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산성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정방산성

[ 正方山城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성곽 · 봉수>산성
유물유적시대 고려
행정구역 황해북도>사리원시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89호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옛 산성. 정방산의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축성한 고려시대의 석성이다. 정방산성은 고려시대에 처음 축성한 뒤 1632~1635년에 크게 보수하였다. 정방산성의 둘레는 12km이다. 정방산성은 북한 서해안 일대에서 남북으로 통하는 기본 통로를 막아선 황해도지방의 으뜸가는 요새로 일러왔다.

성벽은 납작하게 대충 다듬은 성돌을 차곡차곡 포개어 쌓았다. 성의 북쪽벽은 정방산의 가파른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고 서쪽벽은 남산령을, 동쪽벽은 기봉산의 서장대와 연결되는 등성이를, 남쪽벽은 서장대에서 정방골로 내리뻗은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성벽의 대부분은 바깥면에만 돌을 대는 외면축조방법으로 쌓았고 골짜기를 건너간 남문부근의 성벽은 양쪽에 다 돌을 대는 양면축조방법으로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대체로 5~6m이고 남문이 있는 가장 낮은 곳인 남쪽에는 10여 m나 되는 높고 웅장한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윗면에는 톱날같이 생긴 높이 약 1.3m의 성가퀴가 있고 거기에는 약 2m 간격으로 총, 포를 쏘는 구멍을 냈다.

성문은 동, 서, 남, 북 사방에 냈는데 옛날에는 이 네 성문들에 다 웅장하고 화려한 문루들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 남아있는 남문루(정방루)는 6 · 25전쟁시기 폭격에 의하여 불타 버렸던 것을 원상복구한 것이다. 성문의 축대는 따로 쌓지 않고 성벽을 좀 두껍게 하고 그 복판에 홍예문길을 뚫어 만들었다. 이것은 이른 시기의 성문형식임을 보여준다. 성 안에는 남장대와 동장대, 서장대, 북쪽의 안국장대가 있어 성 안팎을 잘 감시하고 전투지휘도 원만하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성 안에는 또한 병실터와 무기창고터, 식량창고터 등 건물터들이 남아있으며 수원이 풍부하였다. 옛 기록에는 정방산성 안에 4개의 못과 7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성의 남문에 들어서면 19세기 중엽 정방산성의 성장이던 김성업의 비석이 보존되어 있다. 옛날 성 안에는 48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고려시대의 유명한 사찰인 성불사와 석탑이 남아있다. 정방산성에는 좌우의 진들을 통솔하는 본영이 있어 이 일대의 요새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1592년 임진왜란시기와 1636년 청나라 침략자들의 침입시 의병부대들은 이 성을 근거지로 하여 황주, 봉산 일대에 넘나들면서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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