. 다른 마을에서의 '잠수굿'은 음력 2월 '영등굿'과 함께 하거나 해녀들끼리만 조촐하게 치른다. 하지만 김녕리의 '잠수굿'은 예로부터 마을의 전통 굿으로써, 요왕문이 열리는 음력 3월 8일 해녀탈의장 근처 '사계알(굿터 이름)'이라는 곳에서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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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리 잠수굿은 문순실 심방 주관으로 아침 9시경부터 저녁 5시에 이르기까지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종일 굿판을 벌인다. 잠수굿은 촌락공동제면서 마을의 축제적 성격도 띠고 있다. 김녕리 해녀들은 음력 3월 초부터 몸을 정갈히 하고, 굿 시작일 3~4일 전에 모두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여 제물을 준비한다. 마을·기관·단체·학교는 물론 선주, 마을 유지들이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열명서'를 올리는데, 다른 의례들과는 달리 남성들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할 수 있다. 굿이 끝날 때쯤 요왕상에 올렸던 제물들을 자루에 넣어 바다에 던지는데, 이를 ‘지들인다’고 한다. 굿의 마지막에는 해녀들이 좁씨를 바다에 뿌려 한해의 풍년을 기원한다. 잠수굿은 김녕리 외에도 용왕제라는 이름으로 안덕면 사계리, 성산리 등지에서도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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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애기할망당 : 아기업개의 원령을 모시고 있으며 '처녀당' '비바리당' '아기업개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기업개당의 당신은 '허씨애기' 이고 정해진 제일은 없다. 제물운 메1기이다. 돌을 동그랗게 쌓은 담형으로 만들어져있다. '아기업개'란 아기를 업고다니는 아이를 말한다. 아기업개에 대한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연신맞이 : 마을 공동 어로용으로 배를 짓고 나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출어로 굿의 제물 등을 준비해 놓고 연신을 모셔 앉혀 안전과 풍요를 비는 굿이다.

*용왕제 : 제주는 선장이나 선주가 맡고 선장실이나 배 위에 촛불을 켜놓고 메, 건포 등의 간단한 제수를 마련하여 용왕제를 지낸다. 굿을 하는 무당이나 경문쟁이를 모셔다 지내기도 했는데 주로 먼 바다로 나가거나 여의치 않으면 항구 근처에서 지낸다. 무당이 제물을 차려놓고 용왕에게 사고가 나지 않고 풍어가 되게 해달라고 축원하고 바다에서 지낼 경우 제물을 용왕님께 드린다며 바다에 넣고 온다. 지금은 무당을 불러 지내는 용왕제는 거의 사라지고 개인고사 형식으로 지낸다.

*약마희 : 약마희는 모의적인 농경의례로서 육지의 '세경놀이'에 상응하는 '해전경작의례'였을 것이며, 이 굿놀이는 '요왕맞이'를 하여 요왕길을 닦은 다음, '씨드림'의 한 병형으로 떼배 말을 타고 바다의 연안 어장인 여(礖)에다 씨를 뿌리고, 테우를 노저어 가면서 테우를 놀려 밭을 밟는 행위를 연출한 '놀이굿'이다. (출처 : 해양수산부, 『한국의 해양문화 5 : 제주해역』, 2002. p494~495)

*영감놀이 : 「영감놀이」는 원래 제주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당굿 중 놀이굿의 하나이다. 도깨비 신에 대한 굿으로서 무속 의례 굿인 동시에 연희 놀이이기도 한 「영감놀이」는 1971년 8월 26일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2호(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능 보유자는 이중춘이다.

「영감놀이」는 영감신이 들어와서 생긴 병을 치료하는 경우나 어선을 새로 짓고 선왕을 모셔 앉히려는 경우에 또는 마을의 당굿 때 실연되었으나 오늘날은 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한 치병굿으로서의 성격만이 남아 있다.(출처 :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http://jeju.grandculture.net)

*남당중놀이 : 남당중놀이는 음력 10월 보름날 구좌읍 행원리 당굿에서 연행되는 ‘굿중놀이’로서 마을의 잠녀와 어부를 수호하는 행원 남당의 하위신(下位神) ‘중의또’가 어떻게 해서 당신(堂神)으로 좌정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놀이굿이며 堂神編入儀禮이다.

*강태공뱃목시 : 배로 새로 만들었을 때, 또는 출어시 풍어를 기원하는 배에서 하는 굿을 <연신맞이>라 한다. 연신은 선박수호신인 선왕(船王)이므로, 연신맞이는 선왕을 맞이하여 풍어를 기원하는 선왕굿, 뱃고사이다. 특히 연신맞이는 배에서 하는 굿으로 배를 새로 지었을 때는 새 집을 지었을 때 성주풀이에서 영등산의 신령한 목수 '강태공수목수'를 청하여 새집을 짓는 주술적인 모의적 신축의례인 강태공수목시놀이와 꼭 마찬가지로 배를 잘 만드는 신령한 목수 '강태공뱃목수'를 청하여 배를 짓고, 배 밑바닥에 선왕판을 신체로 모시는 모의적인 선박축조 의례로 강태공뱃목시라는 굿놀이를 한다. 그러므로 배를 새로 만들었을 때는 강태공목시 놀이를 하기 때문에 연신맞이 굿놀이라 한다. (출처 : 해양수산부, 『한국의 해양문화 5 : 제주해역』, 2002. p508)

*요왕맞이 : 잠수굿은 물질이 활발한 해안마을에서 해녀들 물질조업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열리는 굿이다. '잠수굿', '잠녜굿', '해녀굿' 등으로 일컬어진다. 의례 중 『요왕(龍王)맞이』는 해산물의 풍요와 해녀들의 안전을 수호해 주는 요왕신을 맞아 요왕길을 닦는 차례다. 요왕신을 잘 대접한 후 재물을 실은 짚배를 바다로 띄운다. 요왕과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하여 종이에 싼 재물인 『지』를 바다에 던지며 정성을 다한다.
(출처:해녀박물관 http://www.haenyeo.go.kr)

*무조신화 초공 본풀이 : 제주 굿춤의 원리는 무조신화(巫祖神話) 「초공 본풀이」에 있다. 「초공 본풀이」는 무조신 ‘젯부기 삼형제’와 악기의 신 ‘너사무너도령 삼형제’가 의형제를 맺는 과정을 나타내는 ‘육고비 육항렬’의 원리 속에 있다고 한다.

육고비 육항렬이란 심방집 당주상에 모시는 어머니의 속옷 속을 통과하여 의형제를 맺은 과정을 상징하는 백지를 삼각의 여섯 매듭으로 접은 기메라는 종이 장식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초공 본풀이」는 최초의 심방이 된 무조 삼형제의 이야기이다. 명문 집안의 부부가 절에 가서 기원하여 딸아기를 낳았고 부모가 이 아이를 두고 벼슬살이를 하러 가게 되었는데, 중이 시주를 핑계 삼아 찾아와 딸을 잉태시킨다.

딸은 집에서 쫓겨나 중을 찾아 아이 셋을 낳는다. 삼형제는 자라서 양반 자식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급제하지만 중의 자식이라 하여 낙방하고 어머니마저 양반 자식들에 의해 감옥에 갇힌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자 심방이 되어 어머니를 구하라고 하며 신칼·천문(天門)·상잔(床盞) 등의 무구를 준다. 삼형제는 북·장고·설쇠·징 등 무악기를 만들고 굿을 하여 어머니를 구하고, 양반 자식들에게 복수한 후 심방의 시조가 된다.

무조신은 무당의 내력을 알려 주고 무속에서 어떠한 기능을 맡고 있는가를 말해 주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무조신은 특정하게 신격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무당의 제각기 성격과 결부되면서 모셔진다.(출처 :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http://jeju.grandculture.net)

*선왕굿 : 민속놀이의 일종인 영감놀이 중 어선을 새로 짓고 선왕을 모셔 앉히려는 것릉 선왕굿이라고 한다. 오늘날은 칠머리당 영등굿에서는 ‘요왕맞이’가 끝난 뒤 어부들을 위한 선왕굿을 행하면서 ‘영감놀이’를 하고 있다.

*무혼굿 : 무혼굿은 바다에서 빠져 죽은 영혼의 넋을 건져 내어 위로한 뒤, 저승으로 고이 보내는 굿인데, 바다에서 일이 많은 섬 지역인 제주 지역에서는 자주 벌어지는 굿이며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경우가 아니므로 간절하고 애절한 양상을 띤다. 2002년에 조사된 제주 지역의 무혼굿은 하루 안에 마치는 굿으로 대략 6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준비 과정인 초혼을 부르는 ‘초혼쐼’에서는 음악이 없고, 본격적인 굿이 시작되는 초감제에서부터 무가와 반주 음악이 나온다.

*내도동 잠녀당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내도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내도동 본향의 주신은 ‘천지천왕새금상또 김씨하르방’으로서 어부와 잠수를 보호해 주는 생업 수호신이다. 내도동 바닷가에는 속칭 ‘두리빌레’라고 하는 너럭바위에 ‘두리빌레용녀부인’이 좌정해 있는데, 이곳을 ‘두리빌레당’ 혹은 ‘알당’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천지천왕새금상또 김씨하르방’을 모신 내도동 본향은 ‘웃당’이라고 하는데, 마을 신앙민들은 내도동 알당의 ‘두리빌레용녀부인’과 부부신으로 관념하기도 한다. 내도동 본향은 내도동 웃당 또는 하르방당이라고도 한다.

내도동 본향은 본래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당동산에 있었는데 당이 세서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지 못하고 또한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자, 1940년대 바닷가의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당굿은 진행하지 않으며, 대신 마을회 주관으로 매해 정월 초하루와 보름, 혹은 정초에 생기 맞는 날, 정월 입춘 지난 정일(丁日) 혹은 해일(亥日)을 택일하여 내도동 본향에서 유교식 고사를 지낸다. 제물로는 메 두 그릇과 돼지고기, 우럭 등을 올린다.

정초의 개별적인 비념은 고사를 지낸 후에 다니는데, 마을 주민 중 상당수가 내도동 본향에 다니며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정초가 아닌 때라도 신당을 찾아 비념하거나 굿을 한다.

*우도 돈짓당과 돈짓제 : 우도면 동천진동에 위치한 돈짓당은 영등굿을 하는 당으로 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주로 해녀들이 주장해 다니는 당이다. 매월 음력 2월 15일 영등제를 앉은제로 지내는 돈짓제를 지내는데 이날이 되면 모든 배의 도항과 출륙이 금지되고, 짚으로 만든 배를 띄워 보내는 배방선이 끝나고 비로소 영든신이 섬을 떠나면 도항선의 출륙이 금지는 해제된다. 이외에도 메뚜기의 번식으로 생기는 농작물의 병해를 막기 위해 말축굿을 지난 30년전 까지만 해도 지내기도 했었다.

*대포동 어부당 : 서귀포시 대포동에 있는 '대포동큰갯당'이다. 어부당 혹은 개당이라고 불리는데, 큰개(대포)에 있는 당이라 하여서 불린다. 어부와 해녀들이 다니던 곳이나, 지금은 주로 어부들이 초하루 보름에 다니며, 따로 生氣 를 보아 다니기도 한다. 堂神 은 "개당할망" 이다.

신목밑으로 제단이 있고 그 반대편에 '지전'과 '물색'을 걸어두었다. '지전'은 한지를 짤라 낸 것으로 일종의 돈(노자)를 상징하며, '물전'(물색)은 빨강, 파랑, 노랑 등 3색의 천으로 신당을 장식한 것을 말한다.
(출처 : 멀티미디어제주민속관광대사전 ttp://jejuro.go.kr/sub/index.php?act=search&collection=TOTAL&query=%C4%A5%B8%D3%B8%AE%B4%E7)

*광양당 : 제주시 이도 2동에 있었던 한라호국신 광양왕의 사당터이다. 한라산신의 아우가 살아서 성덕이 있었고 죽어서는 신이 되었는데, 고려 예종 때 송나라 술사(術士) 호종조(일설 호종단)가 그 나라의 왕명을 받고 거짓 고려에 귀화하여 고려 명산을 돌아디니며, 혈(穴)을 자르고 마지막으로 제주도의 혈까지 자르고 배를 타고 돌아가다가, 신이 매[鷹]로 변하여 돛대 위를 나니 별안간 폭풍이 불어 종조(宗朝)의 배를 쳐부수고 비양도 바위 사이로 몰아넣어 죽게 하였으므로, 조정에서 그 영특함을 표창하여 식읍을 하사하고, 광양왕으로 봉하여 해마다 향과 폐백을 내리어 제사 지내게 하였으며, 조선조에 와서도 본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숙종 28년(1702) 이형상 목사에 의해 헐리었다고 한다.

*제주 미륵불상 : 제주시 건입동 주택가 내와 제주시 용담동 용화사 내에 세워져 있는 두 기의 석불 입상을 말한다. 이 두 기의 석불은 사람의 수명과 행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숭배되는 한 쌍의 복신미륵으로, 동자복과 서자복을 말한다. 구전으로는 ‘자복신(재물과 복의 신)’, ‘자복미륵’, ‘미륵불', ‘큰어른’ 등의 이름으로 불려왔고, 옛 제주성 바깥 동쪽과 서쪽에 두 미륵이 성안을 수호하듯 세워져 있었다. 제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 후기의 불상이 토속적으로 변모하는 과정 중의 한 양상인 것으로 보아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그리고 머리에 씌워진 대패랭이와 비슷한 모양의 벙거지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사 : 삼성사는 고·양·부 삼성 신인들을 모시는 사당으로서, 제례는 향교의 석전과 제복을 갖추어 매년 4월 10일에 춘제, 10월 10일 추제를 지낸다.
삼헌관은 고·양·부 세 성씨가 윤번제로 하고, 12월 10일 건시제(乾始祭)는 제주 도민제로 모시었다.

초헌관은 지방 장관, 아헌관과 종헌관은 기관장이나 유지 중에서 뽑는다. 춘제·추제는 삼을나의 위패를 모신 삼성전에서 지내고 건시제는 혈단에서 지내므로 혈제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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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혈 경내에 서원이 생긴 것은 1740년(영조 16)에 안경운(安慶運) 제주목사가 재생을 두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사액(賜額)이 내려진 것은 1758년(정조 9) 2월이었다.

제주 지역 유학자 양경천(梁擎天)의 상언(上言)에 따라 예관(禮官) 고택겸(高宅謙)이 와서 ‘삼성사’란 왕의 어필 액자와 절목을 내렸다. 1827년(순조 27) 8월에 이행교(李行敎) 제주목사가 삼성사에 전사청(奠祀廳)을 세웠고, 1849년(현종 15) 8월에는 장인식(張寅植) 제주목사가 삼성사 묘우(廟宇) 뜰에 집 한 채를 지었다.

이를 숭보당(崇報堂)이라 이름 짓고 백재생(百齎生)을 뽑아 급료를 주고 그곳에 거처하며 공부하게 하였다. 따라서 서원은 장의(掌議) 1명과 유사(宥司) 2명이 백재생, 즉 액내 30명과 액외 70명, 합하여 100명을 관리하는 체제였다.

현재 삼성혈 경내에는 숭보당을 중심으로 서쪽에 모성각(慕聖閣), 동남쪽에 전사청(典祀廳), 후면 복동쪽에 북문, 남쪽에 전향문(傳香門)이 있다. 전향문 서남쪽에 삼성전이 있고, 삼성전 맞은편에 신문, 전향문, 그리고 서쪽에 혈단문이 있다.

해녀 공동생활

*불턱 : ‘불턱’은 해녀의 전용 노천탈의장을 일컫는 제주지역어이다. 제주섬의 어디에나 바닷가 마을 갯가에는 바람막이 될 만한 공터나 바위그늘은 이용하여 화톳불을 피우는 터가 적게는 두어 군데, 많게는 십여 군데씩 놓여 있다. ‘불턱’은 해녀들이 작업을 하는 틈틈이 휴식시간을 갖는 휴게소이다. 휴식시간이면
해녀마다 집에서 가지고 온 땔감을 한자리에 쌓아 화톳불을 피운다. ‘불턱’이란 바로 화톳불을 피운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불[火]’은 글자 그대로 불씨를
뜻하며, ‘턱’은 언덕을 뜻하는 옛말 ‘덕’의 변형이다. 그러나 불턱의 경우 오히려 ‘불자리’의 의미로 쓰였다고 본다. 지금도 제주어에 솥덕, 화덕 등 불을
간직하는 ‘터’를 지칭하는 말로 쓰여지는 예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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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불턱에서 일상복을 벗고 물질에 필요한 도구를 챙기고 작업복을 갈아입는 순간부터는 해녀라는 전문직업인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즉 불턱은 해녀에게 있어 특정한 작업을 이행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조성할 뿐 아니라 작업장과 직접 연결되는 전초기지이기도 하다. 작업에 앞서 장비를 점검하고 작업장에 대한 예비지식과 사전 정보를 얻고 작업동료와 조우하며 작업과정에서의 상호협조를 재확인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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