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사터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정릉사터

[ 定陵寺-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사찰 · 사당>절터
유물유적시대 삼국
행정구역 평양시>역포구역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73호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에 있는 절터. 5세기 초엽의 유적이다. 정릉사는 고구려의 건국시조 동명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동명왕릉을 옮겨올 때 함께 지은 절이다. 이 절터는 평양시 중심에서 동남쪽으로 22km 되는 원 무진리 왕릉동에 있다.

정릉사터에 잇닿은 뒤 언덕에는 수백 년 자란 소나무들이 우거졌는데 이 숲속에 동명왕릉이 위치해 있다. 그 뒤 멀리로는 제령산(사동구역)과 마장산(중화군)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앞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어 풍치 수려하고 아늑하다.

남북 길이는 132.8m, 동서 너비는 223m, 총면적은 약 3만m2에 달하는 절터안에 8각탑터를 중심으로 18채의 집터가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회랑이 사방을 둘러쌌다. 중문, 탑, 금당, 강당 등은 남북 중심축상에 놓였고 그 밖의 건물들은 탑의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체 절터는 회랑에 의하여 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정릉사의 이와 같은 평면배치는 금강사와 같은 것으로서 고구려의 고유한 1탑3금당식 절 배치 형식을 보여준다. 8각탑터는 금강사의 탑터와 같이 8각형의 나무탑을 세웠던 자리인데 그 돌기단 너비는 20.4m이며 8각형 한 변의 길이는 약 8.4m이다.

중심구역의 맨 뒤 산밑에 있는 집터의 동서 너비는 16m, 남북 길이는 11.8m로서 그리 크지 않지만 집 둘레에 두 줄로 기둥을 세워 회랑을 두르고 집과 회랑 사이 통로는 벽돌로 포장하였다. 주춧돌은 네모나게 혹은 둥글게 다듬어 썼고 암반에 주추를 돋쳤으며 집안에는 외곬의 온돌을 놓았다.

집과 그 뒤 언덕 사이의 돌로 정교하게 축조된 도랑에는 돌다리를 놓아 서쪽의 정원을 거쳐 왕릉과 통하게 되어 있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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