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칼을 대신 받아준 조정승

• 주제 : 공덕
• 국가 : 한국
• 시대 : 조선
• 지역 : 황해도
• 참고문헌 : 불교사찰사료집. 이조실록

이태조(李成桂)가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제정코자 명나라 주원장의 재가를 받기 위해 사신을 보낼 때의 일이다.
태조는 원래 공민왕의 신하로 북벌(北伐)에 공이 큰 장군이었으나 나라의 기세가 쇠약한 틈을 타 공민왕을 폐왕시키고 또 그 뒤 우왕 창왕 공양왕 등도 봉림하였다가 즉시 폐위, 모두 죽인 후 나라를 세우니 고려로 보아서는 역신배장(逆臣背絳)이요, 이조로 보아서는 건국태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라를 세우기는 하였으나 그 나라의 이름을 그대로 고려로 답습해 갈 수 없었으므로 자기 고향인 함흥의 함(咸)자와 강령의 영(寧)자를 따서 함령국(咸寧國)이라 짓거나 또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고조선의 손이 계계승승해 오는 터이므로 조선이라 지어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이곳에서 짓는다고 그대로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것이 그 때 우리나라의 실정이었으니 우리나라는 고려 중엽 이후로 중국의 속국으로 행세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영국 또는 조선이라는 명호를 주원장에게 보내 재가를 얻어 와야만 되므로 태조는 건국 초부터 여러 많은 충신을 뽑아 중국에 보냈으나 모두 그들은 그 곳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성계가 배신역적이니 그의 신하도 마찬가지란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몇 사람의 사신이 죽음을 당한 뒤로는 서로 중국에 가지 않으려 발뺌하는 것이 그 때 공신들의 실정이었다.
그해 태조는 생각다 못해 정승인 조공을 보내기로 작정 했다.
「여보게 조정승, 이번에는 조정승이 가서 기필코 재가를 얻어 오도록 하라.」
그것은 조정승이 예로부터 수차에 걸쳐 중국에 내왕하여 명태조와 친숙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조공은 난처했지만 어찌 할 수없었다.

집에 있어도 죽고 가도 죽을 바에야 가서 한번 사정이나 해 보고 죽자 하고 길을 떠났다. 조정승은 원래 선조의 유신(有信)을 따라 불교를 독신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모든 가족들은 예로부터 다니던 단골 절에 올라가 무사히 귀가할 것을 기도하였고 조정승도 자신이 즐겨 읽는 관음경, 금강경 등의 경전을 읽으며 일이 성취되기를 발원하였다.
그런데 일행이 황해도 시흥 어느 주막집에서 숙소를 정하고 초조할 하룻밤을 새우는데 비몽사몽간에 고깔을 쓰고 가사 장삼을 입은 세 사람의 사미승이 앞에 나타나,
「대감,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미숙하오나 대감의 뜻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을 가지고는 대사를 이루기 매우 어렵습니다. 마음을 굳게 잡수시고 신표(信標)를 청하십시오.」
「신표라니, 무슨 좋은 방도라도 있는가?」
「예, 방도가 있습니다. 이 집 뒷골짜기로 5리쯤 올라가면 큰 절터가 있는데, 그곳에는 한 길이 넘는 세분의 돌부처가 풍우를 가리지 못하고 앉아 계십니다. 대감이 집을 지어 그 부처님께 공양하면 그 공덕으로 대사는 결코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어명을 받고 바쁜 길을 가는 길손인데 어느새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실 겨를 이 있겠는가?」
「그거야 간단합니다. 황해도 감사에게 부탁만 하면 될게 아닙니까?」
「딴은 그렇군 -」
그러나 내 가면 곧 죽을 터인데 절을 지어 무슨 공덕을 짓겠는가 생각하고 다시 잠들자 다시 그 사미승은 두 번 세 번 그렇게 일렀다.
너무나도 소소하고 역력한 꿈이라 꿈속에서 깨어난 조대감은 정신을 가다듬고 집주인을 불렀다.
「여봐라. 거기 집 주인 있느냐 ?」
「예, 여기 대령했습니다.」
「이 곳으로부터 5리쯤 떨어진 곳에 옛 절터가 있는가?」
「예, 거기에는 세분의 돌부처가 반쯤 흙에 묻혀 크게 풍상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 그를 뵙고 가리라.」
하고 조정승 일행은 날이 밝기도 전에 이슬 맺힌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과연 쓰러진 절 터 위에 세분의 부처님이 가련하게 서 있었다. 마치 그것은 따뜻한 집을 등지고 죽음의 문을 향해 보보등단하는 자기 신세와 별로 다를게 없었다.
「풍상에 마멸되어 성상이 훼손되는 것이나 역적의 태를 쓰고 죽어갈 이 신세나 어쩌면 그리도 같습니까? 원하옵나니 부처님께서 저의 일을 도와주실 것을 믿는 까닭으로 신민의 노역을 아끼지 않고 여기 가람을 짓도록 명령하였나이다. 제가 돌아오는 날에는 필시 부처님의 상호가 따뜻한 법당 안에 안온히 모셔져 있을 것을 믿습니다.」
하고 곧 황해도 감사를 불러 이 절을 이룩할 것을 명령했다. 비록 꿈으로 인해 작정된 일이기는 하지만 무엇인가 의지하는바가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조정승 일행이 명제를 뵙고 조선 태조의 뜻을 상주하고 필히 국호를 결정해 내려주실 것을 간청하자 명제 주원장은 노발대발,
「이신벌군(以臣伐君)한 역적이 국토를 도둑질하고 다시 국호를 결정해 허락해 달라니 어찌 하늘이 무심할 수 있느냐?」
하며 곧 조정승을 교수 참형하라 명령했다. 조정승은 이미 예기한 일이라 두말 이르지 못하고 그대로 형장에 끌려가 교수대에 올랐다.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물 한 그릇과 배석자리 하나만 갔다 주오.」
물이 상위에 올려지고 배석자리가 깔리자 조정승은 단정히 무릎을 끊고 먼저 국왕에게 배알했다.
「대신 조공 멀리서 사별(死別)하나이다. 대왕의 명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니 신하로서 면목이 없나이다. 용서하십시오.」
하고, 다음은 부모님을 향해,
「부모님의 은혜는 하해(河海)보다 깊고 태산보다 높다 하는데 그 은혜를 조금도 보답치 못하고 죽어가는 자식, 스스로 불효됨을 통탄할 뿐입니다.」
그러고 세 번째는 황해도 시흥 산중의 세 부처님께 정례 하였다.
「필히 대사를 성사하여 부처님의 가람이 이룩된 곳을 친히 뵙고 또 공양코자 하였으나 이제 일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대로 죽으니 오직 약속 이행치 못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였다.
이렇게 인사가 끝나자 다시 명신(明臣) 이 물었다.
「더 할 말이 있는가?」
「없다.」
「그럼 -」
하고 망난이에게 눈짓을 한다.

망난이는 푸른 칼을 들고 미친 듯이 날뛰면서 동서로 설치는데 사람의 간장은 오무라들고 혼이 멀리 중천에 떠올랐다. 그러나 막난이가 칼을 들고 조공을 내려치니 그만 사람이 베어지는 게 아니라 청룡도의 칼날이 두 동강이로 부러진다. 한 번 그래, 두 번 그래, 세 번째에도 마찬가지로 부러지자 명신은 이상히 여기고 곧 주원장께 이 사실을 알렸다.
「아무리 베어도 베어지지 않고 칼이 부러지니 이는 보통 사람이 아닌가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리로 데려오너라.」
조공이 명제 앞에 이르자,
「천자가 하늘의 뜻을 알아보지 못하고 벌을 주려해 미안하다. 이제 너에게 비단 500백 필과 황금 일 천량을 내리고 또 국호를 조선이라 재가 하노라.」
하였다. 조정승이 주원장의 이 같은 말을 듣고 감개무량하여 본국으로 돌아오는데, 황해도 시흥에 이르자 수 많은 사람들이 그 부처님이 계시던 산을 향해 올라갔다.
「무슨 일이느냐?」
「아니올시다. 대감님께서 명령하신 절이 이제 막 완공이 되어 오늘이 낙성식입니다.」
「그래, 그럼 나도 그 식에 참례하리라.」
하고 함께 올라갔다 오색단청의 봉황에 수놓아진 법당에서 맑은 풍경소리가 울렸다.
「아, 이제 우리 부처님도 따뜻한 집에 돌아오시게 되었구나.」
「이 어찌된 일이냐 ?」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처님 목에 칼자국이 나 있고 또 빨갛게 핏자국이 맺혀 있으니 말이다.」
「글쎄올시다. 저희들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3일 오후 3시 부처님을 이곳으로 옮겨 모셨는데 이상스럽게도 칼 소리가 쨍그렁 나 쳐다보니 이 부처님 목에 칼 자국이나 그 곳에서 저렇게 피가 주르르 흘렀습니다.」
「다른 분도 마찬가진가?」
「예, 다른 분도 마찬가집니다. 단지 시간의 차이만 있었을 뿐입니다.」
「아, 참으로 신통한 일이로다 내가 바로그날 그 시에 교수대에서 칼을 받던 순간이다.」
참으로 괴이 신통한 일이었다. 조정승은 그 길로 왕국에 돌아와 이성계를 뵙고 이 사실을 아뢰니 이태 조 역시 감개(感漑)하여 크게 상을 내리고 그 절 이름을 속명사(讀命寺 ― 명을 이은 절)라 지어 현판까지 써주셨다.

또 오나라 육휘는 옥에 갇혀 죽게 되었는데 그의 부인이 관음상을 만들어 모셔 놓고 기도를 하여 죽음을 면했다. 즉 육휘가 형장에 이르러 망난이가 세 번이나 거듭 목을 쳤으나 칼이 깨어져 동강이가 났다. 그래서 형리가 육휘에게 물었다.
「무슨 술법을 쓰느냐?」
「나는 관세음보살을 부를 뿐 아무 술법도 없다.」
형리가 관청에 알리니,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 풀어주라.」
하였다 너무나도 신기하여 집에 돌아와 조성해 놓은 부처님께 절을 하려 쳐다보니 그의 목에 세 줄기 칼자국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