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성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고려장성

[ 高麗長城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성곽 · 봉수>성터
유물유적시대 고려
행정구역 평안북도>창성군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48호

평안북도 창성군 금야리에 있는 옛 성터. 천리장성이라고도 한다. 천리장성은 압록강 하구에서부터 평안북도의 북쪽과 자강도의 희천지방, 평안남도의 북단을 가로질러 함경남도의 바닷가에 이르는 천여 리에 쌓은 장성이다.

천리장성은 네 단계로 나누어 서쪽으로부터 차례로 쌓았다. 첫 단계는 1033년 8월부터 1035년 8월까지 압록강 하구로부터 의주군 금광리 금광산(송산)계선까지, 둘째 단계는 1035년 9월부터 1040년경까지 송산으로부터 삭주군 · 창성군 · 운산군을 거쳐 희천시 극성령계선까지, 셋째 단계는 1041년부터 1043년 경까지 극성령계선으로부터 평안남도 영원군 · 대홍군을 거쳐 함경남도 요덕군 · 백산 부근까지, 넷째 단계는 1044년경부터 두 줄기로 쌓았는데 그 한 줄기는 백산 부근으로부터 정평군 구읍리를 거쳐 삼도리 동해안까지, 다른 한 줄기는 같은 지점에서 시작하여 금야군을 거쳐 가진 · 광성곶에 이르렀다.

성벽의 대부분은 돌로 쌓았고 곳에 따라 흙으로 쌓은 데도 있다. 산경사면에서는 거의 다 외면축조방법을 썼다. 험한 절벽을 지나는 데는 절벽자체를 성벽으로 삼았으며 평지에서는 양면축조방법을 적용하였다. 어떤 데서는 성벽 밖에 황을 파서 성의 방어력을 강화하였다. 성벽의 높이는 지금 잘 남아 있는 곳이 4~7m 정도이다. 성벽 위에는 성가퀴를 쌓고 쏘는 구멍을 냈다. 천리장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중요한 곳들에는 독립성을 쌓아 군사적 거점으로 삼았으며 의주군과 정평군 등 큰 길목에는 관을 설치하고 그밖의 작은 길목들에는 수(경비초소)를 두었다. 천리장성은 외적의 침략을 견제할 수 있게 하여 나라의 안전에 이바지하였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유의 사항】

  • ⓘ 본 콘텐츠는 1999~2005년 남북공동 편찬사업에 의해 발간된 자료로서,
    북한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한 자료의 특수성으로 내용의 최신성이나 이미지의 선명도가 다소 떨어지는 점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