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설

윤회설

다른 표기 언어 reincarnation , 輪廻說

요약 윤회는 중생이 미혹의 세계에서 삶과 죽음을 반복하기를 수레바퀴처럼 멈추지 않고 유전함을 의미한다. 윤회는 영혼의 존재를 전제로 하며, 영혼은 영원불변의 실체이다. 인간의 행위(업)는 육신이 멸하더라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업력을 남긴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업의 선악에 따라 합당한 세계에 달리 태어난다. 현재 자신의 상황은 과거에 지은 업의 결과이다. 그러나 윤회설은 이러한 기본 구조와 상충하는 다른 관념을 수용하면서 발전했다. 사자의 업을 다른 사람이 쌓는 공덕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관념으로, 불교에서는 자신의 공덕을 남에게 돌린다는 회향사상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윤회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라는 인식은 변함이 없으므로,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종교적 불사를 얻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이라고 여긴다.

목차

접기
  1. 개요
  2. 기본 원리
  3. 성립
  4. 인도 윤회설의 전개
  5. 불교의 윤회설
윤회설
윤회설

개요

윤회라는 말 자체는 중생이 미혹의 세계에서 삶과 죽음을 반복하기를 수레 바퀴처럼 멈추지 않고 유전함을 의미한다.

윤회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 'saṃsāra'는 '흐름'이라는 뜻으로 생명체가 생사를 반복함을 가리키며, '생사'(生死)라고도 번역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 한다. 또 인도에서 상사라는 '세계'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어, 생사·윤회·세계는 상응하는 개념이다. 이로부터 전개되는 윤회설은 인간의 행위를 의미하는 (業 karma)과 필연적으로 결부되며, 또 윤회의 주체인 영혼의 문제가 주요쟁점이 된다.

기본 원리

사후세계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다양한 종교 의례 및 관습을 형성해왔다.

윤회 역시 그런 관심에서 유래하여 특히 인도에서 현저한 발전을 보였다. 이미 인도 최고(最古)의 문헌인 〈리그베다 Rigveda〉가 인간 사후의 운명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여기서의 관심이 이후 점차 윤회설로 발전해갔다. 윤회는, 불교를 제외해야겠지만 일반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영혼은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 영원불변의 실체이므로 인간이 죽더라도 멸하지 않는다. 한편 인간의 행위(업)는 육신이 멸하더라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잠재력인 업력을 남긴다.

더욱이 이 업력은 신체적 행위뿐만 아니라 말과 생각을 통해서도 형성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신(身)·구(口)·의(意)의 3업을 인정한다. 업력은 영혼에 간직된다고 생각되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업의 선악에 따라 합당한 형태의 세계에 달리 태어난다. 그러나 그렇게 재생하더라도 거기서의 행위(業)는 반드시 다시 업력을 낳기 때문에, 영혼은 계속 업력의 지배를 받으며 죽음과 재생을 무한히 반복해간다.

처음에는 사후에 재생하는 저승의 세계란 기본적으로 안락한 천상의 세계와 고통스런 지옥의 2가지였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각종 동물로 태어난다고 하는 통속적 관념이 성립되었다. 즉 인간계와 축생계 등이 재생의 세계에 추가된다. 또 천상의 세계라 하여 윤회가 끝나는 것은 아니고, 거기서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업이 다하면 다른 세계로 재생해야 하며 그 세계 역시 윤회의 세계이다.

업은 자업자득이라는 필연성을 철칙으로 하여 발현된다. 업의 영향은 바로 자신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난다. 현세가 아니라면 내세 또는 그 이후에 나타난다. 따라서 현재 자신의 상황은 곧 과거에 지은 업의 결과이다.

그러나 윤회설은 이러한 기본 구조와 상충하는 다른 관념을 수용하면서 발전한다. 특히 사자(死者) 의례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사자의 업을 다른 사람이 쌓는 공덕에 의해 개선할 수 있다는 관념이다. 원래 사자의 세계는 생전의 업에 의해 결정되어 있으므로 타인의 공덕은 사자에게 무익하지만, 일반적인 사자의례는 유족이 사자의 보다 나은 후생을 기원하기 위해 행한다.

이는 업의 법칙과 공덕의 관념이 모순되면서도 공존하는 예이다. 이런 모순이 불교에서는 자신의 공덕을 남에게 돌린다는 회향사상(廻向思想)으로 발전한다. 이런 양상은 업·윤회설이 민간신앙이나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윤회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라는 인식은 변함이 없으므로,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결국 종교적 불사(不死)를 얻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성립

윤회설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은 〈리그베다〉에 나타난다. 여기서는 재생의 경위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사후세계를 인정한다. 즉 선한 사람들은 조상의 길을 따라 천계로 가고 악한 사람들은 암흑의 세계로 간다고 믿는다. 이어 〈아타르바베다 Atharvaveda〉에서는 지옥의 세계를 상세히 묘사하고 최초의 사자인 야마의 국토를 언급하는데, 이것은 후세에 말하는 명부의 선구적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리그베다
리그베다

다음 단계의 〈브라마나 Brahmana〉 문헌에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세계에서 산다"고 하며 야마가 죄상을 심판한다는 관념도 등장하고 있어, 인과응보의 관념이 진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후세계로부터 다시 어디론가 윤회한다는 사상은 없고, 재생의 주체에 대한 고찰도 아직은 불충분하다. 이 단계에서의 업과 윤회에 대한 인식은 제사의 강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브라마나〉 문헌을 흔히 제식서라고 하듯이, 제사를 바르게 실행하는 것이 곧 선업을 쌓는 길이며 제사를 실행하고 그 의의를 아는 것이 불사를 얻는 길이라고 믿었다.

인도의 윤회설은 〈우파니샤드〉에서 어느 정도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성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화이도설이다. 먼저 '오화설'은 제사에서 사용되는 제화와 관련지어 인간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5단계의 과정을 설명한다. 죽은 사람을 화장하면 그의 영혼은 먼저 달로 간다. 다음에는 비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와 식물의 뿌리에 흡수되어 인간의 음식이 된다. 남자가 먹을 경우 그 영혼은 정자가 되어 모태로 들어가 재생한다. 즉 '달-비-식물-정자-모태'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발전한 '이도설'에서는 신도와 조도라는 2가지 과정을 설정한다. 먼저 신도는 숲속에서 고행으로 열심히 수행한 자가 사후 화장의 불길을 타고 천계로 가서, 신들의 세계를 포함한 다양한 세계를 거치면서 이윽고 브라마의 세계에 도달해 다시는 되돌아오는 일이 없는 과정이다. 다음 조도는 제사와 보시로 선행을 쌓은 자가 사후 화장의 연기와 함께 천계로 가서 조상들의 세계를 포함한 여러 장소를 거쳐 달에 이르고, 여기서 전생의 업력이 다할 때까지 머물다가 앞에서 말한 오화설의 단계대로 지상에 재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악업을 일삼은 사람은 신도와 조도의 어디로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한편 〈우파니샤드〉는 선인선과·악인악과의 관념을 주장하며, 윤회의 주체가 아트만임을 고찰한다. 윤회 주체로서의 아트만은 당연히 영혼과 같은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업·윤회설은 석가모니가 출현한 BC 6~5세기에는 이미 성립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당시의 인도 사회에서 이 사상은 한편으로는 숙명론적 이해를 강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상황을 교묘하게 설명하여, 현재의 선행이 내세의 행복으로 연결된다는 희망을 주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그토록 오랫동안 존속한 사실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애초에 불교는 그런 사회 구조를 반대함과 아울러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윤회설을 수용하여 진전시키게 된다.

인도 윤회설의 전개

인도의 제학파는 윤회설을 실존 차원의 철학 문제로 취급하여 다양하게 논하는데, 그 중심적 주제는 윤회의 주체와 원인, 그리고 그로부터의 해방인 해탈이다.

먼저 독특한 이원론을 주장한 상키아 학파의 25원리설에 의하면, 순수정신인 푸루샤와 근본물질인 프라크리티가 결합하여 후자로부터 일체의 현상이 전개된다. 즉 통각기관(마하트)과 자아의식(아항카라)이 생기고, 자아의식으로부터 5종의 지각기관, 5종의 행동기관, 하나의 사고기관인 마나스, 감각의 대상인 5종의 미세요소, 그리고 흔히 5대라 불리는 5종(地·水·火·風·空)의 조대(粗大) 요소가 생긴다.

여기서 현실의 개인 존재는 통각기관으로부터 5종의 미세요소에 이르는 각 원리에 의해 형성되는 세신(細身 linga-sarira)일 뿐이다. 그런데 이 세신이 업력을 보유하여 순수정신을 속박하는 윤회의 주체가 된다. 이 파에서는 천상·인간·동물의 3가지 세계를 윤회의 세계로 인정한다.

순수정신이 윤회하는 것은 무지의 근본물질에 속박되기 때문인데, 자신을 근본물질 및 이로부터 전개된 원리들과 서로 명확히 구별해 알면 순수정신은 본래의 해탈 상태를 회복한다. 그러나 육체는 업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이 해탈은 완전하지 않고, 육체가 멸한 후에야 순수정신은 독존, 즉 완전한 해탈에 도달해 윤회로부터 벗어난다. 상키아 철학과 깊은 연관이 있는 요가 학파에서는 가장 큰 번뇌, 곧 무지에 의해 업이 축적되어 윤회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번뇌를 멸하여 마음의 무질서한 활동을 지멸함으로써 순수정신은 본래의 독존상태를 회복하여 윤회로부터 벗어나는데, 이를 위한 방법으로 요가의 수행을 강조한다.

6원리와 9실체를 내세우면서 원자론을 주장하는 바이셰시카 학파에서는 아트만을 지각과 감각의 주체로서 '나'라는 자아관념을 일으키는, 상주하는 실체라고 생각한다. 이 아트만은 본래는 청정하지만 항상 욕망에 구속되는 사고 활동에 의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윤회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사고 활동을 억누르고 실체·성질·운동·보편·특수·내속(內屬)의 6원리를 연구하여 사물의 진실한 성질을 인식함으로써 해탈한다고 주장한다. 인도의 6파철학 중 가장 유명한 베단타 학파에서는 다양한 현상과 절대 존재인 브라만이 서로 다른 것이면서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온갖 현상도 결국은 다시 브라만으로 귀입한다는 것이다. 개인 존재인 개아(個我)와 브라만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며 개아는 업에 의해 윤회한다.

그리고 개아가 브라만과 합일할 때는 해탈한다. 이 학파의 가장 유명한 학자인 8세기의 샹카라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 Advaita)을 주장하여, 브라만이 곧 아트만이고 아트만인 브라만이 진짜 실재라고 설한다. 그에 의하면 현상세계는 개아를 포함하여 마야(maya 幻)의 소산에 불과하다. 이 마야는 다양한 현상을 일으켜서 미혹시키는 힘이며 무지에서 유래한다. 마치 새끼줄을 보고서 뱀이라고 오인하듯이 무지로 인해 브라만과 아트만이 다른 것이라고 오인하며, 그때문에 윤회한다.

따라서 브라만과 아트만이 동일함을 알 때 해탈하고 윤회는 멈춘다.

이처럼 윤회의 종식을 해탈과 동일시하는 관점은 불교와 거의 동시대에 흥기한 자이나교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자이나교의 이론에는 독특한 면이 있다. 우선 세계는 지바[命我]와 아지바[非命我] 2가지로 구성되며, 아지바에는 다시 4가지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지바는 정신작용을 본질로 하는 실체로서, 몸과 말과 생각으로 일으키는 행위에 의해 항상 업이 이 지바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여기서 자이나교는 이 업을 미세한 물질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지바를 에워싸며 업신(業身)을 만든다고 설한다. 이 업신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 윤회의 세계로는 인간·신·동물·지옥의 4종을 인정하며, 새로운 업의 유입을 막고 이미 부착되어 있는 업을 없앰으로써 지바는 해탈한다고 하여, 그 방법으로 고행의 실천을 유달리 강조한다. 불교측의 용어지만, 이 자이나교까지 포함한 육사외도(六師外道) 중에는 윤회를 부정하는 집단도 있었다. 이들은 대개 유물론자들인데, 예를 들어 푸라나 카사파는 어떠한 선악의 과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지타 케사캄발린에 의하면, 만물은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원소로 구성되므로 죽음이란 육체가 분해되어 그 원소로 되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아트만도 없고 영혼도 없으며 따라서 윤회도 없다.

윤회를 부정하는 신앙은 중세 이후에도 등장했으나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철저한 헌신적 신앙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쾌락주의로 흐른 유물론자와는 차원이 다르며, 윤회와 업을 완전히 부정했다기보다는 거기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다고 평할 만하다. 이른바 박티 신앙이 그것인데, 박티란 신애(信愛)를 의미하며 오로지 절대자인 신에게 믿음과 애정을 바치는 실천적 사상이다(박티). 이 사상은 5세기 무렵부터 점차 활성화되어 다양한 운동이 일어났다.

신에 대한 애정으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밖에 달리 구할 것이 없으므로, 신 앞에서 왜소한 존재에 불과한 자기를 완전히 비우고 모든 것을 다 던져 귀의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박티는 그 자체가 최상의 가치로 인식된다. 따라서 현세의 욕망은 모두 그 속에 흡수되어 결국 더 좋은 세계로의 재생을 바랄 필요조차도 없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윤회를 완전히 부정한 일파가 '시바신을 영웅적으로 숭배하는 무리'라는 뜻의 비라샤이바, 곧 영웅 시바파이다.

남인도에서 12세기 바사바가 창시한 이 파는 시바신의 상징인 링가[男根]를 소상(小像)으로 만들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므로 링가야트파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윤회도 부정하며, 일체의 형식적 종교의례를 거부했다. 이런 태도가 사회적 악습을 거부하는 데로 나아가 순교자를 속출시켰기 때문에 '비라샤이바'라는 명칭도 생겼다.

시바신을 박티로 신봉하여 그 단계가 점차 고양되면 결국 신과 합일함으로써 해탈인 독존에 이른다고 설한다.

불교의 윤회설

불교
불교

인도의 제학파는 영혼에 상당하는 아트만 또는 이와 유사한 실체를 인정하고, 이것이 업을 지고 다니면서 윤회한다고 설한다.

같은 문화적 토양에서 성장한 불교는 민간신앙의 차원에서는 윤회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아트만[我]과 같은 실체를 부정하는 무아설(無我說)과의 모순은 교리적으로 커다란 해결 과제가 되었다. 이 모순의 해결은 인도불교의 사상사를 일관하는 하나의 대주제였으며, 이 과정에서 윤회설은 교리화되고 철학 체계로 정비되어갔다. 석가모니의 이른바 무기설법(無記說法)은 그가 인간의 사후 운명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으로 윤회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만, 남에게 베풀고 계율을 지키면 사후 천계에 태어난다는 그의 이른바 차제설법(次第說法)은 윤회설의 현실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한 것으로 간주된다.

또 그는 인간의 가치가 행위(業)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사고방식이 윤회와 업을 불교에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 관한 전생 이야기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인과응보의 업·윤회관을 바탕으로 성립되는데, 이는 윤회설이 불교에 정착되었음을 뜻한다.

이와 아울러 윤회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교리화되어간다.

먼저 부파불교에서는 업의 본질을 상세히 논하고 윤회의 구조를 교리화했다. 미혹인 번뇌가 업을 일으키면 그결과 고통의 현상세계가 성립한다는 것이 그 기본 구조이다. 또 윤회의 세계로는 천계·인간·축생·아귀·지옥의 5도(道) 또는 인간과 축생 사이에 아수라를 설정한 6도를 주장하기도 한다. 지옥은 더위와 추위의 고통으로 가득 찬 곳으로 각각 8개씩 설정되며, 천계는 점차 계층화되어 22천으로까지 분류되는데, 그 최상층을 색구경천(色究竟天) 또는 유정천(有頂天)이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계(三界)란 지옥에서부터 유정천까지의 온갖 세계를 욕계·색계·무색계의 3가지로 분류하여 할당한 것으로, 결국 윤회세계를 총칭한다. 〈아비달마구사론 阿毘達磨俱舍論〉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이 불교의 장대한 우주론으로 전개되어 아비달마 교학의 전형을 이룬다. 한편 여기서는 기존의 12지연기설을 윤회와 결부시켜 교리적으로 해석하는데, 12지연기는 과거·현재·미래의 3세에 걸친 윤회세계가 인과에 의해 성립함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윤회의 주체에 대한 문제는 부파불교 이후 주요쟁점 중의 하나인데, 각 부파나 학파는 무아설에 배치되지 않도록 다양한 표현을 구사하여 논한다.

부파 가운데 독자부에서 푸드갈라[人我]를 내세운 예가 대표적인데, 이는 영혼에 상당한 것을 불교적으로 표현했다고 이해된다. 또 세의식(細意識)이라든가 근본식(根本識) 등의 표현도 있어, 일반적으로 인식기능을 담당하는 (識)을 윤회의 주체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영혼과 같은 실체가 아니다. 현상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식작용의 역할을 중시하는 불교 특유의 관점에서 인간의 의식을 지속시키는 주체를 확대·적용하여 윤회의 주체로 제시한 것이다.

유사한 시각이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중유(中有) 또는 중음(中陰)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사람이 죽어서 재생할 때까지의 중간에 있는 존재로서 미세한 5온(五蘊)으로 구성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재생하는 주체이며 영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윤회설에서 항상 무아설을 고려했던 인도불교는 이윽고 유가행파에 이르러 아뢰야식을 주장하게 된다(아뢰야식). 이것은 업이 조성한 과거의 습관력을 받아들여 간직하는 잠재의식과 같은 것이다.

현상세계란 여기에 간직된 습관력(業力)이 외부로 발현된 것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윤회세계이다. 따라서 이 야뢰야식이 청정하게 된다면 발현될 업력도 없어져 더이상 분별할 것도 없는 깨달음의 세계, 즉 해탈의 세계가 열린다. 실천적으로는 식뿐인 세계를 주(主)와 객(客)으로 분별하는 미혹을 제거함으로써 해탈에 이른다. 여기서 아뢰야식은 윤회의 주체로서 영혼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그런 역할이 강조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진실한 지혜를 얻는 수행의 이론적 근거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