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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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 휴정(西山大師 休靜) (1520∼1604)

조선 중기의 고승이자 승군장(僧軍將). 완산 최씨. 이름은 여신(汝信), 아명은 운학(雲鶴),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별호는 백화도인 (白華道人) 또는 서산대사·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 ·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 법명이 휴정이다.
평안도 안주출신. 아버지는 세창(世昌)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서산대사 본문 이미지 1

어머니 김씨는 노파가 찾아와 아들을 잉태하였다며 축하하는 태몽을 꾸고 이듬해 3월에 그를 낳았다.
3세되던 해 4월초파일에 아버지가 등불 아래에서 졸고 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꼬마스님을 뵈러 왔다."고 하며 두 손으로 어린 여신을 번쩍 안아 들고 몇마디 주문을 외우며 머리를 쓰다듬은 다음 아이의 이름을 '운학'이라 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뒤 아명은 운학이 되었다. 어려서 아이들과 놀 때에도 남다른 바가 있어 돌을 세워 부처라하고, 모래를 쌓아 올려놓고 탑이라 하며 놀았다.
[사진자료 : 밀양 홍제사]

9세에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아버지가 죽게 되자 안주목사 이사증 (李思曾)을 따라 서울로 옮겨 성균관에서 3년동안 글과 무예를 익혔다. 과거를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친구들과 같이 지리산의 화엄동 (華嚴洞)·칠불동(七佛洞) 등을 구경하면서 여러 사찰에 기거하던 중, 영관대사 (靈觀大師)의 설법을 듣고 불법(佛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 ·<화엄경> ·<유마경> ·<능엄경> ·<유마경> ·<반야경> ·<법화경> 등의 깊은 교리를 탐구하던 중,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삭발한 다음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1540년(중종 35) 수계사(授戒寺) 일선(一禪), 증계사(證戒師) 석희(釋熙)·육공(六空)·각원(覺圓), 전법사(傳法師) 영관을 모시고 계(戒)를 받았다. 그뒤 영관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운수(雲水)행각을 하며 공부에만 전념하다가 1549년(명종 4) 승과(僧科)에 급제하였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에 격문을 돌려서 각처의 승려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하였다. 휴정의 선교관 (禪敎觀)에서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禪是佛心 敎是佛語)."라고 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같은 정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기(一切衆生悉有佛性)' 때문에 누구나 닦으면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하는 성도문(成道門)에 입각하고 있다.

이어 "부처님 일생에 말씀하신 것이란, 49년 동안 말씀하신 5가지 가르침이니,

첫째는 인천교(人天敎)요,

둘째는 소승교(小乘敎)요, 셋째는 대승교 (大乘敎)요,

넷째는 돈교(頓敎)요, 다섯째는 원교(圓敎)이다. 이른바 아난존자 (阿難尊者)가 교의 바다를 널리 흐르게 하였다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교의 근원을 밝혔다.

이는 선교의 근원을 밝힌 일종의 교상판석(敎相判釋)이며, 그것이 지향하는 바를, "선과 교의 근원은 부처님이시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다.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선이요, 말 있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교이다. 또한 마음은 선법(禪法)이요, 말은 교법(敎法)이다. 법은 비록 일미(一味)이지만 뜻은 하늘과 땅같이 동떨어진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휴정의 선교관은 선이 주(主)가 되고 교는 종(從)이 되어, 깨달음에로 나아간다고 보았고, 선을 교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또한, 선교의 관계에 대하여 교는 부처의 가르침으로 먼저 모든 법을 가려서 보이고 다음에 공(空)의 이치를 가르친 것인데, 이 공의 이치에 곧바로 들어가서 체득하는 것이 선이며, 특히 조사선(祖師禪)은 그 자취가 뜻의 자리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선조로부터 '국일도 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 大禪師 禪敎都摠攝 扶宗樹敎 普濟登階尊者)'라는 최고의 존칭을 하사받고, 여러 곳을 순련하다가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나이 85세, 법랍 67세로 입적하였다.

입적한 뒤 21일 동안 방 안에서는 기이한 향기가 가득하였다고 한다. 저서로는 <청허당집>4권 2책, · 등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