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무정

[ 武亭 ]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출생 - 사망 1905년 ~ 1952년
직업 독립운동가, 공산주의운동가, 군인

독립운동가·공산주의운동가·군인. 함북 경성 사람. 14살 때인 1919년 에 참가하고 18살에 중앙고보를 중퇴, 만주를 거쳐 북경(北京)으로 갔다. 24년 북방군관학교 포병과를 졸업, 중국군 포병대위가 되고, 25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 군대를 떠나 혁명운동에 참가했다. 27년 체포령이 떨어지자 지하로 들어가 비밀공작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으나, 1만 명의 중국 학생들의 석방요구 시위와 동지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상해(上海)로 간 그는 29년 상해폭동의 총지휘를 맡았다가 체포되어 징역 2개월을 선고받고, 31년 서금(瑞金)의 중화소비에트 정부수립에 참가, 승진을 거듭해 군사위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34년 중국공산당이 군의 공격을 피해 근거지를 안전지대로 옮기기 위해 2만 5천 리의 대장정에 나섰을 때 무정은 작전과장에 임명되어 당의 사활을 건 대장정을 성공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연안(延安)에 도착한 후, 36년 홍군육군대학에서 수학, 졸업하고 팔로군 총사령부 작전과장이 되었으며, 포병부대를 창설하여 단장이 되었다. 41년 중앙당학교와 항일군정대학 출신의 조선인들을 모아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조직, 회장이 되고, 42년 이를 화북으로 개칭하고 중앙집행위원을 지냈다. 45년 총 사령에 취임했다. 해방 후 귀국, 46년 북조선 중앙위원이 되었고, 한국전쟁 때는 제24군단장을 지냈다. 50년 12월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았고, 그 후의 소식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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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파

연안파 연안파. 조선의용군 출신의 정치집단. 중국 연안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하다가 해방 후에 중국공산당의 후원 아래 입북하였다. 김일성의 빨치산파와 대립하다가 6.25 전쟁과 ‘8월 종파사건’으로 축출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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