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

영웅

[ Odysseus ]

요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자 이타카의 왕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군 최고의 지략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는 길에는 많은 여러 바다를 떠돌며 온갖 기이한 일들을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귀향길에 겪은 모험을 노래하고 있다.
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

외국어 표기 Ὀδυσσεύς(그리스어)
구분 영웅
상징 지략, 교활, 모험, 불굴의 의지
어원 ‘미움 받는 자’ 또는 ‘노여워하는 자’
별칭 율리시즈(Ulysses)
로마신화 울릭세스(Ulyxes)
관련 사건, 인물 트로이 전쟁

오디세우스 인물관계도

※ 관계도 내 인명 클릭시 해당 표제어로 연결됩니다.

오디세우스 인물관계도
아우톨리코스안티클레이아라에르테스키르케텔레고노스텔레마코스페넬로페틴다레오스

오디세우스는 라에르테스안티클레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이카리오스의 딸 페넬로페와 결혼하여 아들 텔레마코스를 낳았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실제 아버지는 시시포스라는 설이 있다. 오디세우스는 또한 마녀 키르케와 사이에서 아들 텔레노고스를 낳았다고도 하고, 테스프로토이 족의 여왕 칼리디케와 사이에서 아들 폴리포이테스를 낳았다고도 하고, 페넬로페와 사이에서 둘째 아들 폴리포르테스를 낳았다고도 하고, 말년에 아이톨리아 왕 토아스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 레온토포노스를 낳았다고도 한다.

신화 이야기

출생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왕 라에르테스안티클레이아 사이의 아들이다. 하지만 안티클레이아는 라에르테스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시시포스와 관계하여 오디세우스를 임신하고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에 따르면 도둑질의 명수로 유명했던 안티클레이아의 아버지 아우톨리코스는 영리하고 교활한 시시포스의 소떼를 훔쳤다가 덜미를 잡혀 하는 수 없이 딸 안티클레이아에게 시시포스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였다고 한다 (→‘아우톨리코스’ 참조). 이와 같은 외가와 친가의 혈통은 오디세우스의 지략과 교활함을 설명해주고 있다.

안티클레이아가 해산할 무렵 때마침 이타카에 들른 아우톨리코스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많은 노여움을 느끼고 있으므로 외손자의 이름을 ‘노여워하는 자’라는 뜻의 오디세우스라고 지어주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을 ‘신들에게 미움 받는 자’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청년 시절

소년 시절 오디세우스는 외할아버지 아우톨리코스의 집을 방문했다가 파르나소스 산에서 열리는 멧돼지 사냥에 따라나선 적이 있는데, 이때 멧돼지의 어금니에 찔려 다리에 큰 흉터가 생겼다. 이 흉터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정체를 확인시켜주는 인식표가 되었다.

오디세우스는 또 이타카에서 도둑맞은 양떼를 찾기 위해 메세네로 갔을 때 에우리토스의 아들 이피토스와 만나 우정을 나누고 그로부터 명궁 에우리토스의 활을 선물받았다. 이 활은 훗날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무례한 구혼자들을 시험할 때 사용되었다.

페넬로페와의 결혼과 구혼자의 서약

오디세우스는 원래 미녀 헬레네의 구혼자 중 한 명이었다. 그리스 최고의 미녀로 손꼽히는 헬레네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그리스 전역에서 구혼자들이 엄청난 결혼 선물을 싸들고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가난한 이타카 출신의 오디세우스는 자신에게 기회가 없음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헬레네에 대한 구혼을 포기하였다.

그 대신 오디세우스는 헬레네의 사촌인 이카리오스의 딸 페넬로페를 신붓감으로 점찍고 그녀를 얻기 위해 헬레네의 아버지 틴다레오스에게 접근했다. 그 무렵 틴다레오스는 헬레네의 구혼자들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수많은 구혼자들 중 한 명만을 사위로 선택해야 하는데 선택 받지 못한 구혼자들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껴 전쟁이라도 걸어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구혼자들은 대부분 불세출의 영웅이거나 왕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틴다레오스를 찾아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그 대신 이카리오스의 딸 페넬로페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이카리오스는 틴다레오스 왕의 동생이니 페넬로페는 그의 조카의 딸이 된다. 틴다레오스는 기뻐하며 그러마고 했고 오디세우스는 해결방법을 알려주었다. 결정에 앞서 모든 구혼자들에게 누가 남편으로 선택받든 그 권리를 인정하고 부부를 지켜주겠다는 서약을 먼저 받아내라는 것이었다.

오디세우스의 묘책은 성공을 거두었고 틴다레오스는 약속대로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헬레네의 남편이 되는 영광은 틴다레오스의 총애를 받고 있던 메넬라오스에게로 돌아갔다 (→‘틴다레오스’ 참조). 하지만 ‘구혼자의 서약’은 나중에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었다.

트로이 전쟁의 발발과 참전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와 사이에서 아들 텔레마코스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때 스파르타에서 불행한 소식이 들려왔다.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납치되었는데 트로이에서 헬레네를 남편에게 되돌려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은 트로이에 전쟁을 선포하고 오디세우스를 비롯하여 헬레네에게 구혼했던 수많은 영웅과 왕들에게 ‘구혼자의 서약’을 상기시키며 참전을 요구했다.

아내와 새로 태어난 아들과의 단란한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오디세우스는 광기를 가장하여 의무를 회피하려 했다. 사람들이 참전을 요구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그는 당나귀와 황소를 한데 묶어 쟁기질을 하고 밭에 씨앗 대신 소금을 뿌리면서 미친 척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술수를 간파한 팔라메데스는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를 오디세우스의 쟁기 앞에 갖다 놓았다. 오디세우스는 아이를 피해 쟁기질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그의 거짓 광기는 탄로나고 말았다.

참전이 결정된 이후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연합군의 총사령관이 된 아가멤논을 충실하게 도왔다.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죽는다는 예언 때문에 여자로 변장하여 리코메데스 왕의 시녀들 틈에 숨어 있던 아킬레우스를 찾아내어 참전시켰고, 헬레네의 반환을 요구하는 사절단의 대표가 되어 메넬라오스와 함께 목숨을 걸고 트로이에 다녀왔으며, 아울리스 항에 집결한 그리스연합군이 아르테미스 여신의 노여움을 사서 트로이로 출항하지 못하고 지체할 때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여신께 희생 제물로 바치고 출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트로이 전쟁

트로이 전쟁에서 오디세우스는 그리스군 최고의 지략가이자 달변가로서, 또 용맹한 무장으로서 많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아가멤논아킬레우스가 불화를 빚을 때 둘 사이를 화해시키는 역할을 하고, 트로이의 왕자이자 예언자인 헬레노스를 설득하여 그리스군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조건들을 알아내고, 거지로 변장하여 트로이성에 들어가 적진의 동태를 살피고, 목마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서 그리스군이 전쟁에 승리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오디세우스의 지략과 교활함은 그러나 종종 적이 아닌 아군을 향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거짓 연기를 탄로나게 하여 어쩔 수 없이 원정길에 오르게 만든 팔라메데스에게 앙심을 품고 거짓 편지로 그가 적과 내통한다고 모함하여 그를 그리스 병사들이 던진 돌에 맞아죽게 하였다.

또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장례식에서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그의 갑옷과 투구의 소유권을 놓고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와 경쟁이 벌어졌을 때는 교묘한 언변과 지략으로 그것을 차지하여 그리스군에서 아킬레우스에 이어 두 번째로 뛰어난 장수로 손꼽히던 아이아스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주검을 둘러싼 전투에서 자신이 더 큰 공을 세웠으므로 관례에 따라 그의 무구도 당연히 자신의 차지가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가 오디세우스에게 빼앗기자 분을 참지 못하고 광기를 부리다 수치심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를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전쟁이 끝난 뒤 이타카로 귀향하면서 그가 겪은 모험들이었다.

험난한 귀향길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리스군의 귀향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오일레우스의 아들 아이아스의 소행 때문이었다. 그가 약탈자들을 피해 아테나 여신의 신전에 피신해 있던 프리아모스 왕의 딸 카산드라를 끌어내어 강제로 욕을 보였던 것이다. 카산드라는 아테네 여신의 신상을 붙잡은 채 저항하였는데 그 바람에 신상이 쓰러져 손상되고 말았다. 아이아스의 소행을 알게 된 오디세우스는 아테나 여신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그를 돌로 쳐 죽이자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는 아이아스가 아테나 여신의 신전으로 피신해 신상을 부여잡고 목숨을 구했기 때문이다.

마론의 선물

트로이를 출발한 오디세우스 일행은 트라키아의 해안도시 이스마로스를 약탈하였다. 트라키아는 전쟁 때 트로이 편에서 싸웠으므로 그리스군의 일원인 오디세우스 일행에게는 적이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스마로스의 숲에 살고 있던 아폴론의 사제 마론과 그의 처자식을 공격하지 않고 보호해주었다. 아폴론 신에 대한 외경심 때문이었다. 마론은 이에 대한 감사로 아주 독하고 달콤한 값비싼 포도주를 선물하였는데, 마론의 이 선물 덕택에 나중에 오디세우스 일행은 목숨을 구하게 된다.

로토스를 먹는 자들의 섬

이스마로스를 떠난 오디세우스 일행은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단 말레아 곶을 지나다 무시무시한 북풍을 만나 로토파고이족이 사는 섬으로 떠밀려가게 된다. 로토파고이족은 오디세우스 일행을 환대하며 자신들이 먹는 로토스를 대접했는데, 그것을 먹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잊고 그 섬에서 로토스를 먹으며 안주하려고 했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이들을 억지로 끌고 가서 배에 묶은 다음 출발해야 했다.

폴리페모스의 동굴

그 다음으로 오디세우스 일행은 폴리페모스가 사는 섬에 정박했다가 그의 동굴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폴리페모스’ 참조). 눈이 하나 뿐인 키클로페스 족인 폴리페모스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괴물이었다. 동굴 입구를 거대한 바위로 막아놓고 자신의 부하들을 하나둘씩 잡아먹는 폴리페모스를 오디세우스는 칼로 찔러 죽일 수도 없었다. 그가 죽어버리면 거대한 바위로 막힌 동굴에서 영영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오디세우스 일행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오디세우스 일행 아티카, 항아리 그림, 기원전 660년 경, 엘레우시스 고고학박물관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다른 꾀를 내었다. 그는 폴리페모스에게 마론이 선물한 독하고 달콤한 포도주를 권하여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게 한 다음 끝을 뾰족하게 깍은 말뚝으로 눈을 찔러 장님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폴리페모스가 동굴에서 기르는 가축들에게 풀을 뜯기기 위해 바위를 치우고 밖으로 데리고 나갈 때 가축들 틈에 섞여서 간신히 사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로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아버지인 해신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 더욱 험난한 귀향길을 맞아야 했다.

바람 신 아이올로스의 섬

오디세우스 일행이 그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물 위에 떠 있는 섬 아이올리아였다. 주위에 부술 수 없는 청동 성벽이 둘러져 있는 이 섬에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열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이올로스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환대하며 한 달 동안 편히 머물게 한 뒤 다시 떠날 때는 친절하게도 오디세우스의 배를 고향 이타카로 데려다줄 순풍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쁜 바람들을 가죽부대에 넣어 마개로 꽁꽁 묶어서 주기까지 했다.

바람의 동굴 속 아이올로스와 오디세우스

바람의 동굴 속 아이올로스와 오디세우스 요하네스 스트라다누스, 1605년

하지만 오디세우스가 잠든 사이에 그의 부하들은 가죽부대 안에 귀한 물건이 감추어져 있는 줄 알고 마개를 열어 버렸고, 그러자 안에 가두어 둔 거센 바람들이 모두 쏟아져 나오면서 배는 다시 아이올리아 섬으로 밀려갔다. 오디세우스 일행을 다시 맞게 된 아이올로스는 이들이 신의 분노를 사고 있다고 여겨 더 이상의 도움을 거절하고 섬에서 쫓아냈다.

키르케의 섬
오디세우스에게 잔을 건네는 키르케

오디세우스에게 잔을 건네는 키르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91년, 올덤 미술관

다시 항해를 시작한 오디세우스는 식인족 라이스트리고네스인들의 나라에 정박했다가 그가 탄 배 한 척만 제외하고 배와 병사들을 모두 잃고 말았다. 그런 다음 도착한 곳은 마녀 키르케의 섬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병사들 일부를 섬 안으로 보내 정찰하게 하였는데 키르케는 이들을 마법의 약초를 넣은 음식을 먹여 돼지로 변신시켜 우리에 가두어버렸다. 부하들을 구하러 간 오디세우스는 헤르메스 신의 도움으로 키르케의 마법을 물리치고 부하들을 본래 모습으로 돌려놓은 다음 키르케와 연인이 되어 1년 동안 그녀의 섬에 머물렀다.

오디세우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뜻을 밝히자 키르케는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에게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키르케는 먼저 하계로 내려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조언을 구하게 하였다.

망자가 되어서도 여전히 예언능력을 지니고 있던 테이레시아스는 오디세우스가 혈혈단신으로 남의 배를 얻어 타고 고향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오디세우스가 테이레시아스를 만나고 돌아오자 키르케는 바다에서 그에게 닥칠 위험들(세이렌의 노래, 스킬라와 카립디스 등)을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세이레네스, 스킬라, 카립디스

키르케의 섬을 출발한 오디세우스 일행은 키르케가 미리 일러준 대로 세이레네스의 섬을 지나게 되었다. 세이레네스가 부르는 노래의 치명적인 위험에 대해 이미 경고 받은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밀랍으로 귀를 막고 노를 젓게 한 다음 자신은 그녀들의 노래를 들어보기 위해 돛대에 몸을 묶고 귀를 막지 않은 채로 섬에 접근하였다.

오디세우스와 세이레네스

오디세우스와 세이레네스 아티카 적색상 도기, BC 480년경, 영국 박물관

세이레네스는 오디세우스가 자신들의 노래에 유혹되지 않고 무사히 지나쳐 가자 치욕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다음으로 일행은 바다 괴물 스킬라와 카립디스가 양편에 도사리고 있는 좁은 해협을 지나야 했다. 스킬라는 상체는 처녀이지만 하체에는 기다란 목이 뱀처럼 구불거리는 개의 형상을 한 머리가 여섯 개나 솟아나 3중의 이빨을 드러내고 짖어대고 있었고, 카립디스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바닷물로 달래기 위해 하루에 세 번 엄청난 양의 바닷물을 들이마시고 다시 토해내며 무서운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스킬라 쪽으로 붙어서 지나기로 결정했다. 카립디스 쪽으로 갔다가는 배가 송두리째 삼켜져 산산조각이 나거나 소용돌이에 휘말려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스킬라의 괴물 주둥이 여섯 개가 각각 선원을 한 명씩 낚아채서 물어뜯는 동안 재빨리 그곳을 통과하였다.

헬리오스의 소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에게 일러준 위험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섬을 반드시 피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랜 항해에 지친 오디세우스 일행은 수풀이 우거진 헬리오스의 섬을 보자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 섬에 잠시 머물기로 하였다. 그런데 항해에 필요한 순풍이 불지 않는 바람에 일행은 한 달이 넘도록 섬에 갇혀 있어야 했고 그 동안 먹을 것이 다 떨어져버렸다. 키르케의 경고를 떠올린 오디세우스는 헬리오스의 신성한 소들에게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였지만 병사들은 그가 잠든 사이에 헬리오스의 소들을 잡아먹고야 말았다. 이 일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일행은 바다에서 거센 돌풍을 만나 오디세우스 한 사람만 빼고 모두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

칼립소의 섬

오디세우스가 부서진 배의 용골(龍骨)을 붙잡고 홀로 살아남아 도착한 곳은 칼립소의 섬이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어 그를 7년이나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오디세우스에게 불사신으로 만들어줄 테니 영원히 자신과 살자고 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있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그리워할 뿐이었다. 이에 감동한 신들은 헤르메스를 칼립소에게 보내 오디세우스를 그만 고향으로 돌려보내게 하였다. 칼립소에게서 신들의 뜻을 전해 받은 오디세우스가 뗏목을 만들어 다시 바다로 나갔지만 포세이돈은 다시 풍랑을 일으켜 그의 뗏목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오디세우스는 사흘 동안 필사적으로 헤엄친 끝에 파이아케스인들이 사는 스케리아 섬에 도착하였다.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아르놀트 뵈클린, 1883년, 바젤 미술관

파이아케스인들의 섬

탈진하여 수풀 속에서 잠든 오디세우스는 그곳을 다스리는 알키노오스 왕과 아레테 왕비의 딸인 나우시카 공주에게 발견되어 궁으로 가게 되었다.

궁에서 오디세우스로부터 그동안 겪은 고초와 기이한 모험을 들은 알키노오스 왕과 아레테 왕비는 그를 고향 이타카로 데려다주겠다고 하였다. 알키노오스 왕에게서 이타카로 돌아갈 배와 선원들을 제공받고 많은 진귀한 선물까지 얻은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마침내 꿈에 그리던 고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오디세우스를 미워하는 포세이돈은 파이아케스인들의 이와 같은 처사에 분노하여 오디세우스를 이타카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그들의 배를 섬의 항구 앞에서 돌로 바꾸어버렸다.

페넬로페와 무례한 구혼자들

한편 이타카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나고 여러 해가 흘렀는데도 돌아올 기미가 없자 인근의 귀족들이 오디세우스의 재산과 지위를 탐하여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구혼자들의 수는 곧 100여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오디세우스의 궁에 죽치고서 허구한 날 축제를 벌이면서 그의 재산을 탕진하였다.

구혼자들의 집요한 결혼 요구에 시달리던 페넬로페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연로하여 죽을 때가 멀지 않은 시아버지 라에르테스를 위해 수의를 짜는 중인데 그 일이 끝나면 구혼자들 중 한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페넬로페는 낮에 짠 천을 밤에 몰래 다시 풀어버리기를 계속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날 무렵 그 사이 구혼자 중 한 명과 눈이 맞은 시녀 멜란토의 고자질로 거짓은 들통이 나고 페넬로페는 더욱 곤란한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오디세우스의 도착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충성스러운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와 그 사이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 아들 텔레마코스를 만나 그간의 소식과 이타카의 상황을 모두 전해 들었다. 오디세우스는 일단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거지 행색으로 궁으로 들어갔다. 오디세우스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늙은 사냥개 아르고스였다. 아르고스는 20년 전에 떠나간 주인을 금세 알아보았지만 너무 노쇠하여 일어서지도 못하고 꼬리만 흔들다 죽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오디세우스를 알아본 것은 유모 에우리클레이아였다. 에우리클레이아는 페넬로페의 지시로 거지로 변신한 오디세우스의 발을 씻겨 주다가 다리의 흉터를 보고 주인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급히 유모의 입을 막아 아직 페넬로페에게 자신의 도착을 알리지 못하게 하였다.

구혼자들의 처단

궁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텔레마코스를 시켜 궁전 안에 있는 모든 무기를 창고로 옮기게 한 뒤 구혼자들과의 결전을 준비하였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페넬로페는 거짓으로 수의를 짜던 일이 탄로 난 뒤 더 이상 구혼자들의 요구를 물리칠 수 없다고 여겨 그들에게 마지막 제안을 하였다. 페넬로페는 남편 오디세우스가 남겨두고 간 활을 꺼내서 구혼자들에게 보여주며 활에 시위를 걸어 화살로 열두 개의 도끼 자루 구멍을 모두 꿰뚫는 사람을 새 남편으로 맞이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구혼자들을 죽이는 오디세우스

구혼자들을 죽이는 오디세우스 구스타프 슈바브, 1882년

하지만 구혼자들 중 아무도 오디세우스의 활에 시위를 걸지 못했다. 활에 시위를 걸어 도끼를 꿰뚫은 사람은 초라한 행색의 거지로 변장하고 구혼자들 틈에 섞여 있던 오디세우스 자신이었다. 그는 페넬로페가 시녀들과 함께 거처로 들어가자 텔레마코스와 에우마이오스에게 궁궐의 문을 모두 잠그게 한 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100여 명의 구혼자들을 모두 도륙하였다. 또 그 동안 주인을 배신하고 적의 편을 든 종복들도 가차없이 처단하였다.

부부의 해후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을 물리치는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아직 남편이 돌아온 줄 모르고 있었다. 유모 에우리클레이아가 기뻐하며 오디세우스의 귀환과 구혼자들의 처단을 알렸지만 페넬로페는 쉽사리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혼 당시 남편이 살아 있는 올리브 나무로 직접 만든 부부침상의 비밀을 오디세우스에게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받아들였다. 그동안 줄곧 오디세우스를 도와주었던 아테나 여신은 그날 밤을 특별히 길게 만들어 부부가 그 사이 겪은 일들을 서로 나눌 시간을 충분히 마련해 주었다.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 프란체스코 프리마티초, 1563년, 윌당스텡 컬렉션

다음날 오디세우스는 아들이 떠난 뒤 시골로 가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아버지 라에르테스를 찾아가 자신의 귀향을 알렸다. 얼마 뒤 살해당한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 공격해왔지만 아테나와 제우스의 개입으로 싸움이 끝나고 이타카에는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다.

오디세우스의 최후

오디세우스의 최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일설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저승에서 만난 테이레시아스의 망령이 예언한 것처럼 어깨에 노를 짊어지고 들판을 걷다가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젊은이를 만나자 그 자리에 노를 꽂고 포세이돈에게 제물을 바쳤다. 이로써 포세이돈과 마침내 화해한 오디세우스는 아타카로 다시 돌아와 아내 페넬로페와 늙도록 해로하다가 평온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에게 속죄의 제물을 바친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테스프로토이 족의 나라로 가서 그곳의 여왕 칼리디케와 결혼하고 아들 폴리포이테스를 낳았다는 설도 있다. 칼리디케가 죽은 뒤 오디세우스는 왕국을 폴리포이테스에게 물려주고 이타카로 돌아가 그 사이 페넬로페가 낳은 둘째 아들 폴리포르테스와 상봉하였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마녀 키르케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 텔레고노스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의 섬을 떠난 뒤 태어난 텔레고노스는 어른이 되자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텔레고노스는 이타카 섬으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어느 해안에 도착하였는데, 그가 케르키라 섬이라고 잘못 생각한 그곳은 바로 이타카 섬이었다. 굶주린 텔레노고스는 그곳의 가축이며 곡식을 약탈했고, 늙은 오디세우스와 맏아들 텔레마코스는 재산을 지키려 침략자에 맞서 싸웠다. 이 싸움에서 텔레고노스는 미처 아버지인 줄 모르고 오디세우스를 가오리의 독가시가 박힌 창으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구혼자들의 친족들에 의해 법정에 세워졌다. 심판관을 맡은 네오프톨레모스는 케팔레니아를 차지할 욕심에 추방령을 내렸고, 오디세우스는 아이톨리아로 가서 토아스 왕의 보호를 받으며 그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 레온토포노스를 낳았다.

또 오디세우스는 말년에 이탈리아로 추방되어 여행 중에 아이네이아스와 만나 화해를 하고 에트루리아 땅인 티레니아에 정착하여 수많은 도시들을 건설했다고도 한다. 그곳에서 그는 나노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나노스는 에트루리아 말로 ‘방랑하는 자’라는 뜻이다.

참고자료

  • 호메로스, 『일리아스』
  •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 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 히기누스, 『이야기』
  • 파우사니아스, 『그리스 안내』
  • 카를 케레니, 『』, 궁리출판사
  • M. 그랜트, J. 헤이즐, 『』, 범우사
  • 피에르 그리말, 『』, 열린책들
  • W. H. Roscher, 『Ausführliches Lexikon der griechischen und römischen Mytholog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