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사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양화사

[ 陽和寺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사찰 · 사당>절
유물유적시대 조선
행정구역 평안북도>태천군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55호

평안북도 태천군 상단리에 있는 절. 향적산 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872년에 도선국사가 처음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의 건물들은 대체로 조선 중엽~말엽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향적산 양화사(일명 보국사)는 북한 서북지방에서 묘향산 보현사 다음 가는 큰 절이다. 양화사사적기에는 872년에 창건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발해시기의 절로 추정된다.

현재 양화사에는 해탈문, 천왕문, 탑, 대웅전을 중심축으로 하여 그 좌우로 지세에 맞게 명부전, 심검당, 봉축전, 봉향각 등 10여 채의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밖에 연못이 있다. 주불전은 992년과 1461년에 다시 지었는데, 이때부터 본래 보광전이라 부르던 것을 대웅전으로 이름을 고쳤다.

현존 건물들 가운데서 천왕문, 명부전, 해탈문은 조선 중기의 것들이며 대웅전을 비롯한 그밖의 건물들은 1874년에 불타버린 것을 다시 지은 것들이다. 그 중 가장 오랜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천왕문(1656년 중건)은 정면 3칸(7m), 측면 2칸(5.1m)의 겹처마합각집으로서 안팎 5포의 포식 건물이다. 해탈문은 천왕문보다 규모가 작은데(정면 5.76m, 측면 3.9m) 두공이 바깥 5포, 안 7포로 되어 있으며 내부기둥이 없이 천장을 구성하였다.

명부전은 정면 5칸(11.22m), 측면 2칸(5.15m)의 겹처마합각집으로서 기둥은 배흘림기둥이며 두공은 바깥 5포, 안 9포이다. 명부전의 벽체구조는 오랜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두공은 해탈문의 두공과 같은 것으로서 둘 다 조선 후기에 중수하면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높은 축대 위에 기단을 쌓고 세운 정면 3칸(11.8m), 측면 2칸(6.6m)의 외목도리식 3익공합각집으로서 정면과 측면은 겹처마이고 후면은 홑처마로 되었다. 두공의 바깥제공은 연꽃봉오리가 달린 길게 휘어내민 산미를 3층으로 포개어 외목도리를 받들게 하고 안으로는 첫 단에 꽃봉오리제공을 붙인 다음 그 위에 3단의 첨차를 공구어 대들보를 받게 하였다. 그 장식이 복잡하고 화려하기는 하지만 내장여가 없는 구조에 첨차가 붙어 허전한 감을 준다.

두공 사이벽들에는 부처와 연꽃을 주제로 하는 단청그림을 가득 그려 화려하게 꾸몄고 두공 위에는 용머리를 새겨 얹었다. 건물의 정면전부와 측면절반부분에는 툇마루를 댔다. 대웅전 내부에는 마루를 깔고 위에는 소란반자와 빗반자를 댔다. 안쪽 깊이에는 불단을 놓고 부처를 안치하였다. 천장부분의 넓은 빗반자에는 무악도를 그렸는데 이 무악도는 양천사 대웅전의 무악도에 견줄만한 우수한 작품이다.

대웅전과 함께 1879년에 다시 지은 봉축전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합각지붕으로서 정면과 측면은 겹처마이고 후면은 홑처마로 되었다. 두공은 정면과 측면의 앞쪽이 3익공으로 되고 기타는 막걸이로 처리하였다. 툇마루가 있는 앞쪽 기둥 위에는 두 개의 외목도리를 받친 꽃구름형제공이 3개 돌출되었고 기둥들 사이에는 화반 대신 5포식 두공이 배치되어 이른바 익공식과 포식이 결합된 조선 후기의 건축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 처음부터 있었다는 길이 30m, 너비 15m의 연못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 탑터가 있다. 양화사는 조선 중기와 후기의 건축형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절의 하나이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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