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 아래 사자포구에 돌배가 닿는 이유는?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에 돌배가 닿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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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사적비>에 보면 절의 창건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연기 설화가 전한다.
신라 경덕왕 8년(749) 홀연히 한 석선(石船)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獅子浦口)에 와 닿았다. 배 안에서 하늘의 음악과 범패 소리가 들리므로 한 어부가 살피려 다가갔으나 그 때마다 번번이 배가 멀어져 갔다.
이 소식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장운(張雲)·장선(張善) 두 사미와 더불어 촌주(村主)인 우감(于甘) 및 제자 100인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비로소 석선이 해안에 닿았는데, 그 곳에는 주조한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서 있었다. 향도들이 경을 해안에 내려놓고 봉안할 장소를 의논할 때 흑석이 저절로 벌어지며 그 안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문득 커졌다.
이날 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인(金人)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우전국(優塡國, 인도) 왕으로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 모실 곳을 구하고 있는데, 이곳에 이르러 산 정상을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나므로 여기에 온 것이다. 마땅히 소에 경을 싣고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경(經)을 봉안하라”고 일렀다.
이에 의조화상이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 소가 가다 처음에 누웠다가 다시 일W나 산골짜기에 이르러 다시 누우며 ‘미(美)’하고 크게 울며 죽어 버렸다.
소가 처음 누웠던 곳에 사찰을 창건하니 곧 통교사(通敎寺)요, 뒤에 누워 죽은 골짜기에는 미황사를 짓고 경과 상을 봉안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취한 것이고 ‘황’은 금인(金人)의 황홀한 색을 취한 것이다. 이러한 창건 설화는 곧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공간

해남

전라남도 남서쪽에 있는 군. 교통 요충지로 납석·명반석·금 따위가 나며, 명승지로 대흥사(大興寺)·명량 대첩비·벽파진(碧波津)·녹우당(綠雨堂) 따위가 있다.

인물

의조화상

의조화상 : 신라시대 승려. 미황사를 창건한 인물.

소품

미황사 사적비,

미황사 사적비 : 전남 해남에 있는 미황사의 내력을 기록한 비. 비의 상태가 마모가 심해 판독할 수 있는 글자가 많이 않음. -사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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