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의종]임첨과 조동희가 모의하다

[고려 의종]임첨과 조동희가 모의하다

분류 교통/통신/지리 > 해양문화사전 > 해양사 > 해양정책

을유 19년(1165) ○ 3월에 금나라 대부영주(大夫營主)가 정예한 군졸 70여 명을 보내어 인주(麟州) ·정주(靜州) 두 주 관내의 섬을 공격하고, 정주를 방수(防守)하는 별장(別將) 원상(元尙)등을 잡아서 돌아갔다. 그 섬은 인주 · 정주와의 상거가 7, 8천 보(步) 되는 곳으로, 두 고을의 백성이 일찌기 왕래하면서 농사짓고, 고기잡고, 나무하고, 풀깎던 곳이었는데, 금나라 사람이 공허한 틈을 타서 나무도 하고 가축도 먹이면서 많이 살아 왔었다. 계미년 가을에 급사중 김광중(金光中)이 병마부사(兵馬副使)가 되어, 땅을 수복하여 공을 세우려고 제 마음대로 군사를 동원하여 그들을 공격하여 그 막사를 불사르고는 수비하는 군대와 둔전(屯田)을 두었다. 김장이 금나라에 가니, 금나라 임금이 김장을 책하여 이르기를, ˝변경(邊境)에 점점 뜻밖의 일이 생기니, 그것은 너희 임금이 시켜서 한 짓이냐 변방 관리의 소행이냐. 과연 변방 관리의 소위라 하면, 너희 임금은 마땅히 <그 관리를> 징계할 것이다.˝하였다. 장이 돌아와 아뢰니, 왕이 이에 그 섬을 반환하고 명하여 수비 군병도 철수하게 하였으나, 서북면 병마부사 윤인첨 등이 국토가 줄어짐을 부끄럽게 여겨서 오히려 명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금나라에서 장차 공격해 오려고 하였다. 인첨이 두려워하여 의주판관(義州判官) 조동희(趙冬曦)와 더불어 비밀히 모의하고, 드디어 대부영(大府營)에 이첩(移牒)하여 모든 노획물을 반환하겠다고 자청하여 다음날에 돌려 보내고도 인첨 등이 비밀에 붙이고 아뢰지 않았다.
• 출처 : 『高麗史節要』 권11 의종 장효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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