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리아의 역사

브라질리아의 역사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았을 때, 대서양 연안에서부터 먼저 식민 거점이 마련되고 해안 평야 지대를 따라 인구와 경제 활동이 집중되었다. 반면 내륙은 해안보다 개척이 늦어진 데다가, 세라두 식생을 지닌 고원 지대로서 건기 때마다 가뭄을 겪어야 하는 등 자연환경도 그리 우호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개발에 지장을 받았다. 해안과 내륙의 지역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아마존 강과 파라과이 강 사이의 내륙 어딘가로 수도를 옮기자는 구상이 1789년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1822년 브라질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페드루 1세(Dom Pedro I)가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이듬해인 1823년 황제의 보좌관인 조제 보니파시우(José Bonifácio)가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신도시 이름을 ‘브라질리아’로 제안하였다. 1891년 제정된 공화국 헌법 제3조에서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브라질 중심에 위치한 고이아스 주의 평탄한 고원 지대를 연방 지역으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당시 브라질의 핵심 지역에서 너무 먼 벽지에 있고, 새 수도 건설에 드는 막대한 비용 등의 문제로 수도 이전은 계속 지연되었다.

브라질리아로의 천도(遷都)는 1956년에 선출된 주셀리누 쿠비체크(Juscelino Kubitschek) 대통령이 단행하였다. 쿠비체크는 브라질 헌법에 명시된 대로 신수도 건설 추진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1956년 대통령에 취임하자 의회의 승인을 거쳐 신수도건설청(NOVOCAP)을 신설하고,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를 건설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브라질리아의 마스터플랜은 수도 입지가 결정된 후 국제 공모를 통해 마련되었다. 이 공모전에 출품된 총 26개의 작품 중에서 브라질의 대표적인 건축가 루시우 코스타(Lúcio Costa)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신도시 건설 공사는 신속하게 진행되어, 1960년 4월 21일 브라질리아에서 새 수도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브라질리아는 주셀리누 쿠비체크 대통령의 지휘 아래 루시오 코스타가 도시를 설계하고, 오스카르 니에메예르가 주요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조경 디자이너인 호베르투 막스(Roberto Marx)가 공원을 비롯한 도시 조경을 맡았다. 1987년에는 ‘현대와 미래가 어울리는 독창적인 도시’로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신수도 이전은 1883년에 이탈리아의 돈 보스코(Don Bosco) 신부가 브라질의 중원 지대에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문명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을 가리켜, 브라질리아의 건설을 종교적인 신비성과 연관 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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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