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장좌리 당제

완도 장좌리 당제

분류 교통/통신/지리 > 해양문화사전 > 해양민속 > 무속

장좌리는 매해 음력 1월 15일 새벽 장보고 대사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당제의 주신이 장보고인 것으로 인해 전국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당제는 마을 앞에 있는 장도 정상에 있는 당집에서 지내는데, 건너갈 때는 물이 빠져 걸어서 올라가고, 마을로 돌아올 때는 밀물이 들어 배를 타고 건너온다. 장좌리의 당제와 당굿은 1995년 전남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판자로 짠 상이 세 개 놓여 있는데 가운데는 주신인 宋徵將軍, 우측은 鄭年將軍, 좌측은 혜일대사를 모시는 제상이다. 역사적인 인물을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당집은 오히려 성격상 儒式의 祠宇와 같다. 다른 하나 특기할만한 사실은 1982년부터 이곳에 새로 張保皐를 추가하여 모시고 있는 것이다. 당시 남도문화제에 이곳 堂祭가 출연하면서 이곳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로 그를 추배하게 되었다고 하며, 그후 계속해서 張保皐까지 4위의 당신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장좌리의 당제 준비는 정월 초사흗날부터 시작된다. 정월 초사흗날 마을 대동공회(大同公會)를 열어 제관과 제비, 당굿 칠 사람들을 선정한다. 이 회의에는 마을 어르신들과 책임자들이 참여하고,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대로 시행한다. 당주는 집사와 달리 매해 새로 선정한다. 이는 선정 기준이 매우 까다롭고 엄격하기 때문이다. 당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친가는 물론 처가까지도 부정과 유고가 없어야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애가 있어도 안 된다. 또한 부인이 생리를 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주로 나이가 연만한 집의 부부를 선정한다. 당굿 칠 사람에 대해서는 비교적 규제가 덜한 편이나 초상이나 출산 등의 유고가 있는 사람은 제외한다. 집안의 큰 유고가 있는 사람이 아닌 경우 참가할 수 있는데, 스스로 유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굿을 칠 때 당집의 금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제비는 당공(堂貢)이라고 하며, 그 해 당제에 필요한 경비를 산출하여 호구전으로 걷는다. 제일 새벽이 되면 당제를 지낼 사람들과 당굿을 칠 군중들은 갯벌위를 걸어서 장도로 이동한다. 당제는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각을 맞추어 제례가 시작된다. 당집이 동편을 향하고 있어서 멀리서 해가 뜨는 광경이 보였다. 당주와 집사, 이장이 당에 들어가 제례를 시작한다. 제차는 유교식으로 진행되며, 가제(家祭)의 순서에 준해서 지낸다. 전체적인 제차를 보면, ‘設床 - 焚香 - 降神盃 - 讀祝 - 初獻 - 亞獻 - 終獻 - 燒紙 - 飮福 - 獻食 - 撤床’의 순이다. 진설을 할 때까지 밖에서 쉬고 있던 군중들이 제를 시작할려면서부터 당집 앞마당에 도열하여 상쇠의 지시에 따라 당산굿을 치기 시작한다. 독축과 소지를 할 때만 굿을 잠시 그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제관들이 당신(堂神) 에게 절을 올릴 때는 굿을 치면서 서서 함께 目禮로 절을 올린다. 음복이 끝난 후 철상을 하면서 각 상에서 음식을 조금씩 떼어 축문에 싸서 당집 옆 나무 그루터기 위에 놓았다. 여기서 헌식을 하고 절을 하는 사람은 군중의 대포수다. 헌식이 끝나면 당집 앞마당에 식판을 줄줄이 늘어놓고 거기에 갖가지 음식을 차례로 담는다. 장보고장군 부하인 군사들에게 거리밥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제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는 밀물이 들어 마을과 장도가 바다로 가로막힌다. 따라서 마을로 돌아올 때는 배를 타고 건너온다. 배를 타고 건너오면서 뱃굿을 친다. 마을로 돌아와서는 샘굿과 사장굿(당산굿), 마당밟이 등을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파장굿을 치면서 모든 일정을 마무리 짓는다.

<출전 :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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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장좌리당제 및 당굿

완도장좌리당제 및 당굿 출처: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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