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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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거사(浮雪居士) (신라 선덕여왕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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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거사(浮雪居士) (신라 선덕여왕 시절)
본명 : 진광세 (陳光世)
법명 : 부설 (浮雪)
출생지 :신라(新羅) 수도(首都) 경주 성내(慶州 鐵內)

※부설거사는 고승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시나리오 소재를 가지고 있다.
(주)거사(居士)는 불교의 남자 신도를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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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던 해 경주 남내 향아라는 고을에 진씨(陳氏)의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광세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영리하여 하나를 들으면 천을 깨쳤다.
어떤 때는 흙으로 탑을 세우고 절을 하기도 하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고향생각을 하는 듯 깊은 선정에 들었다. 스님들을 만나면 기뻐하고 미물 곤충이라도 죽이는 것을 보면 슬퍼하였다.
[사진자료 : 내변산 월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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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에 불국사 원정스님께 출가하여 일곱 살에 머리를 깎았다.
“오늘부터 네 이름을 부설(浮雪)이라 하고 자를 천상(天祥)이라 부르라.”

찬서리 푸른 소나무 같은 지조와 절개는 불계를 지키지 아니하여도 청정하였고, 맑은 물 밝은 달과 같은 마음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하였다. 하는 일마다 헤아리기 어렵고 걸음걸이마다 법도가 있었기 때문에 영남에 문동(文童)이 났다고 모두 칭찬하였다.
[사진자료 : 내변산 월명암 부설전 안내문과 원문]

밖으로 중옷을 입고 안으로 도덕을 키워가더니 도반 영조(靈照) 영희(靈熙)와 함께 의논하였다.

“영남의 인심은 취득한바 오래니 팔도를 유람하며 선지식을 찾아보는 게 어떠한가?”

“좋은 말이나 나가면 고생이 앞설 것인데 괜찮겠는가?”

“공부는 고생을 스승으로 삼는 것이다. 스승 밑에서 어리광만 부리지 말고 독립심을 길러 새가 하늘을 날아가듯 자재심을 길러보자.”

그리하여 세 사람은 바랑하나씩을 짊어지고 남해를 건너 두류산에 이르렀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더니 싱싱한 나무에 푸른 물이 가히 볼만하구나.”

화엄사에 이르러 큰 선지식을 뵙고 35년 동안 4아함(阿含)과 음악?철학?의학?과학?논리 등을 밝혔다. 이윽고 천관사(天冠寺)에 들어가 두문불출하고 선을 닦았다.

송홧가루에 연꽃열매를 먹으며 5년을 지내고 보니 온 몸에서 솔 향이 가득하고 배속에 낀 티끌하나 보이지 않았다.

영조가 시를 읊었다.

좋은 곳 가리어 깊숙이 살던 곳,

소나무 우거진 산마루 암자였네.

선하다 둘 아닌 도리를 깨달으니

삼승의 구경경지 이름도 기쁘구나.

옥을 캐 놓았으나 아는 이 누구인가.

꽃 머금은 새들만이 지저귀네.

쓸쓸히 세속 일 없으니,

한 가지 법 맛이나 보고 살리라.

영희도 시 한 수를 읊었다.

구름 걷히니 산등성이 드러나

노송에 덮인 암자 달빛에 젖어드네.

지혜의 칼을 천만번 가니

마음속의 물줄기 두세 번 솟구치네.

깊은 골 고요한 봄

산새들은 정답게 노래하네

무상의 즐거움 가슴속에 꽉 차니.

현관에도 참예할 것 없어라.

부설이 노래했다.

그대들과 고요히 빈마음 찾아

구름 학과 작은 암자 살았노라.

이미 둘 아닌 줄 알았다면 둘 없는 곳에 갈 것 없나니

누구에게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을 물을 것인가.

고요한 뜰 가운데 아름다운 꽃들이여,

무심한 창밖에 새소리 듣노라.

바로 여래의 경지에 찾아 들어갈지언정

구태여 오래도록 수행할 것 있겠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오대산은 문수도량이라 그곳에 가면 더욱 기쁜 일 생길 것 같아 세 사람은 바랑을 짊어지고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두릉 백련지에 이르러 쉬어갈 곳을 찾으니 전래로 불심이 이는 구무원(仇無寃)의 집에서 쉬게 되었다.

“목마른 마음에 스님들을 만나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하고 법을 청해 아는대로 설법하니 감격해 마지않았다.

저녁 밥 때가 되어 상을 들고 온 어머니를 따라 들어오던 과년한 딸 묘화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부설님.”

20년 동안 벙어리 생활을 하던 묘화가 갑자기 말을 하게 되자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허허, 묘화가 말을 하다니.”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묘화가 말했다.

“아버지 저는 저 부설스님과 결혼하여 살고 싶습니다.”

“도 닦는 사람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게냐?”

“불도는 만난 인연 소중히 여기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조와 영희가 나서며 말했다.

“안돼. 수행자에게 연정을 품으면 지옥종자가 된다.”

묘화가 말했다.

“지옥에 가도 좋으니 같이 살게만 허락해 주십시오.”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여섯 사람은 서로 눈치만 보며 부설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쯤 침묵이 흐른 뒤 부설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연없는 중생은 건지지 못한다 하였는데, 인연있는 중생도 구제하지 못한다면 불도가 무슨 영험이 있다 하겠소. 나는 묘화와 결혼하여 두 부모를 모시고 살터이니 영조?영희스님은 길을 떠나 10년 후에 만나기로 하세.”

영조가 한탄을 하며 노래 불렀다.

“계행 없는 지혜는 헛된 견해

자비란 핑계로 애욕의 그물에 걸렸도다.

둘이서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고

하나의 도는 스스로 천연스럽네.

흘러 가는 달은 구름 따라 달리고

나부끼는 바람 펄럭이는 깃발보고 알리라.

날랜 칼날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어찌 색에 머물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영희가 노래 불렀다.

삼태미로 쌓아올린 높은 대(臺)여,

구부에 날개 치도록 좋은 불연이로다.

수행은 대나무 쪼개듯 하고

득도는 달리는 말에 채찍하듯 하여야 하리.

삼생의 누(累)를 변하지 못하니

원씨 집 인연에 한 생각 얽매였네.

언젠가는 엎드려진 물 다시 담아서

먼훗날 서로 만나 발걸음 같이하기 바라네.

부설이 대답하였다.

평등한 깨달음은 행에도 차별없네.

깨달음은 인연 없는데서 이루지만

제도는 인연 있는데서 이룬다네.

진리에 몸 맡겨 세상을 살아가면 마음 또한 없어지고

집에 머물러 도를 이루니 봄이 오히려 만연하도다.

둥근 구슬 손바닥에 쥐고 붉고 푸른빛 분별하고

밝은 거울 앞에 대하니 호인(胡人)과 한인(漢人) 분명하네.

빛과 소리에 걸릴 것 없으니

굳이 깊은 산골에 오래 앉을 필요 없으리.

드디어 솔잎으로 다린 한 잔의 차로 이별을 나누었다.

“도는 옷에 있지 않고 때와 장소에 관계되지 않으니 부처님 뜻 따라 깊이깊이 참구하여 장차 이 늙은 이를 경책해주게.”

부설은 그날부터 소 몰고 쟁기질 하고 밭 갈고 씨를 뿌리며 꼴을 베고 소죽을 끓였다. 낮에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고 저녁에는 방아를 찧어 늙은 부모님을 봉양하는데 효심을 다했다.

몸은 비록 진세에 묻혀 있으나 마음은 물밖에 초연하였다. 뜻을 정미롭게 하고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골고루 닦았다. 비오는 날이나 눈오는 날에는 가마니를 짜고 신발을 삼고 삼태기로 만든 여가에 경?율?론 3장을 통해 보고 도?유의 학식까지 구비하니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여들어 저자처럼 벅적거렸다. 귀머거리는 귀가 트였고, 앉은뱅이는 서서 걷고, 벙어리는 말이 트였다.

이렇게 15년을 지내는 사이 묘화의 몸에서 떨어진 등운(登雲)과 월명(月明)이 더욱 집안을 빛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용모와 자상한 거동을 가진 등운, 단정하면서도 은근하고 절개 높은 기상을 가진 월명은 학문에 있어서도 아버지 어머니를 닮아 한 가지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쳤다.

고을의 덕망 높은 이승계(李承桂)씨와 상사벼슬을 하고 있는 김국보(金國寶) 등 귀한 사람들이 왕래하며 교분을 맺어 서로 한 가운데서 얻은 즐거움이 적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밖에서 주인을 찾는 소리가 나 나가보니 옛적에 헤어졌던 영조와 영희가 찾아왔는지라 부설은 기쁜 마음으로 반가이 맞아들였다.

부설이 문안하였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날마다 밤이 되면 부설이 이야기를 하며 한 세상을 보냈다네. 그런데 부설은 어떻게 지냈는가?”

부설이 노래 불렀다.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대로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되는대로 살아왔지.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그런대로 보고

손님 접대는 가세대로

시정매매는 시세대로

세상만사 맘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살아왔다네.

영조가 부설의 늙은 모습을 보고 노래 불렀다.

비바람속 늙은 고목이여,

바위 감돌아 대나무 우거졌구려

비온 뒤 이끼꽃은 더욱 빛나고

떡갈나무 바람에 번득이도다.

부설이 대답했다.

처자권속이 대나무숲처럼 우거지고

금은옥벽이 산처럼 쌓였어도

갈 때를 당해 생각해보니

모든 생각 뜬구름 같네.

아침 저녁 홍진속에

비록 벼슬 높아졌으나 머리는 벌써 희어졌으니

염왕이 어찌 금어를 두려워하겠는가

모든 생각 뜬 구름….

영희가 노래 불렀다.

봄물은 옹달샘에 넘쳐흐르고

흰눈은 하염없이 쏟아졌도다.

높은 봉 막대 짚고 바라보니

맑은 뜻 차라리 말이 없어라.

부설이 다시 답했다.

비단 같은 마음에 수놓은 입 바람 우레 같은 해여,

천수의 시를 외우고 만호후를 산다해도

다생에 인간은 인아본(人我本)만 불리나니

모든 생각 뜬구름….

가사 설법을 비 구름처럼 같이하며

하늘에서 꽃이 내리고 돌이 고개를 끄덕인다 해도

마른 지혜는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나니

생각하고 생각한 것이 뜬구름 같다네.

영조와 영희가 물었다.

“자네는 농사짓고 가정을 다스리는 가운데서 어느 틈에 공부했는가?”

“이 사람들아 공부와 일이 어찌 두 가지이겠는가. 일 속에서 공부하고, 공부 속에서 일했지.”

조금 있다가 저녁 밥상이 들어와 맛있게 먹었다. 영조와 영희가 둘러보고 말했다.

“그동안 두 번이나 강산이 변했는데 식구는 여전히 똑같은 것 같네.”

“그래 어르신들 두 분이 저 세상으로 가시고 대신 두 자식을 낳았으니 부증불감이야.”

그때 등운과 월명이 말했다.

“아버지 저녁 예불해야지요.”

“어,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느냐. 그래 예불하자.”

하고 일어서니 아이들이 벽장문을 열고 종이로 그려놓은 부처님 앞에 향과 초를 켰다.

“계향?정향?혜향?해탈향?해탈지견향.”

5분향으로 예불을 마치고 나니 아이들이 말했다.

“아버지 도인 스님들이 오시면 도 겨루기를 하신다 하셨지요.”

“그래, 그랬지. 저 두 스님들께 물어보아라. 어떻게 시험을 하면 좋겠는지.”

영조?영희가 등운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결정해 보렴.”

등운이 월명과 의논하고 나서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묻고

“천정에 노끈을 달아매고 병에 물을 가득 채워 방망이로 때려 치는데 병만 깨내고 물은 그대로 매여 있게 하는 것입니다.”

“좋다. 너희들이 좋다하면 좋을대로 하자구나.”

그리하여 아이들은 노끈을 천장에 매고 물병 세 개를 달아 매놓고 방망이를 가져다놓았다.

먼저 영조가 치니 와르르 물과 병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영희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아버지께서 하실 차례입니다.”

부설은 말없이 앉아 있다가 방망이를 들고 탁 쳤는데 병은 두 쪽이 나 떨어졌지만 물은 그대로 있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것이 무엇인고?”

“이 몸은 병이고 이 마음은 물이로다.”

모두가 엎드려서 큰 절을 세 번씩 하였다.

영조?영희가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부설거사가 말했다.

“눈으로 보아도 본 바가 없고

귀로 들어도 들은 바가 없으면

분별시비 다 없어져

오직 마음 부처에 돌아가게 된다네.”

그때 하늘에서는 상서스러운 구름이 떨어지고 신선의 아름다운 음악이 허공속에 가득 메아리쳤다.

부설이 앉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아 가서 만져보니 몸은 움직이지 않았으나 향기가 서해바다 끝까지 날리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다.

두 스님이 관을 들어 화장하니 불꽃 속에서 학이 춤을 추는 것 같고, 빗방울은 사리의 구슬에 적시었다. 사리를 거두어 보배 병에 넣고서 묘적봉의 남쪽기슭에 묻고 부도탑을 세우고 명양(冥陽)의 복을 베푸니 호남일대의 선비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법회가 끝나기도 전에 부서거사 두 남매는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익혔던 불법을 몸소 체험코자 눈물을 독(?)나무에 뿌리며 정신은 연지(蓮池)에 두었다. 날마다 부처님의 덕에 목욕하고 반주삼매(般舟三昧)에 머물더니 하루는 월명이 붉은 구름을 타고 서천을 향하면서 노래 불렀다.

잠을 깨니 삼생의 꿈이 사라지고

몸은 구품 연대에서 논다.

바람 잠잠하니 맑은 지혜의 바다도

달이 오르니 소슬한 가을 하늘이로다.

떠나가는 길에 신선의 풍악이 가득하고

신선이 요지에서 법선을 저어가네

반야삼매의 경지 완숙하니

극락의 일이 기쁘기만 하여라.

이 글을 본 등운 또한 용모를 단정히 하고 웃음을 머금고 10년을 살으신 어머니 묘화를 모시고 세상을 떠나니 상서러운 꽃이 방안에 가득하고 향기는 1년 내내 가시지 않았다.

모든 재산은 유언대로 보시하여 절을 지으니 두 아이의 이름을 따서 월명암 또는 등운암이라 불렀다.

산끝 물 돌려져 있는 곳에

고요히 한 암자가 서 있네

구름 걷히니 만경이 드러나고

떨어지는 햇빛 늦가을 단풍 더욱 붉어라.

선향(禪香) 가득한 곳에

신선들의 발자취 역력하네

날은 저물어 어두워지는데

외로운 달빛은 언제나 뜰 것인가

삼산(三山)의 바람이 불골(佛骨)을 녹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