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 본생

동자 본생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본생설화

• 주제 : 본생
• 국가 : 인도

『옛날 설산에 한 동자가 있었다.
자리(自利)의 행을 주로 닦고 있었으므로 설산동자라 이름 했다.
그 때 모든 하늘 신들이 의논했다.
「저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얼마나 도심(道心)이 지극한가 시험함이 어떤가?」
「누가 저기 내려가 그를 시험하려는가?」
「내가 하겠다.」
이렇게 여러 신들이 의논한 뒤 제석천왕이 모든 하늘 신들은 대신하여 그를 시험하고자 무서운 나찰귀신으로 변하여 그의 앞에 나타나 노래했다.
「모든 행은 무상하다.」
「이것이 생멸법이다.」
한편 설산동자는 오랫동안 공부를 계속하였으나, 뛰어난 스승이 없어 매우 고민하던 중 어디서 일찍이 듣지 못한 소리가 들려옴을 듣고 문득 개오(開悟)를 얻고 마치 어두운 밤에 불빛을 보듯 즐거워했다. 「인연으로 된 것은 하나도 무상 아닌 것이 없다. 성했던 것은 쇠해지고 영화로운 것은 망한다.
이것은 옛날 부처님들이 설했다고 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진리임에 틀림없다.」
하고 동자는 일어서서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그 곳엔 사람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우거진 숲 속에 이상스럽게 생긴 나찰귀신이 풀어진 눈동자를 하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저것일까? 아니 어떻게 저런 물건이 그런 귀한 시를 외울 수 있겠는가?」
하면서도 동자는 물었다.
「나찰이여, 그대가 그 귀한 법문을 일렀는가?」
「그렇다.」
「대사여, 이 글은 과거 모든 부처님들의 바르고 밝은 진리를 알고 있다.
그런데 현재는 외도들의 삿된 법만이 퍼져 세상을 현혹하고 있다. 어떻게 그는 이런 훌륭한 법을 얻을 수 있었는가?」
나찰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 그런 것이라면 나에게 묻지 말라. 나는 지금 오랫동안 굶어 말 한마디 할 용기가 없다.
얼마나 오랫동안 굶주림으로 헛소리를 했나보다.」
하고 그 글귀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설산동자는
「그런 말씀 마시고 원하노니 그 시의 전부를 나에게 가르쳐 주시요.
지금 그것만으로는 의미가 완전치 못하므로 그 뒤가 알고 싶습니다. 재시(財施)의 공덕에는 한도가 있어도 법시(法施)의 공덕에는 한도가 없다하지 않습니까? 만일 당신이 나머지 시를 나에게 일러 주신다면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감사할 것이며 일생을 당신의 제자로서 봉사하겠습니다.」
「당신은 대단히 현명한 것 같은데 어떻게 다만 자기 일만 생각하고 남의 일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합니까? 나는 방금 말한 바와 같이 배가 고파 그런 시 같은 것은 읽어 드릴 기력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으로 그 주림을 채울 수 있습니까?」
「내가 만일 나의 법을 이야기 한다면 당신은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그런 말씀은 묻지 마십시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구할 수 있는 것은 구할 수 있다 하고 구할 수 없는 것은 구할 수 없다 할 것인데-설사 나는 내 몸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그 나머지 법문만 일러 주신다면 조금도 놀라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말하겠습니다. 나의 밥은 사람의 생살이요. 내가 마시는 물은 사람의 생생한 피입니다.
나는 참으로 박덕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서는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피와 살이 하늘 신들의 호위 아래 복덕이 충만해 있으므로 나는 참아 그것을 해칠 수 있습니다. 이제 나는 죽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이 살과 피를 그대에게 공양하겠습니다.
단지 그 후 남은 시를 일러 주십시요. 아무래도 나는 죽을 몸이니 죽음으로 진리를 체득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바보 같은 말은 하지 마십시요. 사람이 진리를 찾고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다 살기 위한 방법인데 죽음으로서 진리를 구한다면 진리를 체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생각이 어리석습니다. 쓸데없는 돌자갈 같은 그릇을 주고 귀한 7보의 그릇을 얻는다면 누구든지 다 할 것이 아닙니까? 나는 지금 망해가는 육체를 버려서 망하지 않는 법체를 얻으려합니다. 만일 그래도 당신이 믿지 않는다면 나는 신과 부처님들께 증명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굳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나찰귀신은 마지막 반게의 시를 읊었다.
「생멸을 멸해 다 하면
적멸로 낙을 삼는다.」
「아 참으로 그렇다. 이 무상생멸의 경계를 초월한 그 곳이 바로 적멸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그 낙이 곧 열반이다.」
하고
「나는 나 혼자만 이 시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즐거워 할 수가 없다.
이제 뭇 생명을 위하여 나는 이것을 돌 위에 새기리라.」
하고 다시 글을 돌 위에 새겼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기(生滅滅己) 적멸위락(寂滅爲樂)

「자 이제 나는 죽어도 한이 없다.
이제 나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킬 터이니 어서 당신은 나를 잡수세요.」
하고 그 몸을 그의 앞에 던졌다.
그러나 나찰은 차마 덤벼들지 못했다.
몇 자 안되는 시 한 수를 듣고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체득하고 환희 용약하는 그 동자의 모습을 참아 잡아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자는 내가 목숨이 붙어있어 달겨 들어 먹지 못하나 하고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갔다.
그때 나무신이 그것을 보고 물었다.
「동자여 무엇 때문에 이 험한 나무에 오르는가?」
「나에게 높은 법을 가르쳐주신 은덕을 보답하기 위해 이 몸을 공양코자 한다.」
나무신은 깜짝 놀랐다.
「나도 들었지만 그 작은 시 몇 줄에 생명을 바꾸다니―그것이 그렇게 값어치 있는 것인가?」
「그렇다. 나무신이여, 이것은 3(三)세 모든 부처님들이 가르치신 정법이다. 얼마나 많은 불 보살들이 이 같은 진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수행을 쌓아 왔는지 아는가? 나를 위해서, 중생을 위해서 이 까짓쯤 하나쯤은 아까울 것이 없다.」
하고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세상의 간탐자들이여, 나의 이 대도를 보라. 작은 시여(施與)로 마음이 교만해진 자들이여, 이 작은 시 한수를 위하여 일신을 버리고도 오히려 아까운 생각이 없이 죽어가는 이 동자의 즐거운 마음을 보소서.」
그리고 그는 곧 그 높은 나무 위에서 뛰어 내렸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천자 높은 나무위에서 몸을 던졌으니 필경 박살이 났어야 할 설산동자가 어떤 신선의 도라솜 같은 손위에 얹어져 있으니 말이다.
동자가 물었다.
「아.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석천왕은 여러 많은 하늘 신들과 함께 그 발밑에 절하며,
「존자여, 당신은 참으로 훌륭한 보살입니다. 무명의 어둠 속에서 큰 법의 밝은 빛을 점화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시는 비할데 없이 위대한 보살입니다. 나는 어리석어 이렇게 높은 보살님을 괴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래의 참법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비로소 알고 감사합니다.
나는 결정코 당신이 머지않아 위없는 정각을 성취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때엔 이 어리석은 제석도 버리지 마옵소서.」
하고 전후 사정을 소상히 일렀다.

불타는 이 설화를 마치고
「그 때의 설산동자는 오늘 나다.」하였다.

연관목차

217/1978
동자 본생 지금 읽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