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성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안주성

[ 安州城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성곽 · 봉수>성터
유물유적시대 삼국
행정구역 평안남도>안주시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58호

평안남도 안주시에 있는 고구려와 조선시대에 쌓은 옛 성터. 안주성은 서북지방에서 남북으로 통하는 기본 통로에 축조되었던 중요한 성으로서 군사적으로나 교통상으로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안주성은 내성과 외성, 신성의 3개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3개 부분의 축조연대는 서로 다르다. 내성은 고구려시기 축조한 것으로 둘레가 2,280m이며 성벽은 청천강변에 뻗어 내린 가두산줄기의 등성이와 강기슭언덕에 축조되었다.

성벽은 바깥경사면을 깎아 내린 다음 거기에 기초돌을 놓고 외면축조방법으로 바깥면에만 쌓아 올렸으며 곳에 따라 양면축조방법도 적용하였다. 그 높이는 평지에서는 7~8m, 경사지에서는 4~5m이다. 성벽은 4각추형태로 다듬은 성돌을 면과 선을 맞추면서 서로 어긋나게 물려 쌓았으며 굽도리는 계단식으로 하였다. 외성은 조선 초에 축조한 것으로 그 둘레는 3,650m이다. 신성은 여진족을 물리친 후 17세기에 쌓았는데 그 둘레는 약 550m이다.

안주성은 고려 초인 930년과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의 대보수가 있었다. 안주성의 각 부분성들의 성문들은 대체로 동, 서, 남, 북 방향에 배치되어 있었다. 성문들은 돌축대를 쌓고 그 중심에 홍예문길을 냈으며 축대 위에는 문루를 세웠다. 안주성의 성문들은 대부분 조선 말기까지 잘 남아 있었는데 일제가 강점한 후 성문루들을 모조리 부수고 성벽도 헐어버렸다. 그리하여 지금은 외성 동문의 홍예문길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안주성에는 여러 가지 방어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조선 말기에 쓴 『안주읍지』를 보면 내성에는 초루(성벽 위에 세운 감시초소) 17개, 성가퀴 1,014개, 대문 4개, 수구문 4개, 외성에는 초루 5개, 대문 4개, 성가퀴 421개, 수구문 1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주성 성벽이 언덕을 타고 넘어 가는 봉우리들에는 장대터가 있다. 그 가운데서 내성의 서장대와 남장대, 신성의 동장대는 성 안팎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있었다.

내성의 서장대자리에 고려시대 백상루가 세워졌었는데, 6 · 25전쟁시기에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1977년 4월에 원상 복구하였다. 안주성 안에는 곳곳에 큰 못을 파고 물을 저장하였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못은 칠성못이다. 칠성못 가운데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듯 작은 흙섬을 7개 만들어 놓았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유의 사항】

  • ⓘ 본 콘텐츠는 1999~2005년 남북공동 편찬사업에 의해 발간된 자료로서,
    북한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한 자료의 특수성으로 내용의 최신성이나 이미지의 선명도가 다소 떨어지는 점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연관목차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808/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