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렬]원 황제를 만나다

[고려 충렬]원 황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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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4년 ○ 가을 7월에 왕이 황제를 뵈옵고 아뢰기를, … 왕이 또 아뢰기를, ˝일본이 한 성안의 오랑캐로서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황제께 조회하지 않으며, 감히 대국의 군사에 항거하오니, 신이 다시 배를 만들고 양곡을 저축하여 그 죄를 성토하고 치게 하사이다˝ 하니, 황제가 이르기를, ˝왕은 돌아가서 재상들과 잘 의논하여 사람을 보내서 아뢰게 하라˝ 하였다. … ○ … 합백이 또 사람을 시켜 재추에게 묻기를, ˝흔도가 말하기를, ‘황제가 고려의 섬사람들을 육지에 나와 살게 하였는데 고려에서 다시 섬에 들어가 살게 하고 구당사(勾當使)를 파견하였다’ 하는데, 사실이냐˝ 하자, 박항이 말하기를, ˝지원 7년에 우리나라가 다시 옛 서울로 환도한 것은 조정의 명령에 의한 것이지만, ‘여러 섬의 백성들을 육지에 나와서 살게 하라’는 명령은 없었소. 다만 삼별초가 반하여 진도와 탐라에 웅거해 있었으므로, 충청도와 서해도의 여러 섬은 적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대로 편안히 살게 하고, 적과 가까운 전라도와 경상도의 여러 섬에 사는 사람들은 육지로 나와서 그들의 약탈을 피하게 한 것뿐이다˝ 하니, ˝섬사람들이 배를 타고 떼를 지어 왕래하면서 일을 저지르면 어찌하는가˝ 하였다. 항이 받아 말하기를, ˝섬의 주민들은 의식과 고기잡이를 위하여 생활하는 것 뿐이므로, 고기잡이를 위하여 왕래하는 것은 관청에서 금할 일이 아니요. 또한 조정에서 소방에 명령하는 것은 모두 원수부와 다루하치에게 내려가게 되어 있읍니다. 흔도가 염주(鹽州)에 가 있는 지 이미 오래이며, 서해도의 여러 섬이나 교동(蕎桐)·용매도(龍煤島) 같은 곳은 원수부와 서로 마주 보이는 곳에 있는데, 흔도가 어찌 그대로 앉아서 보기만 하고, <그들을> 육지로 나오게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조정의 지시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였다. ○ 왕이 중서성에 글을 올리기를, ˝… 또 악한 무리가 나라를 흔들려고 매양, ‘강화에 환도(還都)하려 한다’ 고 말을 만들어 내니, 종전군(種田軍)을 강도에 들어가 있게 하여 참소하는 짓을 막아야 합니다. 동정원수부(東征元帥府)에서 도성(都省)에 보고하기를, ‘고려인들이 증명서도 받지 않고 역마[鋪馬]를 타는 자가 많으며, 또 배를 타고 떼를 지어 왕래하니, 사건이 발생될까 염려되므로 <관원으로> 군사 4백 명을 거느리고 전라도에 탈탈화손(脫脫禾孫)을 배치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방에서 일찌기 중서성의 지시를 받들어, 국내에 왕래하는 사람은 국왕 자신이 증명을 발급하였고, 이 때부터는 왕래하는 사신에게도 반드시 증명을 주었는데, 어찌 증명서도 없이 역마를 타고 왕래하는 자가 있었겠습니까. 소방에서는 옛날부터 수로로 조세를 왕경에 전운(轉運)하였으며, 이 밖에는 다만 고기잡이하는 사람들뿐인데, 어찌 배를 타고 떼지어 왕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까. 그런 것은, 원수부에서 말을 꾸며서 거듭하여 보고하고, 마음대로 탈탈화손을 배치한 때문입니다. 또 탐라 다루하치가 나주와 해남(海南)에 마음대로 참치(站赤)를 설치하였으니, 잘 설명하여 아뢰어 주기 바랍니다. … 탐라와 진도를 토벌할 때에 적당(賊黨)의 자녀가 많이 관군에게 붙잡혀 갔는데, 평민에 속하는 자들까지도 함부로 포로라 하여 강제로 구종(驅從)으로 충당하니, 금지하게 해 주기 바랍니다. … 소방의 여러 섬은 모두 육지와 멀지 않으므로 상국에서 보내는 죄수를 가두어 두기 어려운데, 지금 또 탐라(耽羅)에 있던 죄수를 여러 섬으로 옮기려 한다면 변이 생길까 염려되오니, 종전대로 두고 관군을 시켜 감시하기 바랍니다. …˝
• 출처 : 『高麗史節要』 권20 충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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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