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

보부상

분류 정치/경제/생업 > 디지털리소스실 > 상인 > 특수직업 2D
보부상 본문 이미지 1

원천자료

보부상 본문 이미지 2

고증자료

• 명 칭 : 보부상
• 시 대 : 조선 후기(19세기 말~20세기 초)
• 설 명 : 고대사회 이래 구입한 일용잡화를 지방의 시장을 돌며 판매한 행상(行商).
원래 부상(負商)과 보상(褓商)의 두 개의 상단(商團)으로 구분되었고, 취급하는 물품도 각각 달랐다. 부상은 나무, 그릇, 토기 등과 같은 비교적 조잡한 일용품을 상품으로 하여,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판매하였기 때문에 ‘등짐장수'라고 불렸다. 이에 비해 보상은 비교적 값비싼 필묵, 금, 은, 동 제품 등과 같은 정밀한 세공품(細工品)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였기 때문에 '봇짐장수'라고 불렸다.

개항 정국에 보부상은 그 전국적인 조직망으로 인해 정부의 보호를 받기도 했으며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즉 정부는 보부상단의 조직체를 이용하여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데 동원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주 감영의 영병(營兵) 250명과 함께 보부상 1,000여 명이 동원되어 농민군 토벌에 참여하였다. 또한 광무정권 당시 정부는 황국협회에 소속된 보부상단을 동원하여, 정부의 비자주적 외교 활동을 비판하며 반정부운동을 벌인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탄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특권적 성격 때문에 보부상은 상업자본의 축적은 물론, 개항 이후 변화되는 새로운 경제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결국 전통적인 보수상인단체의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였다.

현재 보부상은 거의 소멸되고, 현재 충청남도와 경상남도의 일부 지방에서 보부상단의 존재를 발견할 정도다.

※ 자료참조 : 시스윌 촬영(안성시청 민속장터 재현) / "시장을 열지못하게 하라"(김대길)해설

3D

출처: 문화원형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