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절해고도에서 근무하는 등대수들의 자녀를 위해 특별수당을 지급했다는데?

일제는 절해고도에서 근무하는 등대수들의 자녀를 위해 특별수당을 지급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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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인물
  2. 소품

일제는 등대수들을 위한 여러 가지 유인책을 실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등대수 자녀를 위한 특별 수당 지급이었다. 1928년 신문에는 ‘절해고도 등대수의 자녀 위해 특별수당ㅡ인제와 떨어져 있는 등대수의 자녀들 교육을 위해 특별수당’이라는 기사가 있다. "전 조선에 산재한 등대수는 238개인데 그 등대가 있는 곳은 모다 교통이 심히 불편한 곳으로 인가와 인접하지 아니하여 등대에 근무하는 등대직이의 생활이야말로 전혀 일반사회와는 유리되야 일종의 (중략) 따라서 수 백 리나 수 십리의 먼골 보통학교나 소학교가 있는 곳의 친구에게 그 자녀를 위탁하던가 그렇지 않으면 부부가 서로 별거하지 않으면 안될 경우에 있음으로 체신국에서는 이러한 등대 근무원을 위무하는 방안으로 근무원당 3인 학생까지 근무수당을 지급했다." 이 박에도 라듸오셋트를 구입하여 42개소 등대 중에 간수가 있는 20개소에 이를 보급, 파데이베비-활동사진기를 구입하여 순회하면서 이를 간수들과 가족들을 위안하기도 했다.

인물

등대수

등대수: 등대에서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불을 켜고 끄는 일을 하는 정보통신부 산하의 기능직 공무원. 한국 최초의 등대원은 1903년 인천항의 팔미도에 최초의 양식(洋式) 등대가 세워졌을 때 그 곳의 초대 등대장으로 임명되었던 정태성씨다.

소품

파데이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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