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
[ 金活蘭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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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사망 | 1899 ~ 1970 |
이명 |
호 : 우월(又月) 이칭 : 헬렌 |
직업 | 여성운동가, 교육가 |
여성운동가·교육가. 호는 우월(又月), 세례명은 헬렌. 인천 사람. 9살에 이화 학당에 입학하고, 20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웨슬리언 대학·보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이화여전 교수가 되었다. 26년 기독교계 여성운동의 대표자격으로 근우회에 참여했으나, 사회주의계 여성운동 세력과의 대립으로 곧 탈퇴했다. 근우회 해체 후 합법의 테두리내에서 활동하던 기독교계 여성운동가들이 점차 일제의 앞잡이로 전락, 방송선전협회 등 친일조직의 요직에서 활약할 때, 김활란도 유각경·이숙종(李淑鍾)·임영신(任永信)·노천명(盧天命)·모윤숙(毛允淑)·황선덕 등과 함께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간부직을 맡아 정신대·학도병 지원을 선전하고 황국부인으로서 지녀야 할 자질연마와 각성을 촉구하는 강연활동에 나섰다.
해방 후에는 교육사업에 주로 종사, 61년까지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으며, 이후에도 명예총장으로 추대되었다. 그 밖에 대한 기독교청년연합회 이사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한국여학사협회 회장 등 수많은 사회단체에 관여했다. 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고, 같은 해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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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활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