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김좌진

[ 金佐鎭 ]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출생 - 사망 1889년 ~ 1930년
본관 안동(安東)
이명 : 백야(白冶)
직업 항일 투사

항일투사. 호는 백야(白冶), 본관은 안동. 충남 홍성 사람. 두한(斗漢, 1918~72)의 아버지. 명문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대한에 가입. 1915년 체포되어 3년간 복역했다. 출옥 후 회원, <한성일보> 이사로 활동하다가 3·1운동 때 만주로 건너가 정의단(正義團)에 가입, 이를 로 개편하고 총사령관이 되었다. 20년 10월 의 등 독립군 연합부대와 함께 에서 일본군을 대파했다. 청산리전투 후 일제의 보복작전을 피해 부대를 이끌고 노령 이만으로 이동했다. 이때 북로군정서군의 일부는 자유시로 들어갔으나, 김좌진은 자유시에 들어가지 않고 다시 만주로 돌아와, 25년 김혁·조성환 등과 (新民府)를 세우고 총사령이 되었으며, 27년 중국 구국군사령관 양우일(楊宇一)과 항일 공동전선을 펴기로 합의, 한·중 연합군을 조직했으나 장작림(張作霖)의 탄압으로 실패했다.

신민부가 (國民府)로 통합되자 29년 정신(鄭信)·민무(閔武) 등과 함께 한족총연합회를 결성, 주석에 취임했다. 이 과정에서 신민부와 공산주의 세력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으며, 그 결과 김좌진은 30년 1월 24일 중동선(中東線) 산시역(山市驛)에서 공산주의자 청년에게 저격당해 사망했다. 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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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족말살정책과 항일운동
6. 무장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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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회주의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