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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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자료

• 명 칭 : 광대
• 시 대 : 조선 후기(19세기 말~20세기 초)
• 설 명 : 가면극이나 인형극 같은 연극이나 나례(儺禮)·줄타기·판소리 등을 하던 직업적 예능인.
창우(倡優)라고도 한다. 재백정(才白丁)과 더불어 민속연예를 전달하던 최하층의 천인들로서, 광대라 부르게 된 것은 고려 말부터이다. 국가기관에 소속되어 국가행사 때 연예를 담당하거나 궁중행사에 불려가지 않을 때는 시중의 공상인(工商人)들을 상대로 생계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도 광대들은 궁중행사나 외국 사신들의 영접 때 산대잡희(山臺雜戱)나 나례 등을 공연하고 평상시에는 떼를 지어 지방을 돌아다니며 각종 연회로 생계를 이었다. 이들은 궁중·관가·양반의 사랑(舍廊)을 비롯하여 도회·농어촌·시장 등에서 판소리·줄타기·땅재주·정재(呈才)·가면희·검무(劍舞) 등을 연출하였다.

『중종실록(中宗實錄)』에 보면, 본시 농사를 짓지 않는 무항산자(無恒産者)로서 우희(優戱)로써 걸량(乞糧)을 하며 때로는 겁탈·도적질을 행한다 하여 사회의 병폐로 지적되었다. 또한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광대가 봄·여름에는 고기잡이를 좇아 어촌으로 몰려들고, 가을·겨울에는 추수를 노려 농촌으로 몰린다고 하여 광대나 재인의 연희가 전국에서 성행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 같이 전국으로 확산된 광대·재인들은 1824년(순조 24) 각 도 재인도청(才人都廳)이 통합되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재조직되어 통제를 받았다. 후기에는 노래를 부르는 가객광대(歌客廣大)와 줄타기·땅재주를 하는 재인광대(才人廣大)로 분업화(分業化)하였다.

※ 자료참조 :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 생활과 풍속 상』 / 조풍연 해설 / 서문당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