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광정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연광정

[ 練光亭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누각 · 정자>누정
유물유적시대 삼국
행정구역 평양시>중구역>대동문동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6호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고구려시기 누정. 고구려시기 평양성을 건설할 때 함께 세우고 그 후에 고쳐지었다. 현재 연광정이 서있는 자리는 고구려시기 평양성 내성의 동쪽 장대터이다. 고려시대 평양성을 보수하여 서경으로 하면서 1111년 이 자리에 다시 누정을 세우고 이름을 ‘산수정’이라고 하였다. 그 후 보수도 하고 다시 세우기도 하면서 그 이름을 연광정이라고 고쳐부르게 되었다. 연광정에서는 연대가 서로 다른 글자새긴 기와가 20여 종이나 발굴되었는데, 이는 누정을 여러 차례 보수하였음을 알려 준다. 연광정은 경치가 좋아 옛날부터 관서팔경의 하나로 알려졌다. 연광정은 ‘제일루대’, ‘만화루’ 등으로도 불렸다.

현재의 연광정은 1670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연광정은 독특한 평면구조를 가졌다. 연광정은 ‘ㅁ’형으로 두개의 다락건물을 조금 빗겨 맞물려 세운 것처럼 되었다. 평면이 이렇게 된 것은 그곳 지형조건에 맞게 건물을 배치하였기 때문이다. 연광정은 대동강기슭에 쑥 내민 덕바위와 그곁에 있는 절벽 위에 바싹 내밀어 세워져 주위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게 하였다.

연광정의 밑 부분은 땅을 파서 돌을 깔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은 다음 지면이 좀 높은 대동강쪽 바위 위에는 큰 나무기둥을 받치고 서쪽의 낮은 곳에는 높이 약 1.4m 너비 0.56m의 네모돌기둥을 받쳐 수평을 잡았다. 그리고 그 위에 다락을 세웠다. 누정의 남쪽채는 정면(동쪽) 3칸(11.35m), 측면(남쪽) 3칸(9.2m)이고 북쪽채는 정면(동쪽) 2칸(6.15m), 측면(북쪽) 4칸(11.02m)이다. 남쪽채의 11개 기둥은 높이 2.65m의 흘림기둥이고 북쪽채의 9개 기둥은 네모기둥이다. 남쪽채의 두공은 2익공외목도리식이고 북쪽채는 단익공주도리식이다.

제공은 모두 꽃가지형이며 용마루가 있는 두개의 합각지붕을 직각으로 어기쳐 맞물려놓은 연광정의 모습은 우아한 느낌을 준다. 다락에는 널마루를 전면에 깔고 남쪽에 10단의 넓은 돌계단을 놓아 오르내리게 하였다. 마루둘레에는 난간을 돌렸다. 난간은 바깥기둥의 중심에서 78m 밖으로 내다 돌렸는데 아담하게 조각한 닭의 다리 모양으로 생긴 기둥(계자각)을 세우고 굴대로 연결시켰다. 옆에는 판자를 붙이고 일정한 간격으로 바람구멍을 뚫어놓았다. 난간바깥 대동강벼랑에는 성벽을 쌓고 그 위에 다시 담장을 쌓아 연관정을 둘러막았다. 본래 여기에는 성가퀴가 있었다. 남쪽채의 대들보는 길이 10.64m, 가로단면이 68×68cm되는 굵직한 것이다.

천장은 시원하게 열린 통천장을 기본으로 하고 일부 개소에만 소란반자를 댔다. 연광정에는 전반적으로 모루단청을 입혔다. 그리고 대들보 같은데는 비단무늬를 화려하게 놓았다. 연광정 앞에서 임진왜란 때 김응서와 계월향(?~1592년)이 기묘한 계책으로 왜적 소섭의 목을 베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6 · 25전쟁시기 폭격으로 심한 피해를 입었으나 전후에 원상복구되었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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