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구려

[ 高句麗 ]

시대명 고대/삼국

고구려를 건국한 세력들은 처음에는 BC 1세기경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유역에서 부족 단위의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위만조선이 중국의 한나라에게 망한 다음에 이 지역에 현도군이 설치되었다. 한의 군현이 설치됨에 따라 토착인들에 대한 중국의 착취나 간섭이 심해졌고, 이에 대항하여 토착세력의 반발이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고구려의 건국을 촉발시킨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토착세력은 결국 한군현 세력을 몰아내고 연맹체를 형성했는데 이때 중심이 된 것이 5부족인 계루부·소노부·절노부·순노부·관노부였다. 처음에는 소노부가 우세 부족으로 왕의 지위를 계승하다가 AD 1세기 태조왕 때부터 계루부가 우세 부족으로서 왕위를 세습했다.

고대왕국 초기까지도 각 부족들은 아직도 독자적인 정치체로서 일정하게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점차 중앙집권화가 강화되면서 각 부족은 자치권을 상실함과 아울러 각부 고유의 명칭을 상실하고 각 방위를 나타내는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 등의 행정구역으로 변경되었다. 초기의 수도는 만주 집안현의 국내성이었으며, 중국과의 대결을 거치면서 고대왕국으로 성장했다.

1세기 중엽에는 요서·동옥저·주나국 등을 통합했다. 4세기경에는 고조선의 옛 땅에 설치되었던 낙랑과 대방군을 몰아냈다. 5세기경 광개토대왕·장수왕 대를 거치면서 영토를 더욱 확대했다. 특히 장수왕 때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기면서 남하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백제신라를 크게 위축시켰다. 7세기 초반 이후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내면서 국가를 보전했다. 그러나 7세기 중반 이후 지배층들 간의 내분이 격화되었다.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은 강력한 전제정치를 폈으며 그의 사후 정권을 계승한 세 아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면서 당과 신라의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무너지고 말았다(668).

고구려는 지배층이 중심이 된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통치기구를 정비해갔는데 고구려 초기 중앙의 고위관직으로는 대보·우보·좌보 등이 있었다. 166년에는 좌·우보를 국상으로 고쳤다. 그 외에도 고구려 전반기에는 상가·대주부·중외대부·패자·고추가·우태·사자·조의 등의 관직명이 보인다. 7세기에 들어서는 최고의 직위로서 국가의 중대사를 관장하던 대대로와 태대형, 외교관계 일을 담당했던 태대사자, 국가의 문서 관계 일을 맡은 울절 등의 관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