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보전투

보천보전투

[ 普天堡戰鬪 ]

시대명 근대/일제강점기
연도 1937년

1937년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의 국내진공작전의 하나로 함남 갑산군 보천보를 공격한 전투. 보천보는 면소재지로서 일제의 각종 관청과 산림경영소가 있고, 항일유격대의 국내진출을 방해하는 군사요충지였다. 6월 4일 밤, 동북항일연군 제2군 6사는 보천보를 급습, 군사시설·경찰·통신기관을 파괴하고 다수의 군수품을 빼앗은 다음 조국광복회 10대강령> 일본군대에 복무하는 조선인 형제에게 고함> 등의 격문을 살포한 뒤 압록강을 넘어 철수했다. 일제는 군·경찰·산림경찰대를 동원, 이들을 추격했으나, 이들 역시 6월 5일 대패했다. 이 전투는 국내신문에 보도되어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민중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었다. 한편, 일제는 조국광복회 국내조직을 탐색하여 37년 10월부터 2차에 걸쳐 무려 739명을 검거했다. 이를 이른바 <혜산사건>이라 한다. 또 일제는 ·만주군을 동원하여 대토벌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전투 후 반일민족세력의 통일전선에로의 집결이 한층 강화되었고 민중들의 지원도 더욱 활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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