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산성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검산성

[ 劍山城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성곽 · 봉수>성터
유물유적시대 조선
행정구역 평안북도>동림군
등급 준국보급(보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보존급 제139호

평안북도 동림군 산성리에 있는 옛 성터. 1628년의 유적이다. 처음 축성한 연대는 잘 알 수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1627년에 후금의 불의의 침입을 격퇴하고 그 이듬해 쌓은 것이다. 검산성은 1853년에 개축한 일이 있다. 검산성은 안쪽의 높은 대지를 중심으로 둘러선 봉우리들을 따라 외면축조방법으로 쌓은 석성으로서 평면은 타원형에 가까운 부정형이며 북쪽에 자리잡은 내성과 그 남쪽에 붙은 외성으로 이루어졌다. 성의 둘레는 약 5km이다. 성벽은 자연석을 대충 네모나게 다듬어 쌓았는데 성문 부근의 성돌은 비교적 공을 들여 다듬었다. 성벽의 높이는 보통 4~6m이며 내성의 남벽에는 높이 8~9m 되는 곳도 있다.

성벽 위에는 네모성가퀴를 쌓았다. 성문은 지형에 따라 여러 곳에 냈다. 외성에는 남문과 동문, 수구문이 있으며 내성에는 남문과 수구문, 북문, 동문, 서암문이 있다. 내성의 동쪽 끝부분에는 겹성을 축조하였다. 내성의 남문과 북문, 외성의 남문은 홍예문길이며 외성의 동문과 수구문, 내성의 동문과 서암문은 미식문길이다. 성문 옆에는 성문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성벽을 밖으로 돌출시켜 쌓은 ‘치’를 설치하였다. 홍예문들은 부채형으로 다듬은 성돌로 맞물려 쌓았는데 그 물림이 치밀한 편이다. 성문 위에는 지금도 문루를 세웠던 주춧돌들이 확연하게 남아 있다. 수구문은 성벽 밑부분에 작게 쌓아 적들이 기어들지 못하게 하였다.

내성과 외성에는 못을 파서 항상 많은 물을 저장하고 있었다. 성 안에는 병영과 군기창고터, 식량창고터 등이 남아 있다. 검산성에는 늘 많은 수의 군대와 무기, 탄약, 화약과 식량, 소금 같은 것이 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성 안의 가장 높은 북장대터에는 지금도 주춧돌들이 열 지어 서 있다. 성 안에는 의병장이었던 임경업의 사당과 지득남의 사당이 있었다. 이 성은 조선시대 산성의 축성형식을 잘 보여주므로 산성연구에 좋은 자료로 된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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