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독립전쟁
[ 武裝獨立戰爭 ]
시대명 | 근대/일제강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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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만주·· 등지에서 전개된 민족독립을 위한 항일무장투쟁. 3·1운동 직후 만주·연해주 지방에서는 수많은 무장독립전쟁 단체들이 조직되었으며, 이들은 1920년대에 들어서 ··의 3부로 나뉘어 활동을 전개했다. 3부는 독립운동전선의 통일을 위해 3부합작을 시도했으나,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는 못하고, 한족총연합회와 혁신의회·로 개편되었다. 한족총연합회와 혁신의회는 ·한국독립군을 결성, 북·동만주 일대에서 활약했고, 국민부를 계승한 ·조선혁명군은 남만주 일대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양자 모두 일제의 대공세에 밀려 30년대 중엽 중국본토로 퇴각하고, 그 후 무장독립전쟁은 만주지역의 동북항일연군 및 , 화북(華北) 지방의 , 중경(重慶) 임시정부의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해방 후 이룩할 국가건설의 방향도 각각 구상하고 있었으며, 마지막까지 일제에 대항하면서 민족해방운동의 기본 동력이 되었다.
북간도∙북만지방 독립군단과 단체
항일단체 또는 독립군 부대명 |
중심지 | 주요 임원 | 주 요 사 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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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
연길현(延吉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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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춘대한민국의회 |
혼춘(琿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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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
왕청현(汪淸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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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
연길현(延吉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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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
왕청현(汪淸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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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
왕청현(汪淸縣) |
단 장 이범윤(李範允) |
단내에 군무부(軍務部)를 두어 독립군 3백~4백 명을 편성, 독립전쟁을 적극 주장하나, 임정(臨政) 노선을 좇지 않고 구(舊)한국의 복벽(復辟)을 주장. |
의민단(義民團) |
북간도(北間島) |
단 장 방우용(方雨龍) |
천주교도가 중심이 되었고, 국내 진입전(進入戰)을 주장하고 군총(軍銃) 4백정 이상을 보유. |
의군부(義軍府) |
연길현(延吉縣) |
이범윤(李範允) 진학신(秦學新) |
한말(韓末) 의병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고, 1920년 8월경에 무장독립군이 4백 명 이상이었으며, 일제 식민지 통치기관 및 그들 군경영소(軍警營所) 파괴에 주력. |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
혼춘(琿春) |
회 장 김규황(金奎晃) |
기독교 성리교인(聖理敎人)이 중심(中心)이 되어 조직되고, 1920년 7월 상해임정(上海臨政)파견원 김응식(金應植)의 보고에 의하면 독립군이 약 5백 명이라 한다. |
대한정의군정사 |
안도현(安圖縣) |
총 재 이 규(李 圭) |
한말 의병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했다. 그후 1919년 10월에 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로 개편했다. 그 병력은 임정(臨政)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본영(本營)인 내도(內島)에 둔 100명 외에도 소사동(小沙洞)에 240명과 화전현(樺甸縣) 고동동(古桐洞)에 100명이 있었다. |
야단(野團) |
북만(北滿) |
단 장 신 포(申 砲) |
북만중동선(北滿中東線) 일대의 청림교도(靑林敎徒) 들이 조직한 것이라 하며, 1920년 5월 임정(臨政)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회원이 약 2만이나 되었다 한다. 무장독립군은 없는 것 같으나, 군복 수천 벌을 제조하고 있었다 한다. |
혈성단(血誠團) |
흑룡강(黑龍江) |
단 장 김국초(金國礎) |
1920년초 청년(靑年)들이 조직했으며 애국청년혈성단 (愛國靑年血誠團)이라고도 했다. |
신대한청년회 |
혼춘(琿春) |
회 장 이경호(李京鎬) |
1920년 혼춘(琿春) 청년들로 조직됐다. |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 |
연길현(延吉縣) |
단 장 서성권(徐成權) |
1920년 4월경에 청년들만의 항일단체로 조직됐다. |
복황단(復皇團) |
혼춘(琿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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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한 공교회원(孔敎會員)이 많았고, 독립 사상의 고취와 군자금 수집에 주력하여 그 자금을 상해(上海) 임정(臨政)에 보냈다. |
창의단(倡義團) |
북간도(北間島) |
이범모(李範模) |
북간도(北間島)와 무산(茂山)지방이 세력권이며 이범윤(李範允)의 부하였던 이범모(李範模)가 조직. |
청년맹호단(靑年猛虎團) |
북간도(北間島) |
단 장 김상호(金尚鎬) |
명동(明東) 및 정동(正東)학교의 교직원과 학생들로 조직. |
급진단(急進團) |
혼춘(琿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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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직후 조직되고 노령(露領)의 급진파와 관련이 깊었다 한다. |
외정회부(外政會部) |
혼춘(琿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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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광복단(學生光復團) |
왕청현(汪淸縣) |
김 승(金 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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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황단(保皇團) |
북간도(北間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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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열대(忠烈隊) |
용정(龍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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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회(建國會) |
혼춘(琿春) |
황병길(黃丙吉) 박치환(朴致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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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단(自衛團) |
국자가(局子街) |
단 장 최경호(崔經浩) |
국자가(局子街)에 있던 중국 도립(道立) 중학교 한인학생과 졸업생으로 조직. |
(3∙1운동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