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삼별초 궁녀둠벙

제주 삼별초 궁녀둠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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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가 추대했던 왕족 출신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은 지금의 의신면 침계리에 있는 ‘왕무덤재’에서 붙잡혀 ‘논수골(論首谷)’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전투중에 피난중이던 여기급창 등 궁녀들은 창포리에서 만길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만길재’를 넘다 몽고군에게 붙잡혀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언덕을 따라 내려가 지금의 둠벙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이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할 당시 3천 궁녀가 부여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과도 매우 흡사한 사건이기고 하다. 그 뒤 비가 오는 날이면 이곳 둠벙에서 여인네의 울음소리가 슬피들려오고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까지만해도 밤에는 이곳을 지나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이곳 둠벙을 가르켜 이후 진도사람들은 ‘여기급창둠벙’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 이곳 둠벙의 수심은 매우 깊어서 절굿대를 넣으면 우수영 또는 금갑 앞바다로 나온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그래픽

삼별초항전_여몽연합군의 제주공격

삼별초항전_여몽연합군의 제주공격 삼별초의 충청도 진출하는 모습을 삽화로 표현한 그래픽콘텐츠 입니다.

삼별초항전_삼별초의 영역확대

삼별초항전_삼별초의 영역확대 여몽군의 공격은 진도 때와 같이 3지점에서 진행되었다. 지휘부가 있는 주력의 중군은 삼별초의 거점인 항파두리성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함덕포에 상륙했다. 좌군의 30척 병력은 항파두리성에서 서북으로 약간 떨어진 비양도를 교두보로 하여 한림 해변으로 상륙했다.

삼별초항전_삼별초의 고란도 공격

삼별초항전_삼별초의 고란도 공격 제주 거점 삼별초 군사 활동의 제3단계는 삼별초 군이 몽골군의 주둔지였던 경상도 연안까지 그 활동 영역을 확대시킨 단계다. 몽골군은 정동역(征東役)의 추진을 위해 특히 경상도 연해 지역인 금주(金州, 김해) 등지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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