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 유적유물

앙코르와트 유적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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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 전경 (1)
앙코르와트 전경 (2)
앙코르와트 전경 (3)
앙코르와트 전경 (4)
앙코르와트 전경 (5)
앙코르와트 유적유물 본문 이미지 1
앙코르와트 전경 (7)
앙코르와트 전경 (8)
앙코르와트 전경 (9)
천상계를 오르는 계단
앙코르와트 천상계 (1)
앙코르와트 천상계 (2)
앙코르와트 천상계 (3)
앙코르와트 천상계 (4)
앙코르와트 전경 (15)
천상계에서 바라본 인간계
석불좌상 (1)
석불좌상 (2)
석불좌상 (3)
와불
벽면부조 (1)
벽면부조 (2)
벽면부조 (3)
벽면부조 (4)
벽면부조 (5)
벽면부조 (6)
벽면부조 (7)
벽면부조 (8)
앙코르와트 보리수 나무
캄보디아의 승려들

출처: 문화원형백과

지역 : 캄보디아

* 힌두교(Hinduism)란?

힌두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종교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미묘하며 학식 높은 철학자, 종교인조차도 자신있게 정의 내리지 못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우주관을 가진 종교이다.
힌두교를 종교철학이나 사상면에서 얘기하자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보다 단순해지자,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힌두 사원을 탐방했을 때 보다 쉽게, 그러나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지침서 정도로만 사용하기 위해 힌두교라는 종교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

어느 민족이든 마찬가지지만 고대 인도에는 무수한 토속 신앙이 마을마다, 부족마다 자리잡았고 그 숭배의 대상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자연적인 재앙, 태풍, 태양, 홍수, 지진 같은 것을 다루는 초능력을 가진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형태였다.
계절의 변화도, 곡식이 자라는 것도,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작은 새, 물고기, 곤충 같은 것에도 정령이 깃들어 있다 여겼고 거기에 대해선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그런 다신교적인 토속 신앙은 기원전 1500년경 유럽계 아리안 족의 인도 유입에 따라 일대 획을 긋게 된다. 단순하던 믿음이 아리안 통치자들에 의해 유럽적 형태의 신화 요소를 가미한 하나의 신화 체계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 초기 신화 시대에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영웅, 무속인 등을 신격화하는 구조를 취하며 이 시기에 집대성된 종교경전을「베다(Veda)」라 하며 「베다」에 등장하는 신을 숭배하던 시기를 베다 시기라 한다.

「베다」의 등장은 기원전 1300년 경으로 보며 이후 4대 베다가 형성되어 토착화되기까지 수백년간 인도인을 정치, 경제, 사회, 종교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지침서가 되었다.

이후 더욱 체계적이고 신권집중적인 종교로 변모하는데 바로 「베다」에 근거를 둔 브라만교의 등장이 그것이다. 토속 신앙시대는 물론 「베다」신화 시대에도 그들의 종교는 다신교였으나 브라만교에선 창조의 신 브라흐마 만을 절대신으로 숭배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종교철학의 급진적 발전으로 인도의 종교는 종파와 신앙 체계를 초월하여 범인도적인 종교로 진화하는데 바로 "인도의 종교"라는 뜻의 힌두교(Hindu)이다.

힌두교 신화 체제로 접어들면서 신들의 역할은 정형화되고 종교관도 집약적으로 정비되었다. 힌두 신화는 우주의 생성 원리를 창조의 신 브라흐만, 파괴의 신 쉬바, 유지와 질서를 주관하는 비쉬누의 삼신일체에 의해 창조되고 파괴되었다가 다시 재창조되는 무한대의 우주 질서가 유지된다고 믿는다.
초기 힌두 신화는 아리안 족의 통치수단인 카스트 제도에 의해 신관만이 성전을 접할 수 있으며 일반인은 의심없는 믿음만 종용 받았으나「라마야나(Ramayana)」,「마하바라타(Mahabahrata)」 같은 민중예술적인 대서사시로 꾸며져 일반 민중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서 새로운 종교관을 형성하기에 이르른다.
그리고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신의 말씀을「바가바드 기타(Bhagabad Gita)」를 통해 일반 민중이 읊조릴 수 있게 될 만큼 대중화된다.

이런 새 종교사관도 힌두교가 갖는 특징 즉 이질적인 종교관에 대한 포용력과 다신교와의 절묘한 융합에 의해 무리없이 받아들여졌으며 그 접점 역할을 화신(Avatara)이란 새로운 형태의 종교사관이 주도했다.
즉 힌두교에선 화신이라고 하는 융통성 있는 변형을 통해 하나의 신의 역할을 다신교에 접목시켰으며덕분에 다신교는 다신교대로, 또 브라만교는 브라흐만 만을, 비쉬누 파는 비쉬누 신만을 유일신으로 믿으며 세상 모든 신이나 영웅, 인격체, 생물에 이르기까지 이들 신의 화신이 조화를 이뤄가는 것으로 믿는다.
동시에 불교라고 하는 이질적인 종교 역시 비쉬누 신의 화신으로서의 석가모니라는 해석에 의해 힌두교와 불교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소개]
앙코르톰의 남쪽 약 1.5km에 있으며, 12세기 중반경에 건립되었다.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하지만, 반영구적 사원은 아니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婆羅門敎) 주신(主神)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 ·부조(浮彫)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바깥벽은 동서 1,500m 남북 1,300m의 직사각형으로 웅장한 규모이며 정면은 서쪽을 향한다.
바깥벽 안쪽에서 육교로 너비 190m의 해자(垓字)를 건너면 3기(基)의 탑(塔)과 함께 길다란 익랑(翼廊)이 있고 여기서 돌을 깔아놓은 참배로(參拜路)를 따라 475 m쯤 가면 중앙사원에 다다른다.
사원의 주요 건축물은 웅대한 방추형 중앙사당탑(中央祠堂塔)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자형으로 뻗은 익랑, 그것을 둘러싼 3중의 회랑과 회랑의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으로 이루어졌는데, 구성은 입체적이고 중앙은 약간 높다.

회랑의 높이는 제1회랑(215×187 m)이 4 m, 제2회랑(115×100m)이 12m, 제3회랑(60×60m)이 25m이다.
세계의 중심이며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須彌山)은 돌을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쌓아놓았으며, 높이 59m의 중앙사당탑의 탑 끝에서 3중으로 둘러싼 회랑의 사각탑 끝은 선으로 연결해보면 사각추(四角錐)의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이 사원의 뛰어난 미술적 건축양식은 인도의 영향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건물의 형태나 석조장식(石彫裝飾) 등 모든 면에서 앙코르왕조의 독자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전장(全長) 760m에 이르는 제1회랑벽(回廊壁)의 부조, 제2회랑 안의 돌로 조형한 샘물[泉水], 제3회랑 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주랑(柱廊)과 탑 등은 뛰어난 구조물이다.
조형에서는 하늘의 무희(舞姬) 아프사라스, 여러 개의 머리를 마치 부채처럼 치켜든 커다란 뱀, 창문·기둥의 장식조각 등이 돋보인다.
앙코르왕조는 13세기 말부터 쇠망하기 시작하여 15세기경에는 완전히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와트도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가 이곳을 발견, 그때부터 다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지역은 1972년부터 외부인에게 폐쇄된 이후 낮이면 베트남군이, 밤에는 크메르루지의 게릴라가 번갈아 장악하면서 전화(戰禍)와 약탈로 훼손되어 수 많은 불상이 조각난 채 나뒹굴고 대부분이 외국으로 유출되어, 완전한 복구는 어려운 상태이다.
82년 집계에 의하면 앙코르와트의 중요 유물 30점 이상이 없어졌고, 전체 유적의 70 %가 복원불능의 상태로 파괴되었으며, 사원 근처 왕궁의 유물 약 1,000점이 도난·파괴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83년이 유적지의 복원을 위해 조사단의 파견을 캄보디아 당국에 통보한 바 있다.

(캄보디아 · 앙코르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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