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루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가학루

[ 駕鶴樓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누각 · 정자>누정
유물유적시대 조선
행정구역 강원도>안변군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03호

강원도 안변군 안변읍에 있는 옛 건물. 가학루는 학들이 날아오는 아름다운 다락집이라는 말이다. 가학루는 조선시대 안변의 객사였던 학성관의 부속건물이었다. 학성관은 당시의 객사(관리들의 숙박소)들 가운데서 그 중 규모가 크고 설비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가학루는 학성관에 있는 관리들의 연회장, 놀이터로 이용되었다. 가학루는 뒤로 학성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무연한 안변벌을 굽어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안변의 역사를 쓴 책인 『학성지』에 의하면 가학루는 738~742년에 처음 세웠다고 한다. 그 후 1486년에 다시 지었다. 북한을 강점한 왜적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하여 훌륭한 건축술로 잘 지은 학성관의 주요 건물들은 다 없어지고 가학루만 겨우 남았다. 가학루란 학이 날아와 앉은 것 같은 누정이라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가학루는 봉건관료들이 지방에 나갔을 때에 머무르던 안변의 객사(여관)인 학성관의 연회장이었다.

누정은 다듬은 긴 돌로 나지막하게 쌓은 밑단 위에 세운 정면 3간(11.07m), 측면 3칸(7.45m)의 포식두공을 얹은 겹처마합각집이다. 기둥은 정면과 측면에서 다같이 고르게 배치하였다. 기둥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위, 아래를 이어 16개를 세웠다. 2층다락마루는 대창도 굵고 소창과 널판도 모두 두툼하여 듬직하다. 이 누정에서는 두공조직이 특이하다. 두공은 안팎 다 3포로 짜올렸다.

제공은 닫긴형으로 되어 있어 제공과 첨차의 형태가 같다. 가학루에서는 기둥과 보의 물림에서도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앞쪽 중심기둥은 머리부분에 대들보 끝을 물리고 곧추 올라가 동자기둥을 대신하여 중도리를 받들게 하고 뒤쪽 중심기둥은 대들보밑을 받치고 그 기둥 위로 건너간 대들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중도리를 받치게 한 것이다.

중도리와 물린 중보 위에는 마루도리를 떠받드는 대공을 얹었다. 대공은 조각장식이 소박하고 간결하나 건물의 변형력를 높이고 안정감을 자아내게 한다. 천장은 통천장을 하였다. 중도리안쪽을 좁히고 정연하게 배치된 서까래와 부채살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통천장은 시원하면서도 아름답다. 소박하고 간결한 모루단청을 입힌 가학루는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잡히고 아담하게 만들어졌다.

다락집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안팎의 포수가 꼭 같은 것, 두공조각의 기법과 배부른 두리기둥 등은 고려시대의 건축수법을 많이 이어받은 조선 초기의 건축기술을 뚜렷이 보여주며 건물의 짜임새와 지붕의 곡선미는 주위환경에 잘 어울린다. 가학루는 6 · 25전쟁시기 폭격에 의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1957년에 원상대로 복구되어 국보적 유적으로 잘 보존관리 되고 있으며 근로자들의 즐거운 문화휴식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