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연숙의 회춘

가수 연숙의 회춘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공덕설화

• 주제 : 공덕
• 국가 : 한국
• 시대 : 근현대
• 지역 : 경기도
• 참고문헌 : 속편영험설화

가수 박 연숙은 60년대 가요계의 혜성이었다.
별빛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진 가수 박 연숙에겐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가수 차중락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고 낙엽 따라 가버렸지만 이는 낙엽 따라 갈래야 갈 수 없는 그러한 사연이 있어 나타내려 해도 나타날 수 없었다.
그의 인기는 특히 국내뿐 만 아니라 국외에까지 널리 알려져 가는 곳마다 환호성에 뭍혔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자 그대로『스타』가 되었으며 그 『스타』가 땅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었다.
원래 그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곁에서 큰기침만 해도 놀라 넘어질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저절로 가수가 되어 명망이 높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는 노래를 잘 부르는데 둘이만 있으면 가슴이 괜히 떨려서 옆에 사람이 말했다.
「담배 한대만 피워 물면 그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슨 담배가 그런 좋은 담배가 있습니까?」
「있고 말고, 이걸 한대 피워보십시오.」
하고 가늘고 긴 담배를 한 개피 주었다. 피워보니 맛이 향기로웠다. 담배를 피우고 나서 약 10분쯤 있으니 정신이 몽롱하여지며 황홀한 마음이 들었다.
연단에 서니 천지가 내 세상 같았다. 참으로 맛있는 담배였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 가을 청풍(淸風)을 쓰이는 듯, 천명 관객 앞에서 한가락 노래를 부르고 나니 꽃밭에서 나비가 한바탕 춤을 춘 기분이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해바람 소리가 요란하더니 앙코르의 박수가 나왔다. 유명한 사람이 더욱 더욱 유명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술을 마시면 기분이 더욱 좋아졌고, 그 좋은 기분에 이성을 만나면 진공상태에서 우주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담배, 술, 타령을 연속하게 되었으며 내일 죽더라도 오늘에 만족해 사는 그러한 인생이 되었다.
가는 곳마다 팬들은 널려 있어 세계시민이 그때는 그의 애인이었으며 이름난 호텔은 모두가 그의 집이었다.
무상한 세월을 잊어버린 채 십 수 년을 돌아다니는 사이에 피는 마르고 골격은 뾰쪽하게 드러났으며. 공연이 끝나면 숨이 찼다.
어쩌다가 술이 과하게 되면 예기치 않은 기침이 났다.
기침 뒤에는 가래가 글렁이고 때로는 그 가래 속에 피가 묻어나오기도 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감기 기침약하며 정력 강장제를 계속 먹었는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
이상하게 여겨 X 레이를 찍어보니 자그마치 급성폐렴으로 3기가 넘었다. 오른쪽 폐는 반 이상이 먹혀 있었고 왼쪽 폐는 3분의 1 이상이 감염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지껏 번 돈을 일일탕진(日日薄盡)으로 다 써버리고 없었으니 하루라도 놀고는 살 수가 없었다.
그동안 피웠던 담배는 일반 담배가 아니라 대마초였기 때문에 값 또한 비쌌다.
한대라도 피우지 않으면 마치 수전증 환자처럼 손과 발이 떨렸다. 약값, 술값, 담배 값을 벌기 위해서는 밤일까지도 나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사랑하는 애인도 폐병환자란 소문이 나니 옆에 오지 않았다. 참으로 고독하였다. 날마다 술과 담배와 벗하였다.
병원에서는 술 담배를 끊으라 하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었다.
병은 날로 짙어지고 돈은 날로 말라가고일은 날로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그는 몇 번인가 죽어버릴까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죽으려고 맘먹고 강가나 언덕위에 서면 왜 그리 푸른 물 언덕바지가 무섭게 보이는지 몰랐다.
살아서 망신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을망정 그래도 이 세계가 좋았다.
연숙은 수없이 울었다. 그러나 누가 나를 반겨줄 것인가. 바람둥이 술꾼, 장인, - 손짓 잘하는 마작꾼-이미 그는 돌려진 사람이었다.
서울에 돌아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할 때는 눈만 감으면 다 죽은 송장이었다.
어떤 사람의 소개로 여의도에 나갔다가 혜암거사를 만났다.
혜암거사가 눈을 회복하였다는 말을 들고 찾아가니 『관세음』을 권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람이 신은 어떻게 압니까. 신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를 관하여 신을 통하는 수도 있으니 자신이 자신을 관하는 염불부터 해 보십시오.」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으니 죽든지 살든지 한판 벌려볼 일이다.
연숙은 조념관세음(朝念觀世音) 모념관세음(暮念觀世音) 하였다. 생각 생각에 의심이 끊어져 자기마저도 잊어버린 그런 경계에 이르렀을 때 비몽사몽간한 보살님이 나타나 말하였다.
「연숙이는 폐를 잘라버려야 산다.」
꿈속에서이지만 연숙은 폐를 잘라야 산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났다.
「폐를 자르고 어떻게 삽니까?」
보살님은 태연스럽게 말했다.
「네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는 폐로 숨을 쉬지 않았다 .」
「예 ?」
하고 깜박 깨어보니 한 가닥 꿈이었다. 연숙은 병원에 가서 의사와 의논하였다. 의사는 극구 말렸다.
「어차피 한번은 죽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3개월 기간을 줄 테이니 한번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3개월이면 그대로 자연사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연숙은 그로부터 3개월 동안 방안에 들어앉아 단전복기(丹前腹氣)를 배웠다.
폐로 숨을 쉬지 않고 어머니 뱃속에서처럼 배꼽으로 숨을 쉬는 방법을 연습하였다. 3개월 후에 병원에 나갔더니 또다시 말렸다.
「수술하면 죽습니다.」
「죽어도 좋습니다. 그동안 나는 하느님과 불교를 한꺼번에 믿어 죽는다 하더라도 천당 아니면 극락에 가는 것은 의심 없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하여 그는 수술대에 올랐다. 등을 가르고 보니 담배 진(마약의 찌꺼기)이 폐의 모공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있었다. 폐의 뿌리만을 산호의 뿌리처럼 약간 남겨놓고 모두 절단해 버렸다.
그의 손에는 염주가 놓여 있었으나 이미 몽혼된 손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집안사람들은 초상 칠 준비에 바빴고 모두가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었다.
37살 처녀 몸으로 쪽도리 한번 제대로 써보니 못하고 떠나가야 할 딸 연숙을 생각하며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3일이면 꼭 죽고 만다고 한 사람이 3달이 되어도 죽지 않고 누워 숨을 쉬고 있었다.
「목숨이 질기기도 하다. 이왕 갈 바에야 빨리 가는게 좋은데‥‥」
집안사람들은 한숨을 쉬면서 이런 말씀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후 7개월, 연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의 정상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지는 못하지만 소소한 집안일은 조금씩 거들 정도까지 진전이 되었다. 연숙의 마음은 백팔십도로 달라졌다. 허기야 피울 담배가 있고 마실 술이 있더라도 피우고 마실 수 없게 되었지만 그런 생각은 이미 다 놓아버리고 오직 관세음과 같은 마음으로 자비, 구도의 정성이 철저하였다.
이상히 생각한 의사가 연락을 했다 한번사진이라도 찍어 보자는 것이었다.
연숙이가서 사진을 찍은 날은 수술한 날로부터 만 9개월이 되는 날인데 공교롭게도 그의 폐에는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마치 떡잎처럼 두툼한 폐엽이 양쪽으로 뻗어나고 있었는데 아직 굳어지지만 않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덜 굳은 무처럼 힘이 없을 뿐이었다.
의학상으로 볼 때는 나이 30이 넘으면 발육보다는 쇠퇴가 오고 그 쇠퇴하는 폐포는 화석처럼 굳어져 가는 것이 상식인데 37세의 나이에 폐포가 자라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이제 그는 가수의 노릇은 하지 못하고 있으나 소백산 기슭 어느 훌륭한 절 가운데서 많은 구도자들을 지도하는 길잡이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를 생관음(生觀音)이라 부르고 있으며 그의 신심은 만인의 본으로 추대되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오직 홀로 서 있는 나무여, 잎과 가지에 병균이 침해하기 전에 먼저 그 뿌리를 튼튼히 할지니라.」
한 것은 그가 가르치는 진리요 명언이다. 기도란 두 손을 비비며 열을 내는 것도 아니고, 두 손을 하늘위로 뻗치며 날아가기를 원하는 절망적 희망이 아니다.
기도란 기자(祈字)는 비울 기자다.
탐욕과 진에 우치로 꼭 찬 마음을 텅텅 비워서 빈 그릇을 만듦으로써 진리의 밥그릇이 되게 하는 것이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우고 또 비우고 또 비워서 다시는 더 이상비울 수 없는 경계에 다달을 때 방하착(放下着)은 실현되는 것이다.
늘릴래야 늘릴 수도 없고 줄일래야 줄일 수도 없는 그 마음에 밝은 등불을 켜서 어두운 세계를 밝히는 마음, 그 마음이 곧 방하착인 것이다.

<속편 영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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