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힌두교

다른 표기 언어 Hinduism

요약 힌두'와 '이즘'의 합성어인 '힌두이즘'의 번역어이다. 힌두교는 문자 그대로는 '인도의 종교'를 뜻하며, 일반적으로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와 자이나교를 배제한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종교의 하나인 힌두교는 특정한 교조나 교리, 중앙집권적 권위나 위계조직이 없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신앙형태가 융합된 종교이다.
힌두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며 덜 배타적인 것이 특징이다. 힌두교 안에는 원시적인 물신숭배·애니미즘·정령숭배로부터 주술·제식·다신교·일신교·고행주의·신비주의, 사변적 체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형태의 종교가 발견된다. 힌두교는 하나의 종교일 뿐 아니라 힌두의 사회·관습·전통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로 힌두의 생활방식이자 힌두 문화의 총체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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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특징
    1. 개요
    2. 아트만-브라만의 교설
    3. 이슈타데바타와 트리무르티
    4. 베다와 브라만 계급의 권위
    5. 아힘사[不殺生]
    6. 윤회와 업(카르마)
  2. 해탈에 이르는 3가지 길
  3. 연원
  4. 선사시대의 힌두교
  5. 베다 시대의 힌두교
  6. 브라만교에 대한 힌두교의 도전
  7. 초기 힌두교
  8. 푸라나 시대의 힌두교
  9. 박티 신앙의 성장
  10. 박티 시대의 힌두교
  11. 현대의 힌두교
  12. 베다교와 브라만교
  13. 비슈누교
  14. 시바교
  15. 탄트라교와 샤크티교
  16. 민속 힌두교

'힌두'와 '이즘'(ism)의 합성어인 '힌두이즘'의 번역어이다. '힌두'란 원래 인더스 강의 산스크리트인 신두(Sindhu : '大河'라는 뜻)의 페르시아 발음으로서, 인디아나 힌두스탄과 같이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힌두교는 문자 그대로는 '인도의 종교'를 뜻하며, 인도에서 기원된 모든 종교, 즉 바라문교·자이나교·불교 등을 포함하는 말이 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와 자이나교를 배제한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종교의 하나인 힌두교는 특정한 교조나 교리, 중앙집권적 권위나 위계조직이 없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신앙형태가 융합된 종교여서 간단히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힌두교 안에는 원시적인 물신숭배·애니미즘·정령숭배로부터 주술·제식·다신교·일신교·고행주의·신비주의, 그리고 고도로 발달된 사변적 체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형태의 종교가 발견된다. 그러므로 힌두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며 덜 배타적인 것이 특징이다.

힌두교는 하나의 종교일 뿐 아니라 힌두의 사회·관습·전통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로 힌두의 생활방식이자 힌두 문화의 총체이다. 힌두교에 대한 이해 없이 인도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징

개요

다양한 형태를 지닌 힌두교이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공통된 특성과 핵심 사상을 찾을 수 있다.

아트만-브라만의 교설

영원불변하고, 전우주의 근원이자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이라는 중성적 원리가 있으며, 이것은 곧 인간 내면의 참다운 자아, 즉 아트만과 동일하다.

브라만 자체는 무속성이며 비인격적이지만 비슈누(Viṣṇu)·시바라는 인격적 최고신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슈타데바타와 트리무르티

힌두인들에게는 특별히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신은 많지만 이들은 본질에 있어 단일한 존재이며, 최고신격을 가진 창조신 브라마,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는 단일한 실재의 세 측면(Trimūrti 3신일체설)이다.

베다와 브라만 계급의 권위

가장 오래된 종교 문헌인 베다(Veda : '지식'이라는 뜻)는 근본적이고 완전한 진리의 계시서(슈루티)로 믿어진다.

브라만 계급은 브라만의 특수한 현현이며, 베다의 교사이자 전승자로서 신성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힌두교는 그러한 의의를 다소 상실했다.

아힘사[不殺生]

모든 생명의 근본적 단일성에 근거한 생명에 대한 존중을 내용으로 하는 아힘사는 채식주의, 소의 도살 금지 등으로 표현되었다.

윤회와 업(카르마)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현재의 삶은 반드시 과거의 행위(카르마)의 결과라는 업설은 생사의 반복적 순환, 즉 윤회사상과 연관된다.

업이 있는 한 시작도 끝도 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힌두교의 궁극적 목표이다.

해탈에 이르는 3가지 길

해탈에의 길(마르가 또는 요가)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지만, 중요한 힌두교 성전인 〈바가바드기타 Bhagavadgῑtā〉('至尊의 노래')에서는 다음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행동(카르마)의 길로 카르마를 생성시키는 것은 욕망이지 카르마 자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한 이기적 집착심이 없는 의무의 수행은 과보를 낳지 않으며, 따라서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둘째는 지식(지냐나)의 길로 참다운 자아는 육체나 감관이나 사고 등이 아니라 영원불멸하는 아트만이며, 이것은 브라만과 동일하다는 직관적 통찰에 이른다. 셋째는 신애(信愛 : '박애')의 길로 인격신(비슈누 또는 시바)에 대한 헌신과 사랑의 길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길로서 독리된 교파로 발전된 것은 신애주의이다. 또 행동의 길은 간디의 독립운동의 이념적 기반을 이루었다. 그러나 일반적 힌두인들에게 힌두교란 심원한 교리나 해탈의 실현보다는 전통적인 종교적 관행·의식·규정을 준수함으로써 현세에서 행복을 얻고, 내세에서 좋은 곳에 태어나는 길이다.

연원

힌두교의 역사는 BC 1500년경에 시작되었다. 최초의 문헌인 〈리그베다 Rigveda〉는 BC 1500~1000년에 서서히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본래 러시아 남부와 중앙 아시아 초원지대에 살던 유목민이며, 오늘날 유럽 및 이란과 같은 혈통인 인도아리아인의 선조로서 인도에 산스크리트와 말과 철기문화를 가져온 침략민의 종교문헌이다. 인도아리아인이 인도 반도에 침입하기 전 이란인의 조상들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고, 인도 서북부에는 모헨조다로·하랍파 유적이 보여주듯이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문화를 누리던 원주민이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리그베다〉에는 인도 유럽적 요소와 인도 이란적 요소, 그리고 토착민적 요소가 발견된다. 〈리그베다〉의 종교는 베디즘 또는 브라마니즘으로 호칭되는 초기의 제식주의(祭式主義) 종교로서, 후기의 대중적 힌두교와 구분되며, 〈리그베다〉에서 발견할 수 없는 힌두교의 특징들은 그밖의 다른 종족들의 영향으로 보인다. 드라비다족, 남아시아의 원시 오스트레일리아족 등 원주민의 영향과 기원 전후에 인도 서북부를 통해 침입한 그리스, 중앙 아시아의 유목민, 기타 페르시아·아랍·터키 등 이민족의 영향도 감지된다.

힌두교의 발전은 브라만 계급으로 대표되는 상류사회집단과 대중신앙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풀이될 수 있다. 아리안의 침입 이래 토착민들은 브라만 문화의 규범을 채용하고 그에 순응함으로써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했다. 이것을 '산스크리트화'라고 부른다. '산스크리트화'가 힌두교 확산의 주요수단이었다면 그 반대 과정, 즉 브라만교에 의한 토착신앙의 흡수는 힌두교가 변화하고 발전해온 수단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윤회설이나 시바교의 남근 숭배, 코끼리 머리의 신 가네샤 신앙, 신애주의의 몰아적 헌신 등은 아리안 외적인 영향의 결과라고 추정된다.

선사시대의 힌두교

이해할 수 있는 기록이 없어 다소간 사변적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출토된 유물 가운데 수소와 결합된 여성상은 풍요의 여신으로 추정되며, 의례적인 목욕, 수목신의 신앙, 시바신의 원형, 남근 신앙의 근거가 발견되었다(→ 인더스 문명). 성스러운 동물과 나무, 의식을 위한 소상의 사용은 현재 인도의 민속적·원시적 종교 가운데 여전히 살아 있다.

베다 시대의 힌두교

〈리그베다〉는 10장으로 분배된 1,028개의 찬가 모음이다.

〈리그베다〉의 성격은 자연현상의 배후에 있다고 믿어지는 힘이나 제사의 요소를 신격화하며, 〈리그베다〉에 반영된 종교는 하늘과 대기에 연관된 신들을 찬양하고 기원드리는 다신교이다. 자연현상이나 제식의 요소를 신격화한 많은 신들이 있으나, 특히 중시된 신은 번개와 전쟁의 신 인드라, 우주질서의 수호자인 바루나, 제화(祭火)의 신 아그니, 태양신 수르야 등이다. 초기에는 사제가 독립된 사회계층을 형성하지 못했으나, 말기에 와서는 브라만이라고 불리는 특권층을 이루었다.

〈리그베다〉에 나타난 결혼장례 의식은 후대 힌두교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름이 없다. 〈리그베다〉의 종교적 삶에서 후대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중의 하나는 샤만의 일종인 무리의 집단이다. 이들은 산과 폭풍에 연관된 루드라와 특히 관련되며, 루드라는 후에 시바로 발전된다. 〈리그베다〉에서 중요하지 않은 태양신이었던 비슈누도 후에 힌두교의 주요 신의 하나가 된다.

후기에 형성된 제10장의 '푸루샤[原因]의 노래'(Puruṣasūkta)는 푸루샤의 우주적 제사(yajña)로부터 자연계와 4성계급의 인간사회가 발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푸루샤의 머리에서 브라만 계급이, 팔에서 무사 계급이, 허벅지에서 농상 계급이, 발에서 하층 계급이 발생했다고 한다.

〈야주르베다 Yajurveda〉와 〈사마베다 Sāmaveda〉는 순전히 제의의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야주르베다〉는 행제승(行祭僧 adhvaryu)의 의식조작기에 수반되는 산문형식의 제사(祭詞)의 모음이다. 〈사마베다〉는 〈리그베다〉로부터 간추린 운문에 가락을 붙여 제사 때 부르는 노래집이다. 위의 세 베다보다 후대에 형성된, 토착적 신앙의 영향이 강한 〈아타르바베다 Atharvaveda〉는 731개의 찬가가 20장으로 나누어진 복잡한 성격의 문헌으로〈리그베다〉 말기에 나타난 우주론적 사변을 이어받은 철학적 요소도 있으며, 다소 흥미 있는 것은 눈앞의 이익과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주술과 주문들이다.

제의의 발전은 베다의 정확한 이해와 발음, 낭송, 그리고 제사의 바른 수행을 위해 6가지 보조학, 즉 음성학(siksa)·운율학(chandas)·문법학(vyakarana)·어원학(nirukta)·천문학(jyotisa)·제사학(kalpa)을 형성시켰다. 세계가 제사에 의해 생성된 만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제사 수행이 요구되었으며, 이것은 제사 과정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진 훈련된 수많은 브라만들을 필요로 했다.

그에 따라 브라만의 지위는 절대적인 것이 되어갔다.

브라만들에 의해 작성된 최초의 제의서(祭儀書)가 〈브라마나 Brāmaṇa〉이다. 여기에서는 제의의 절차와 방법, 베다 문구의 의의 등을 신화와 전설을 삽입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제사는 우주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천으로 간주되고, 제사의 요소와 우주의 부분 사이에 구조적 대응성이 논의된다.

'브라만'은 원래 베다의 기도문이나 주문, 또는 그것이 갖는 신비한 힘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더 나아가서 제사의 힘, 그리고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사제를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제사와 우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 저변에 놓인 창조적 힘인 브라만에 대한 사변은 〈아랑야카〉에 와서 더욱 두드러졌고, 〈우파니샤드 Upaniohad〉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신비적 지식에 의해 브라만과 아트만[眞我]의 동일성을 직관함으로써 해탈을 성취한다는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후기 힌두교에서 중시된 윤회와 카르마의 개념도 〈우파니샤드〉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브라만교의 제사 만연주의에 대한 불만이 증대하고 고행주의와 출가행의 생활방식이 늘어가면서, 보다 근원적인 실재와의 합일을 통한 윤회로부터의 해방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브라만교에 대한 힌두교의 도전

BC 600년경에는 수트라(짧은 암기용 문장) 형식으로 제의·의식·생활규범을 정리한 〈천계경(天啓經 Srauta-sutra)〉·〈가정경(家庭經 Grhya-sutra)〉·〈율법경(律法經) Dharma-sutra〉 등이 나타났다.

사회는 네 계층과 각각의 의무(다르마)에 의해 통제되었고 개인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많은 통과의례에 의해 정화되었다. 4성계급과 전통적 브라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교조를 예배드리는 불교·자이나교가 흥기하고, 출가 수행주의(고행주의)가 유행하자 브라만 진영에서는 일생을 학생기(brahmachria)·가주기(家住期 grihastha)·임주기(林住期 vanaprastha)·유행기(遊行期 sannyasin)의 4단계로 나눈 아슈라마의 교설로서 출가주의를 제어하고자 했다.

이후로 힌두의 사회론은 바르나(四姓)와 아슈라마(4단계)의 의무·개념을 주축으로 삼게 되었다. 마우리아 왕조아소카 시대에 불교가 전 인도에 확산되었으나, 그 몰락과 더불어 브라만교는 비슈누·시바 신을 둘러싼 유신론적 성향으로 변모되어 부활되기 시작했다.

초기 힌두교

18편 10만 송의 시로 이루어진 전쟁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편집은 비슈누 교파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서사시에 있어서 주인공의 주요관심은 도덕적·사회적·의례적 법인 다르마의 추구였으므로, 이 문헌은 후대의 율법론(律法論 dharma-sastra)의 선구가 되었다. 베다의 신들은 이미 중요성을 상실하고, 〈우파니샤드〉의 중성적 실재인 브라만은 남성신 브라마로 인격화되었다. 서사시에서 보다 더 중요하고 대중에게 친근한 존재인 크리슈나는 여기서는 신이라기보다는 초인적인 영웅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나 후대의 크리슈나 신앙의 연원이 된다.

크리슈나보다 덜 친근하나 높은 신으로 군림하는 시바도 이 서사시에 나타난다. 이 서사시에는 성지에 관한 정보가 풍부하다. 이 시대에 이미 성지를 순례하고 성스러운 강물에 목욕하는 것이 종교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듯하다.

7권 2만 4,000송의 시로 구성된 발미키의 〈라마야나 Rāmāyaṇa〉는 정의의 화신인 주인공 라마, 정절의 표본인 부인 시타, 충성의 상징인 원숭이 왕 하누만을 통해 힌두인의 심성 깊이 지속적인 영향을 주어온 서사시이다.

〈라마야나〉에서는 이미 라마를 비슈누의 화신(avatara)의 하나로 봄으로써 라마 신앙의 주요원천이 되고 있다. 또 하누만은 인도 곳곳에 그 상(像)이 조성되어 예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마하바라타 Mahābhārata〉 제6권에 속하며 18장. 700송의 시로 구성된 〈바가바드기타〉는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힌두교 성전이다. 판두족의 왕자 아르주나가 전투에 앞서 실의와 낙담으로 괴로워할 때 그의 마부로서 비슈누 신의 화신인 크리슈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크샤트리아로서의 다르마('의무')에 충실할 것을 충고하면서 종교적 교설을 펼친다.

앞에서 언급된 3가지 길(요가)에 대한 교설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서로 상충하는 관점과 교설을 조화시키고 통일시키는 데 〈바가바드기타〉의 특징이 있다. 즉 〈바가바드기타〉는 다르마에 기초한 브라만교와 각성(인식)에 근거한 고행주의, 그리고 헌신에 근거한 유신론의 종합이다.

비슈누 교파와 더불어 시바 교파도 발전되었다.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에서는 루드라가 비로소 시바로 불리고 우주의 창조자·유지자·파괴자로 기술되었다. 〈바가바드기타〉에서의 비슈누에 대한 헌신과 마찬가지로 시바에 대한 박티, 곧 전적인 헌신이 권장되었다. 한편 불교도나 자이나교도들의 종교적 조직과 모임이 비슈누교와 시바교의 성장에 촉매 역할을 했다.

마우리아 왕조의 몰락(BC 184)과 굽타 왕조의 흥기(AD 320) 사이에는 이민족의 침입 및 그 영향으로 인한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굽타 왕조 초기까지는 새로운 유신론이 베다의 종교와 조화되어 힌두교의 주요 두 교파로 자리잡았다. 비슈누 교파는 굽타 왕조의 비호 아래 수많은 사원을 건립하고 비슈누의 화신설을 널리 확산시켰으며, 시바 교파도 인도의 종교적 삶에 있어 그 세력을 확장해갔다. 이 시기에 매우 중요한 것은 태양신 수리아로서, 이 신을 위한 사원들이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지어졌다.

또 이 시기에 몇몇 여신들이 비중을 더해갔다. 비슈누의 배우자인 락슈미 여신은 기원전부터 숭앙되었고, 시바의 배우자 두르가 여신은 4세기부터 중시되기 시작했다. 〈다르마 샤스트라 律法論〉는 힌두인의 일상생활과 행동, 윤리적 규범, 의례, 사법 문제까지 연관된 문헌으로서 〈가우타마〉·〈바우다야나〉·〈아파스다바〉 등의 경전들과 마누 법전을 비롯한 율법론들이 있다.

이들은 힌두 사회에 도덕적 규범을 제공함으로써 커다란 영향을 행사해왔다.

푸라나 시대의 힌두교

굽타 시대에 신화와 전설, 신·성자·영웅들의 계보를 다룬 푸라나[古傳說] 문헌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비(非)브라만적인 것이었으나 브라만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그리하여 푸라나는 서사시와 더불어 힌두 민중의 경전이 되어왔다. 18종의 푸라나 문헌 가운데에서도 〈바가바타 푸라나 Bhāgavata-Purāṇa〉는 특히 대중적이고 중요하다. 12권 1만 8,000편으로 구성된 이 성전은 특히 크리슈나의 생애와 활동을 아름다운 운율로 기술함으로써 매우 널리 읽혀져왔다.

탄트라 문헌은 여러 점에서 푸라나와 유사하나, 철학적인 면보다는 실천적 측면이 더 두드러진다. 탄트라 문헌의 주제는 철학·명상술(요가)·조상(造像)·사원건축을 포함한 의례 및 종교적 예배행위와 사회적 실행으로 이루어지며, 교파에 따라 시바파의 아가마, 비슈누파의 상히타, 샤크티파의 탄트라로 구분된다.

〈시야바 아가마〉에서 아가마(agama : 傳承)를 따른 시바파는 다시 샤이바 시단타, 비라샤이바, 타밀 샤이바, 카슈미르 샤이바로 구분되며, 성전도 각각 다르다. 〈바이슈나바 상히타〉는 〈바이카나사 상히타〉와 〈판차라트라 상히타〉로 나뉜다. 전자는 원래 바가바타파의 사원을 중심으로 하는 경전이며, 후자는 주로 상키아와 요가 철학에 고취된 우주론을 다룬다.

이 문헌에서 비로소 비슈누파에 샤크티(saktli 性力) 개념이 도입된다. 여기에서는 우주창조의 시초에 샤크티가 여성적 창조력으로 현현한다. 〈샤크티 탄트라〉에서 샤크티교는 시바교와 민속적 어머니신 신앙의 혼합으로, 시바 자신이 아니라 그의 샤크티가 시바의 행동원리로서 숭앙된다. 요가 부분에서는 만트라(mantra 眞言)가 크게 중시되며, 척추 밑에 놓인 쿤달리니는 신비력을 통한 수행법, 남녀의 교합을 의례화한 좌도 탄트라의 문헌도 등장했다.

박티 신앙의 성장

중세기 특히 이슬람교도들의 정복 후에 새로운 박티적 종교운동이 성장했다. 이것은 시바계의 나야나르와 비슈누계의 알리바르 등의 종교시인들에 의한 타밀어 찬가의 출현으로 시작된다(타밀 문학). 박티 사상은 이미 〈바가바드기타〉 등의 고대 문헌에서도 보이지만, 거기서는 정서가 통제되어 있는 데 반해, 타밀의 찬가에는 신에 대한 사랑과 기쁨 등의 강렬한 정서가 충만해 있다. 이 시인들의 새로운 신앙운동이 북쪽으로 확산되면서 이슬람교도 침입에 뒤이은 수세기간의 박티 신앙 흥성의 기원이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0세기경에는 인도에서 산스크리트로 〈바가바타 푸라나〉가 제작되었다.

박티 시대의 힌두교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힌두교는 북인도에서는 좀 위축되었지만 남인도에선 여전히 그 생명력을 과시했다. 라마는 비슈누의 8번째 화신으로 승격되었고, 하누만도 중요한 신이 되었다.

카스트 제도가 더욱 굳어졌고, 조기결혼, 일부다처제, 과부의 분신자살이 널리 퍼졌다. 대규모의 베다식 제사는 사라졌지만, 동물, 때로는 인간을 제물로 하는 간단한 형태의 희생제가 특히 여신숭배와 관련되어 나타났다. 박티 시인들은 계급에 구애받지 않았고 산스크리트가 아니라 대중의 언어로 노래했기 때문에 중세 인도의 전지역에서 호응을 얻었다.

이들 시인 성자들은 또한 유신론적 철학체계의 확립에 자극을 주어 시바파에서는 샤이바시단타가, 비슈누파에서는 라마누자·마드바 등의 베단타 체계가 나타났다. 한편 이슬람의 일신교·우상배척·성전숭배사상 등에 영향받은 나나크에 의해 시크교가 힌두교의 일파로 등장함으로써 북인도에 종교적 왕국을 건설하여, 영국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세력을 누렸다.

현대의 힌두교

영국의 인도 지배하에서 영어교육을 통한 새로운 지식층이 형성되었고, 유럽의 자유사상과 그리스도교에 자극받은 그들은 전래의 부조리한 사회제도와 힌두교의 관행에 비판을 가하게 되었다(→ 선교).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힌두교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근대 인도의 아버지로 존칭되는 람 모한 로이(1772~1823)는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에 대한 폭넓은 섭렵을 통해 모든 종교에서 신앙되는 신은 동일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고전복귀운동과 더불어 '브라마 협회'를 조직하고 카스트간의 융합, 과부의 분신자살 폐지, 재혼의 허용 등 힌두교와 사회의 개혁을 시도했다.

다야난다 사라스바티(1824~83)는 람모한 로이와 달리 유럽 문화와의 접촉 없이 독자적으로 베다로의 복귀를 주장했고, '아리아 협회'를 조직했다. 그는 우상숭배·제사·다신교를 거부했고, 많은 학교와 대학을 설립했으며, 인도 민족주의를 격려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라마크리슈나(1836~86) 역시 서구적 교육에 전혀 접해보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폭넓은 종교적 편력과 신비체험을 통해 모든 종교는 동일한 목표로 가는 다른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의 제자 비베카난다(1863~1902)는 '라마크리슈나 선교회'를 설립했고, 스승의 가르침을 펴고자 국제적 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사회봉사 활동도 전개했다.

19세기에 싹튼 민족적 자각은 자치권의 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으로 바뀌었다. 발강가나트 틸라크(1852~1920)은 〈바가바드기타〉의 사상을 정의(다르마)를 위해 불의에 항거하는 적극적 행동주의로 해석함으로써 힌두교 속에서 그의 정치투쟁의 이념을 끌어냈고, 오로빈도 고세(1872~1950)의 민족주의 운동도 단순한 세속적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의 발로였다(→ 오로빈도 아슈람). "종교가 정치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종교의 본질을 모르는 소치이다"라고 선언한 마하트마 간디(1869~1948)도 〈바가바드기타〉에서 그의 정치투쟁의 정신적 지주를 찾았다.

베다교와 브라만교

BC 15세기경 인도에 정착한 초기 인도·유럽인의 종교를 그들의 성전의 이름을 따서 베다교라고 부른다. 베다교로부터 점차 브라만 계급이 중심이 된 제사주의적 종교가 성장했으며, 이것을 브라만 사제계급, 또는 그들의 최고 존재로 받드는 브라만으로부터 브라만교라고 명명했다.

베다교의 대부분은 소멸되었고, 그중 살아남은 것은 힌두교의 일부로 융화되어 더이상 독립적 요소로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힌두교의 많은 특성들이 그 뿌리를 베다 시대에 두고 있으며, 윤회와 해탈 등 몇 가지 관념은 지금까지도 인도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결정짓고 있다. 베다교는 근본적으로 제사주의이며, 제사는 목적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구분된다. 인간의 생명과 생존의 보존, 위험과 재앙의 극복, 일상적 수단으로 맞설 수 없는 악신이나 적의 분쇄, 보이지 않는 힘의 통제, 초세속적이고 성스러운 질서와의 우호적 관계 유지 등을 위해 복잡한 제사 형태가 고안되었다. 제사의 효력에 대한 믿음은 모든 사물과 사건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믿음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제사의 여러 요소들과 우주, 더 나아가 영원한 초월적 실제 사이에는 대응관계가 있으므로, 제사의 올바른 수행은 우주적 힘을 인간에게 우호적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고 믿어졌다. 그러므로 제사와 우주와의 대응관계에 대한 지식을 가진 브라만은 우주와 인간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주술적 힘의 소유자로서 신들(deva)보다도 더 큰 위력을 지닌 것으로 믿어졌다.

'브라만'은 원래 기도, 주문, 또는 주문이 가진 힘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제사의 힘, 더 나아가 제사를 알고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사제를 뜻하기에 이르렀다. 제사의 본질이 브라만이므로 브라만은 동시에 제사와 대응관계에 있는 우주의 본질이기도 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실제의 제사보다도 제사의 기저에 놓인 우주적 연관에 대한 지식이 더욱 강조되었고, 브라만을 아는 자는 곧 브라만이 된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그 브라만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있는 참다운 자아, 곧 아트만이라고 생각되었고, 따라서 아트만을 발견한 자는 우주의 근원적 실재인 브라만과 하나가 됨과 동시에 해탈을 얻는다는 신비적 사변이 탄생했다. 이것이 후에 힌두교학의 정수인 베단타 철학으로 발전했다.

비슈누교

세 걸음으로 전 우주를 왕래한다는 〈리그베다〉의 비슈누 신은 베다 시대에는 미약한 존재였으나 라마나 크리슈나 등 신화와 전설 속의 영웅 또는 민속적 신과 결합되어 대중적 숭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오늘날 비슈누 신앙은 시바 신앙과 더불어 힌두교의 2대 교파로 확립되었다. 초기의 비슈누교도는 바수데바를 유일한 신으로 숭배하는 판차라트라(Pancaratra)교도였으며, 점차 확대되는 비슈누 신앙에 흡수되었다. 즉 바수데바는 비슈누의 별칭으로 받아들여졌다.

비슈누교도들은 일반적으로 바가바타(비슈누 또는 크리슈나를 바가바트, 즉 하느님으로 숭배하는 자)로 알려졌으며, 〈바가바드기타〉의 크리슈나 교설을 발전시킨 무리로부터 유래되었다.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그것의 일부인 〈바가바드기타〉 이후로 크리슈나 신화는 더욱 발전되고 대중화되어갔다. 특히 적어도 5세기 이전에 완성되어 〈마하바라타〉에 부속된 〈하리방샤〉(하리, 즉 비슈누의 가계)는 크리슈나의 선조의 역사 및 그 자신의 공훈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슈나 신앙이 정절에 이른 것은 〈푸라나〉와 봉헌시에서이다.

4세기경의 〈비슈누 푸라나〉는 비슈누를 최고신으로 여기고 다른 신들은 그의 에너지로 여기며, 크리슈나의 출생, 개구쟁이 어린시절, 목동생활, 고피(gopi : 목장처녀)들과의 유희, 악마와의 싸움, 왕으로서의 통치, 그리고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대중적인 9세기경의 〈바가바타 푸라나〉는 22가지 화신(avataar) 및 브린다반에서의 고삐들과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바가바타 푸라나〉에서 크리슈나가 고삐 가운데 1명과 도주했다고 하는데, 후대 문헌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라다이며 비슈누의 배우자인 락슈미 여신의 화신이라고 한다.

12세기 벵골 시인 자야데바는 크리슈나와 라다의 사랑을 읊은 시 〈기타고빈다〉를 썼다. 15세기에는 벵골의 브라만 차이타니아가 몰아경에서 노래와 춤의 행진을 하고, 크리슈나와 라다의 일화를 연출했다. 그가 죽은 후 브린다반에 거대한 사원이 건조되었고, 오늘날에도 축제와 순례가 행해진다.

라마와 크리슈나에 대한 타밀어 찬송시를 지은 알리바르들을 추종하는 남인도의 비슈누교도들은 라다를 언급하지 않으며, 따라서 에로틱한 요소를 배제하고 있다. 라마는 비슈누의 화신의 하나로서 널리 숭앙되었으며, 비슈누의 배우자 락슈미는 학문·예술·행운의 여신으로서 가정·상점·사무실·학교에서도 숭배된다. 신년을 맞는 디발리 푸자(양력 10~11월)중에는 락슈미 여신을 위한 축제가 포함되어 있다.

봄의 축제에서 사랑의 신으로서 봉축되는 카마는 비슈누와 락슈미의 아들이라고 한다.

비슈누와 락슈미
비슈누와 락슈미

시바교

후대에 시바는 위대한 요가 수행자(요기), 가축의 주(파슈파티), 풍요의 신 등으로 불리지만, 인더스 계곡의 유물 중에는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다리를 꼬고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 발견되며 이것이 시바 신의 원형이라고 추측된다. 베다에는 시바 신이 없으나 후에 시바 신과 동일화된 폭풍의 신 루드라는 산에 거주하며 검은색의 두려운 존재로서 시바 신과 유사한 속성을 갖고 있다.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에서 시바('상서로움')는 처음에는 유일신 루드라의 속성이었으나 나중에는 그의 이름이 된다.

여기서 처음으로 비인격적인 브라만이 속성을 가진 인격적 신과 동일시된다.

비슈누만큼 많이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마하바라타〉〈푸라나〉에서는 시바의 양면적 성격이 예시되고 있으며, 이것이 그를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그는 화장터를 좋아하며, 해골과 범을 두르고, 고행자의 상투머리에 삼지창을 들고 있으며, 또 경솔한 자를 태워서 재로 만드는 제3의 눈을 갖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죽음과 시간의 신이기도 하다.

또 시바는 우주에 율동을 주는 '춤의 주'(나타라자)이다. 시바는 링가(linga 男根)로 표상되며, 흔히 요니(yoni 女根)와 결합된다. 반대로 그는 엄격한 금욕과 고행의 신이기도 하다. 시바와 그의 배우자 파르바티 여신, 그리고 아들 가네샤·카르티케야는 히말라야의 봉우리에 앉아 있으며, 황소 난디는 자애로운 모습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다.

남인도의 샤이바시단타파는 가축의 주(pati 시바)와 가축(pasu 속박된 영혼) 및 속박(pasa)의 세 개념을 교설의 중심으로 삼는다. 시바(파티)는 최고신으로서 다른 신들은 그의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창조자·유지자·은폐자·구원자·파괴자로 작용하며, 우주의 내재자이면서 초월자이다.

그는 그의 힘과 의지를 대표하는 샤크티(본래는 그의 배우자인 우마·파르바티·칼리와 동일)로서 이 세계 안에 내재한다. 물질(파샤)에 속박된 영혼(파슈)은 요가 수행과 신의 은총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10세기의 마니카 바차카르는 그러한 맥락에서 신의 은총을 기원하는 열정적인 노래를 불렀다.

카슈미르 시바파는 현상계의 비실재성을 가르치는 철인 샹카라를 따르는 일원론적 교파로서, 구원은 갑작스런 깨달음에 의한다고 가르친다. 보다 대중적인 교파는 비라 샤이바파, 즉 링가야트파로서 교리는 라마누자의 제한적 불이론을 따른다. 이 파의 모든 교도들은 유일한 상징물인 링가를 소지하며, 신상이나 베다·바라문의 권위, 제사와 순례 등을 거부하고, 만민평등을 주장한다.

탄트라교와 샤크티교

탄트라교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시대에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되었으며, 신성한 창조력(샤크티)에 대한 신비적 사변에 근거하고 있다. 탄트라는 본질적으로 요가적 수단에 의해 초월적 힘을 획득하고, 최고의 원리와 합일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탄트라교에 따르면 대우주(macrocosm)는 복잡한 힘들의 체계이며, 요가의 심리적 기술에 의해 수련자의 개별적 육신 속에 그 힘들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한다.

좌도 탄트라교는 감각적 향수(bhoga)를 중시하며, 자연적 기능과 성향을 통해 영적 목적을 추구한다. 이 교파에서는 의식 상태를 에로틱한 용어로, 그리고 생리적 과정을 우주적 용어로 기술한다. 우주 자체의 구조와 조화가 만트라에 의존한다고 믿으며, 따라서 만트라는 일상적 세속적 생존을 초탈하는 불가결한 수단이다. 우도 탄트라는 박티의 영향하에서 발전된 요가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여 정서적 역동적 수단에 의해 지고자와의 결합을 희구한다. 주문을 통한 수련인 만트라 요가와 육체적 통제를 통해 영적 목적을 추구하는 하타 요가를 중시한다. 또 일부 탄트라교도는 라자 요가를 구사하는데, 이 요가는 수련에 따라 똬리를 튼 뱀의 형태로 잠재된 여성적 자연력(샤크티)이 각성되어 신체의 중추를 따라 위치한 6곳의 차크라(중심점)를 통해 정수리에 있는 1,000 개의 연꽃(sahasrara)에 이르러서 남성적 최고 존재인 푸루샤와 합일한다. 샤크티와 푸루샤의 합일이 영구적이 되면, 경이로운 힘이 수련자에게 일어나며, 수련자는 곧 해탈하게 된다. 탄트라교는 흔히 샤크티교와 불가분적으로 얽혀 있다. 샤크티교는 신(특히 시바신)이 가진 창조력(샤크티)을 중심원리로 삼는 교설과 실천 체계이다. 신은 오직 샤크티를 통해서만 행동하기 때문에 샤크티는 우주의 과정과 개인의 구원에 있어서 결정적 요소이다. 그리고 샤크티는 그의 배우자인 여신으로 인격화된다. 여러 형태의 샤크티교가 있지만, 한 여신(보통 두르가)을 브라만과 동일화하며 우주의 통치자로 숭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녀는 세계를 생성시키고 유지하고 재흡수하며, 시바 신조차 그녀로 인해 존재한다. 벵골의 칼리파에서는 그녀의 창조력이 소멸되지 않도록 피 흘리는 희생제를 지낸다. 샤크티교는 가끔 타락하기도 하지만, 생명을 유지하고 재생산시키기 위한 자연적 충동에 대한 요가적 승화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샤크티 수행자는 영원의 정복을 향하여 그들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도록 훈련받는다. 의식에 의한 정욕의 충족, 술과 고기 섭취, 성교 등의 모든 것이 육체와 영혼, 인간과 신의 단일성을 실현하는 비의적 가치를 갖는다.

민속 힌두교

보통의 힌두인에게 종교란 일차적으로 사적인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신체와 입으로의 의식 수행이다.

하층 카스트들은 인간의 일상적 사건과 관련되어 악과 불행을 야기시키는 갖가지 정령들을 위무하는 데 주된 관심을 쏟는다. 이들 카스트들은 우물과 나무, 돌, 물, 그리고 땅에 거주하는 정령을 조종하여 저주와 마법 및 재앙과 질병에 대항하며, 비나 풍성한 수확을 주는 마을 신들을 숭앙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들은 점성술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점, 불길하거나 상서로운 징조의 효력을 믿는다(민속종교).

대중적 힌두교와, 어느 정도 힌두화된 외적 집단의 신앙 형태와, 인도의 토착적 부족종교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긋기는 어렵다.

토착적 부족민과 불가촉천민 그룹은 어떤 사회적 또는 물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하층 카스트 힌두인들을 모방하여 그들의 신들을 신앙하고자 한다. 오랜 시간 동안에 상호침투와 혼합을 통해 많은 지역 신앙들이 힌두교 안에 수용되었고, 지역신들이 힌두 신전의 신들과 동일화되기도 했다. 상층 카스트의 힌두인들이 개인적으로 신성에 접근하고자 하는 반면, 대중들에게는 가족구성원·마을·교파 간의 협동적 숭배가 더욱 일반적이다.

대가족의 구성원으로서 가정의 신앙활동에 참여하여 죽음이나 결혼과 같은 중대한 시점에 집단적 의례를 치름으로써 가족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 마을 공동체의 종교행위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각 카스트는 같은 카스트 안에 공유하는 의식을 갖는다. 한편 같은 지역에 속하는 여러 마을들 사이에도 협동하여 의례를 치루는 전통이 있다.

힌두의 축제와 성지 힌두교의 축제는 종교적 의식, 예배, 기도, 정화의례, 행진, 음악, 춤, 먹고 마시기, 방탕 등이 결합된 복합체이다.

축제는 부정의 정화, 해로운 세력의 저지, 사회의 갱신, 위기의 극복, 자연의 활력을 재생시키는 등의 목적을 가지고 행해진다. 힌두 달력에 따라 연중 끊이지 않고 축제가 열리며, 축제의 종류도 매우 다양해서 수확과 풍요를 축하하는 것, 신들이나 영웅의 탄생과 승리의 축하, 태양이나 달 및 별에 대한 축제, 그리고 신화적 사건에 대한 축제도 있다.

이중 중요한 것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음력 2·3월에 열리는 홀리제(Holi : 봄의 축제)는 본래 춘분과 연관되어 있으며, 젊음과 사랑의 신 카마를 섬기는 일종의 농신제(農神祭)로서, 일반적으로 보름날 10일 전에 시작되어 보름날에 끝난다. 3, 4월의 가장 중요한 축제는 9~11일에 거행되는 라마 탄생제이다.

순례자들이 라마와 관련된 장소에 모여들며 라마의 무용담을 듣고 라마의 탄생일인 9일에는 단식을 한다. 4·5월은 크리슈나를 숭앙하는 달로서, 성스러운 강에서 목욕하며 제례를 베푼다. 8, 9월에는 4일에 코끼리 머리를 가진 가네샤 상을 흙으로 빚어 예배하며, 7·8일에는 시바의 부인이며 가네샤의 어머니인 가우리 여신을 섬기는 제례가 열린다. 9, 10월에는 인도 최대의 축제인 9일간의 밤축제(나바라트리)인 두르가 푸자가 열린다.

4가지 축제가 합쳐진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하나의 축제로 간주된다. 마지막 10일은 두르가가 악마의 소 마히샤 아수라를 죽인 날로서 벵골 지방에서 특히 중시되며, 동시에 라마가 마왕 라마나를 퇴치한 날로서 인도 전역에서 성대한 행사가 벌어진다. 이 달의 후반 13일째부터 다음달 2일까지의 5일 간은 디왈리 또는 디파발리[火登明祭]라고 하여 지난해를 결산하고 신년을 맞이하는 축제이다(신년축제). 첫날은 '부(富)의 제13일'이라고 부르는데, 기름을 바르고 목욕하며, 상인들은 1년을 결산하는 장부 위에 돈을 쌓아놓고 부의 여신 락슈미에게 예배 드린다.

3일째는 락슈미 푸자라고 하는데 단식을 하며 저녁 때 여신에게 예배드린다. 제4일째는 라마가 오랜 유랑 끝에 고향인 아요디아로 돌아와 왕위에 오른 날을 기념한다.

축제의 행진과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강이나 기타 성지의 순례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도인의 종교생활에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수많은 성지들이 있지만 특히 아요드디아·마투라·하르드와르·바라나시·칸치·우자인 등은 옛부터 성지로서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곳들은 갠지스 강과 같은 성스러운 강 옆에 있거나 전설적·신화적 인물과 연관된 곳이다. 순례자는 성지를 방문함으로써 특별한 은혜를 받는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성지방문을 통해 죄악이나 오염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종교적 공덕을 유지하여 하늘에서 태어나거나, 더 나아가 윤회에서 해탈하기를 희망한다. 특히 죽음에 임박했을 때 갠지스 강 가까이에서 죽고자 바라나시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해탈에의 기대를 갖는다.

힌두교도들은 출생과 더불어 힌두교의 규정에 따른 통과의례를 치르면서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죽는다(사회적 지위). 이것은 힌두교도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카스트와 가정, 촌락과 같은 사회적 관례에 따른 반강제적 규정이다.

이처럼 사회적·종교적으로 힌두인을 규제하는 것을 다르마(dharma)라고 한다. 다르마는 이법·진리·의무·법·정의 등 많은 의미를 지닌 말로서 힌두교의 사회와 그 일부로서의 개인을 유기적으로 통합시켜주고 질서를 유지시켜주는 근거이다. 힌두인은 태어남과 동시에 4개의 바르나 중 하나에 소속되며, 각 바르나에는 고유한 의무(다르마)가 있다. 이 의무를 규정한 많은 법전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마누 법전이다. 힌두교에서는 인생의 목적을 재물(artha)·쾌락(kama)·의무(dharma)·해탈(moksa)로 여기며, 이것은 생의 4단계(아슈라마)로 구체화된다.

학생기는 상층 세 바르나의 자제들이 8~11세에 베다를 학습하고 지적·도덕적인 훈련을 쌓는 시기이다. 가주기는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경제활동을 하며, 조상과 신에게 제사드리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시기이다.

임주기는 세속적인 임무를 마친 후 부인과 함께 삼림에 은퇴하여 명상 등의 수행을 통해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기이다. 마지막 유행기는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탁발 수행하며, 성지를 순례하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힌두교도에게 있어 가정은 생활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종교생활의 단위이다. 힌두 가정은 모두 특정한 카스트에 속하며, 그 카스트에 맞는 종교생활을 영위하고, 또 지연적 관계에 따른 종교행사에 참여한다.

힌두교도 가정의 종교생활에는 고대 문헌인 〈가정경〉이 아직까지도 구속력을 갖고 있다.

사제를 초빙하여 지내는 가정의례나, 호주가 중심이 되어 지내는 가족구성원의 탄생축하, 명명식, 학생 입문식, 결혼식, 조상에 대한 제사, 아침·저녁 예배 등이 〈가정경〉의 규정에 따라 수행된다. 가정에서의 제사는 크게 5가지로 구분되는데, 브라만을 위해 베다의 성구를 독송하는 브라만제, 신들을 위해 공물을 불에 던지는 아그니제, 돌아가신 조상의 혼을 위해 물을 뿌리는 조령제, 손님 특히 수도승에게 음식을 베푸는 아디티시바가 그것이다.

힌두 가정에서는 다섯 보호신, 즉 비슈누·시바·수리아·파르바티·가네샤의 소상(小像)을 모시고 매일 공물을 바치는 것이 관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