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군정서

북로군정서

[ 北路軍政署 ]

시대명 근대/일제강점기

만주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에 본부를 둔 독립운동단체. 구한말 의병출신으로 조직된 (重光團)이 그 모체다. 중광단은 청년교육·계몽사업에 치중하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군사행동을 목적으로 하는 정의단(正義團)으로 확대되고, 다시 정의단은 군정부조직으로 개편을 단행, 1919년 12월 북로군정서로 개칭했다. 총재에 (徐一), 총사령관 , 연성대장(硏成隊長) 이 취임했으며, 북간도에서 유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단체로 성장했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920년 8월 현재 북로군정서는 독립군 약 1천 6백 명, 총 1천 3백 정, 권총 150정, 기관총 7문의 화기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 사관연성소를 설치하여 이범석 등을 교관으로 두고 군사를 양성하는 한편, 소학교·강습소를 세워 한교의 계몽·교육에도 힘썼다. 북로군정서는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뒤, 일본군의 보복작전을 피해 노령 이만으로 이동, 다른 독립군부대들과 함께 자유시(自由市)로 들어갔다. 그러나 김좌진·이범석은 자유시로 가지 않고 되돌아왔기 때문에 을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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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족말살정책과 항일운동
6. 무장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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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회주의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