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사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안국사

[ 安國寺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사찰 · 사당>절
유물유적시대 조선
행정구역 평안남도>평성시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34호

평안남도 평성시 봉학동에 있는 절. ‘평안도자산부안국사사적비’에 503년(천감 2년) 법석현구가 20여 년 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전한다. 지금 전해지는 것은 조선 후기의 것이다. 지금도 주변에는 그때의 사연을 말해 주듯 고구려 기왓조각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대웅보전의 마루도리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그 후 이 건물은 1419년에 다시 지었고 1594년과 1654년 그리고 1785년에 각각 개건하였다. 1785년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 것은 사적비에 이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1714년에 중층불전을 수리하였다고 하였고 또 두공양식이 여러 시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점 등으로 보아 개건이 아니라 큰 규모의 중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적비에는 상암, 중암, 동서 승당의 기록이 보이나 절의 규모와 배치를 알 수 없다. 지금은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정면의 태평루, 서쪽의 요사채, 동쪽의 주필대가 남아 있으며 태평루 앞에 고려시대의 9층탑이 서 있다. 태평루 앞쪽에 여러 개의 단이 있고 거기에서 주춧돌과 기왓조각들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원래 절의 규모가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웅보전은 특별히 웅장한 건물로서 여러 차례 고쳐졌으며 지금의 것은 1785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대웅보전은 정면 5칸(17.04m), 측면 4칸(13.2m)의 2층으로 된 겹처마합각집으로 건물의 규모에 어울리게 바깥벽에 18개의 듬직한 배흘림기둥을 올려 세우고 두공들에 용조각을 하여 건축미를 돋구었다. 대웅보전 내부에는 벽을 따라 10개의 기둥을 세워 속칸을 이루게 하고 그 속칸이 2층까지 올라가게 하여 웅장하게 만들었으며 건물내부의 불단에는 불상도 놓고 그 위에 화려한 금단천(비단무늬단청)을 입혔다.

건물은 정면과 측면의 좌우 측칸이 좁고 가운데칸이 넓은데 넓은 경간에는 2개의 포를, 좁은 경간에는 1개의 포를 배치하였다. 두공은 1층에서는 바깥 7포, 안 9포이며 2층에서는 안팎 3포이다. 2층은 폭이 넓은 구조에 맞게 7양집으로서 보를 3층으로 놓고 중보에 천장을 형성하였다. 건물 안에는 세 경간에 걸쳐 불단을 꾸미었다. 그 위에 3층의 닫집을 달았는데 그 형상이 세련되고 웅장하다. 안국사 대웅보전은 건축술이 우수할 뿐 아니라 2층 불전으로서 귀중한 유산이 된다. 대웅보전 동쪽에 있는 주필대는 임진왜란시기 왕이 잠깐 머물렀다고 하여 지어놓은 작은 건물이다.

태평루는 정면 5칸(19.25m), 측면 2칸(6.8m)의 겹처마합각지붕으로 된 단층누각이다. 누의 가운데칸에는 통로를 내고 그 좌우에는 마루를 각각 깔았으며 정면과 양측에는 토퇴벽에 판자로 된 짝문을 달고 뒷면은 터놓았다. 누에는 순조왕이 내려보낸 현판이 걸려 있다. 두공의 형태는 전후면이 다르고 주상포와 주간포가 서로 다르다.

1층 정면은 제공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된 연꽃봉오리와 구름무늬로 되어 있고 측면과 뒷면의 것들에는 모두 소혀모양의 산미가 뻗쳐 있다. 1층 정면의 두공조직에서는 첨차와 제공의 대각선방향으로 보조제공을 돌출시켰는데 이런 구조장식은 다른 건물들에서는 볼 수 없다. 2층 두공은 안팎 3포로 된 단순한 것인데 내부 두공에서는 제공 한 단을 더 겹쳐놓았다. 건물내부에 좌우 측칸 너비로 1, 2층을 관통하는 고주를 세우고 1층 바깥기둥과 내부고주를 연결한 퇴보 위에 2층 바깥기둥을 세웠다. 그러므로 2층도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되어있었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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