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엽사터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패엽사터

[ 貝葉寺-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사찰 · 사당>터
유물유적시대 삼국
행정구역 황해남도>안악군>패엽리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71호

황해남도 안악군 패엽리 서북쪽 오봉산에 있는 사찰터. 패엽사는 외봉의 동남쪽 기슭 개울가에 있는데 806년 구엽대사가 건립한 것으로 전해오며 당시에는 절 이름을 한산사라 하였다. 그 후 구엽대사가 인도에 가서 패엽(파초와 비슷한 나뭇잎)에 불경을 써가지고 왔다 하여 절 이름을 패엽사로 고치고 구엽대사도 패엽사로 불렀다. 패엽사는 지난 6 · 25전쟁시기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터만 남아 있다.

이 절은 3가지 자랑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선 한산전(패엽사의 대웅전)의 건물형태가 탑 모양으로 웅장한 것이며, 다음으로는 『법화경』(불경)의 목판이 보관되어 있은 것이며 끝으로는 구엽사가 사용하던 목가면(나무로 만든 얼굴씌우개)이 있는 것이다. 이 목가면과 관련하여 다음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구엽대사의 용모는 참으로 미남이었으니 절에 오는 여인들치고 그를 한번 더 쳐다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어느 날 신라의 이름 높은 명기인 미려가 절에 찾아들었는데, 그는 천하절색이라 당시 홍덕왕의 남다른 총애를 받았다. 그들이 서로 눈빛이 마주쳤을 때 두 사람은 동시에 "정말 절색이로군", "아, 장부다운 사내"라는 생각을 하였다. 미려의 가슴속엔 그를 한 번 녹여보려는 여기의 야심이 안개처럼 서려올라 “대사님, 30년의 도를 닦아 그 명성은 높다지만 신체의 욕망은 무엇으로 참소이까?”고 넌지시 떠보았다.

대사가 “참는 뜻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다음에야 굳이 참는다는 말이 필요없지요”하고 답하자 미려는 자존심이 상했다. “대사님, 하룻밤 달나라에 놀러갈까요?” 미려의 말을 듣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구엽대사는 단풍나무 가지를 꺾어 던지며 조용히 “명기의 실상은 꽃의 부끄러움을 더해야 하느니라. 붉은 꽃은 시들면 곧 검어지기 마련이며 물이 고이면 곧 썩어버리기 마련이다”고 했다. 미려의 얼굴은 타는 불길처럼 빨개졌다.

다음날 미려는 “대사님, 굳이 이 땅의 여인들에게 얼굴을 감추오이다”라는 글 쪽지를 남기고 서울(경주)로 떠났다. 이 소식이 퍼지자 마한촌 사람들은 패엽사 주변에 1,000그루의 단풍나무를 심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먹은 사람들은 단풍나무를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알라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구엽대사는 목가면을 쓰고 절에 들어서곤 하였다고 한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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