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좌
[ 朴忠佐 ]
시대 | 고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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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사망 | 1287년(충렬왕 13년) ~ 1349년(충정왕 1년) |
본관 | 함양(咸陽) |
이명 |
자 : 자화(子華) 호 : 치암(恥菴) 시호 : 문제(文薺) |
직업 | 문신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화(子華), 호는 치암(恥菴).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이 원나라에서 주자학을 배우고 돌아오자 과 함께 제일 먼저 가르침을 받았다. 충숙왕 대에 문과에 급제했으나 1332년(충숙왕 복위 1), 전라도 안렴사로 나갔을 때 왕의 총애를 받던 박련(朴連)이 양민을 노예로 삼으려는 것을 막다가 그의 참소로 무고당해 해도(海島)로 유배되었다. 풀려나온 이후에는 한동안 관직에 등용되지 않았다가 내서사인·밀직제학·개성 등을 지냈으며, 함양부원군(咸陽府院君)에 봉해졌다.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해 개혁을 추진할 때 판전민도감사(判田民都監事)가 되어 활약했으며, 이듬해 (政房)을 복치할 때는 찬성사로서 제조관(提調官)이 되었고, 이어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올라 순성보덕협찬공신(純誠輔德協贊功臣)의 호를 받았다. 시호는 문제(文薺)이며, 예안의 역동(易東書院)에 봉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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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 박충좌 출처: 국역 고려사: 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