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보살의 원력으로 남편을 살린 박부형보살님

관음보살의 원력으로 남편을 살린 박부형보살님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공덕설화

• 주제 : 공덕
• 국가 : 한국
• 시대 : 근현대
• 지역 : 경기도
• 참고문헌 : 불교설화대사전

서울 강남구 반포동 반포APT 49동 102호에 사는 박부영 보살님은 봉원사 관음회신도이시다. 그의 집안은 본래 어떤 특정한 종교가 없었으나, 학생시절에 친구를 따라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여 영세 · 견진까지 받은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25살 때 시집을 오니 시댁에서 불교를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혼 후 2~3년간에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는 혼동 상태에 있었다.
귀한 시댁에서는 내내 절에 다니며 옥동자의 발원을 했었고, 시어머니께서 남편을 임신하신 때로부터 출산 무렵까지 거의 10개월간을 절에 다니시며 치성을 올리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명절때라든지 어떤 특별한 날에는 반드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시는 것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천주교에 젖었던 그에게는 참으로 해결키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다.
그는 충남 예산에서 성장하였는데, 소풍때라든가 하여 공주의 마곡사에 여러번 들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사찰의 불상이나 울긋불긋한 색채가 험악한 사친왕상이 무서워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성스레 부처님께 합장하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곤, 불교에도 뭔가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집안의 원만한 화합을 위해서도 불교가 뭔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절을 찾았던 것이다.
살림집이 신촌이었던 관계로 가까운 위치에 있는 봉원사를 찾았던 것이다.
거기서 대운스님을 소개받고 『부처님의 생애와 교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차차 불교의 오묘한 가르침에 심취되기 시작하였고, 부처님의 무량하신 자비심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렇게 몇 년 배우다 보니 나름대로 남에게 불교에 대한 얘기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주 단출한 식구지만, 식사 때에는 지난번 들은 법문을 밥상에서 말하곤 하였던 것이다.
남편은 어떤 종교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분이 아니었고, 그저 여자들이 절에 다니는 것을 놔두는 정도로 불교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리적인 얘기보다는 관세음보살 신앙에 대한 말을 여러번 했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에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찾으면 불에 놓여 있어도 타지 않고 물에 빠져도 죽지 않는다는 불경의 말씀을 계속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1983)으로부터 11년 전 그러니까 1972년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공적인 임무를 띠고 도서지방을 순시하다가 그만 예상치 못했던 폭풍을 만났던 것이다. 조그만 배에 네 사람의 일행이 타고서 섬으로 가는 중에 갑자기 풍랑이 심하게 일어나더니 배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더라는 것이었다.
당황한 일행은 정신없이 물을 퍼내있으나 도저히 걷잡을 수 없어서 드디어는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대한 파도에 배는 하나의 낙엽같이 이리저리 떠밀리고, 노를 저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해는 저물어 어두워져 가는데 영락없이 죽을 판이었고, 또한 풍랑에 흩날려 시체도 남이 찾을 수 없게 사라질 입장이었다. 어딘지도 모르게 배는 기우뚱거리며 제멋대로 밀려가고, 옷은 모두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있었는데, 네 사람 중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남편도 그 기막힌 상황에 오직 새파랗게 얼굴이 질리고 입이 굳어질 뿐 하나님이라든가 어머니를 부를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정황에도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물에 빠져도 죽지 않는다는 자기 부인의 생각이 분명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딴 사람이야 물을 퍼내든 한쪽 구석에 앉아서 눈을 감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만 계속 불렀다. 어쩌다 눈을 가만히 떠보면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몇 시간을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자니, 보다 못한 딴 사람이 남편을 건드리며 물좀 같이 퍼내자고 하였다.
「난 지금 뭘 하고 있으니 가만히 놔두시오.」
하곤 계속 살려달라는 의미의 관세음보살 주력(呪力)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섬 기슭에 배가 안전하게 닿아 목표했던 장소로 밤 12시쯤엔 갈 수 있었다. 목적지에서 옷을 벗어 불에 말려놓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남편의 친할아버지께서 나타나시더니
「집에다 부처님을 모셔라」
하였다. 그는 출장을 다녀와서도 아무소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집에다 부처님을 한분 사다 놓아야겠다.」
고 하였다. 아내는 놀라서,
「거룩하신 부처님을 부정하게 사는 이런 집안 어디다가 함부로 모셔요. 안돼요.」
「그러면 부처님 사진이라도 한분 모셔야 되겠군!」
하고 출장 중에 겪은 얘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즉시 불교달력 위에 있던 관세음보살 사진을 구해서 잘 모시게 되었고, 그 이후 남편은 불심이 돈독한 불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불교를 알기 전에는 좀 날카로운 성격에 자존심도 강해서 남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성질을 자주 내있다. 그런데 불교 공부를 하다보니 어느새 노인이나 아이를 막론하고 자연스레 대화하며 스스럼없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확실히 예전보다 자신의 마음과 환경이 원만해진 것을 스스로도 확신하게 되었다.
그들은 몇 년 전엔 어떤 사람이 속임수를 써서 큰 재정적 피해를 입힌 일이 있었다. 그런데도 미운 생각이 별로 들지 않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그 사실에 흥분하고 괘씸하다고 욕을 해대었는데 그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하더라는 것이다.
「내가 전생에 그 사람에게 빚을 졌다면 이제 갚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주겠지 .」
하며 태평한 마음을 가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타가 인정하듯 마음이 넓어진 것은 모두 불교의 힘이었다. 실로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은 없는 듯 하였다.
이제는 국민학교 6학년인 아들까지도 부처님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지는 것 같아 무척 대견스럽게 여겨졌다. 50여년의 인생을 돌이켜볼 때, 그의 삶은 부처님 덕분에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정성스레 모든 불사에 전념하여, 이 좋은 불법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는 데에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불교계의 활동이 미약한 실정인데, 이부분에 다른 법우(法友)님들과 힘을 합쳐 매진하고자 원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속해 있는 봉원사 관음회에서 양로원 위문사업을 전개하였는데, 아주 성과가 좋았다.
회원들이 힘을 합치니 일년에 한 번씩만 번갈아 방문해도, 매일 양로원을 방문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비단 양로원뿐만 아니라, 고아원이라든가 다른 곳에 사회적 봉사를 할 일은 얼마든지 눈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또한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고아원에 일주일에 한번 가서 빨래를 해주는 것도 훌륭한 불사인데 문제는 봉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관음회 회장도 자기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부처님이 시키는 일이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더욱 노력하고 있다. 참으로 희귀한 말세중생의 등불이다.
부처님을 진정으로만 믿는다면 이와 같이 질병과 재난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망을 이렇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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