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문학

캐나다 문학

다른 표기 언어 Canadian literature

요약 캐나다인에 의해 프랑스어·영어로 씌어진 문학작품의 총체.

목차

펼치기
  1. 캐나다의 영어문학(산문과 시)
    1. 태동기(1600~1900)
    2. 근대(1900~60)
    3. 1960년대 이후
  2. 캐나다의 영어문학(극과 비평)
  3. 캐나다의 프랑스어 문학
  4. 프랑스 통치시대의 캐나다 프랑스어 문학
  5. 영국의 정복 이후 캐나다 프랑스어 문학
  6. 캐나다 프랑스어 초기문학
  7. 퀘벡 운동
  8. 몬트리올 학파
  9.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시기의 캐나다 프랑스어 문학
  10. 조용한 혁명

캐나다는 영어와 프랑스어의 2개 국어를 가지고 있는 언어 기반과 건국 배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학에 있어서도 영문학과 프랑스어 문학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 캐나다 영문학의 태동은 17, 18세기의 여행가나 탐험가 중심의 기록문학이었다.

대부분 애국시나 송가였고, 소설에서는 역사 로맨스가 유행했다. 이들 장르는 1900년부터 향토소설에 밀려 퇴조했다. 1940년대 이후에는 과도기적 성격이 두드러졌고, 1970~80년대에는 사실주의에서 초현실주의·재귀소설·여성해방소설·피카레스크 소설 양식으로 옮겨갔다. 1960~70년대에는 시 작품도 전성기를 누렸다.

캐나다에서 프랑스어 문학이 단편적인 형태로나마 싹트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 신문 지면을 통해서였고, 처음으로 출판되기 시작한 것은 1830년대였다. 이후 19세기말에는 몬트리올을 중심으로 문학파가 결성되었고, 1960년대에는 퀘벡 사회가 격변기를 겪으면서 그 중심이 되었다. 1960년 이후 캐나다의 프랑스어 문학은 활발한 출판활동을 이어갔다.

캐나다의 영어문학(산문과 시)

태동기(1600~1900)

캐나다에서 영어로 글을 쓴 최초의 작가들은 탐험가, 여행가, 영국인 관리와 그 아내들 같은 방문객들이었다.

그들은 영국령 북아메리카에서 받은 인상을 도표·일기·일지·편지에 기록했다. 이들의 여행과 그 답사기록에서 건국신화와 '캐나다'의 실체를 찾으려는 캐나다 전통이 비롯되었다. 이러한 기록 중 가장 일찍 쓰여진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 여행기와 탐험기였다(기행문학).탐험가 새뮤얼 은 〈허드슨 만의 프린스오브웨일스 교역소에서 북해까지의 여행 A Journey from Prince of Wales's Fort in Hudson's Bay, to the Northern Ocean〉(1795)을 썼고, 탐험가이자 모피상인인 알렉산더 매켄지 경은 〈몬트리올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을 거쳐 태평양까지의 항해 Voyages from Montreal…… Through the Continent of North America, to the Frozen and Pacific Oceans〉(1801)를 남겼다.

사무엘 헌 (Samuel Hearne)
사무엘 헌 (Samuel Hearne)

이 글들은 모피교역을 독점하고 있던 허드슨베이사와 노스웨스트사를 위해 광대한 미지의 땅인 캐나다 서부와 북부를 대담하게 여행한 과정을 소박한 언어로 기록한 것이다. 함락당한 퀘벡의 프랑스 요새를 방문한 영국인 군목의 아내 프랜시스 브루크는 〈에밀리 몬터규의 생애 History of Emily Montague〉(1769)를 썼는데, 이 소설은 캐나다를 배경으로 한 작품 가운데 최초로 출판되었다.

서간체 로맨스인 이 소설에는 퀘벡의 생기 넘치는 겨울 풍경과 생활 및 관습이 그려져 있다.

식민지 노바스코샤 주의 핼리팩스와 뉴브런즈윅의 프레더릭턴은 캐나다에서 가장 먼저 문학을 꽃피운 지방이다. 1789년 최초의 문예지 〈노바스코샤 매거진 Nova-Scotia Magazine〉이 핼리팩스에서 창간되었다.

이 도시의 문학활동은 미국 독립전쟁중에 왕당파들이 이곳으로 들어오고 언론인이자 시인인 조지프 호라는 정력적인 인물이 노바스코샤의 초대 주지사가 됨으로써 더욱 활기를 띠었다. 18세기말경에 문학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2가지 중요한 요소인 문학잡지와 신문, 강한 지역주의가 등장했다. 토머스 매컬럭은 연재물 〈메피보셰스 스텝슈어의 편지 Letters of Mephibosheth Stepsure〉(1821~22)에서, 토머스 챈들러 핼리버턴은 경솔한 미국인 행상 샘 슬릭을 등장시킨 〈시계공 The Clockmaker〉(1835~36)에서, '청교도들'이라고 불리는 노바스코샤 주민들의 사투리·관습·약점을 풍자하여 자신들의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고 민간 해학이라는 장르의 확립에도 기여했다.

핼리버턴 (Thomas Chandler Haliburton)
핼리버턴 (Thomas Chandler Haliburton)

초기 시는 대부분 〈조지프 스탠스버리와 조너선 오들 박사의 애국시집 The Loyal Verses of Joseph Stansbury and Doctor Jonathan Odell〉(1860) 같은 애국시나 송가, 또는 초창기의 방문객들이 새로운 땅과 그 주민들을 찾아내 이름 붙이는 데 기울인 관심을 반영해 특정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지형시들이다.

노바스코샤 태생의 올리버 골드스미스는 〈발전하는 마을 The Rising Village〉(1825)에서 영웅시체 2행연구로 개척생활을 찬양하는 한편 노바스코샤가 '서부의 별천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했다. 그의 낙관주의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인 종조부 올리버 골드스미스가 쓴 우울한 시 〈황폐한 마을 Deserted Village, The〉(1770)에 대한 응답이었다.

〈황폐한 마을〉은 쫓겨난 마을사람들의 강제이주로 끝맺고 있다.

새로운 낙원을 기대했으나 낙원 대신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인디언들, 모진 기후, 낯선 야생동물, 물질적·문화적 혜택의 결핍에 부딪힌 이주민들은 스트릭런드 자매로 알려진 수재나 스트릭런드 무디와 캐서린 파 스트릭런드 트레일에 의해 산문작품의 주제로 다루어졌다.

혹독하지만 때로는 해학적인 수재나 무디의 〈힘든 오지생활 Roughing It in the Bush〉(1852)은 캐나다로 이민 오려는 사람들이 헛된 희망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쓴 글이지만, 캐서린 파 트레일의 〈캐나다의 오지 Backwoods of Canada〉(1836)는 신세계를 좀더 호의적으로 그리고 있다.

1867년 노바스코샤·뉴브런즈윅·어퍼캐나다(지금의 온타리오 주)·로어캐나다(지금의 퀘벡 주)가 합쳐진 캐나다 연방이 결성됨으로써 문학활동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이른바 '연방'시인들은 진정한 토착시의 소재를 찾아 자연의 풍경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선배들과는 달리 그들은 더이상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거나 도덕적으로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고 나아가 아치볼드 램프먼이 "시인의 영혼과 자연의 정신 또는 신비가 서로 화답하는 조화로운 상태"라고 한 것을 포착하려고 했다.

뉴브런즈윅의 시인 찰스 G.D. 로버츠는 다작작가이며 방랑자인 그의 사촌 블리스 카먼, 오타와의 시인 램프먼과 던컨 캠벨 스콧이 시를 쓰도록 고무했다. 램프먼은 자연에 대한 명상으로 유명하며, 스콧은 백인의 세계에 갇혀버린 인디언들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시들로 기억된다. 이 시기의 가장 독창적인 시인으로는 이자벨라 밸런시 크로퍼드를 꼽을 수 있다.

인디언의 민담, 개척생활, 신화, 생명체로 상징되는 자연에서 얻어낸 이미지로 가득 찬 그녀의 다채로운 설화시는 1884년에 〈도깨비가 다니던 길 Old Spookses' Pass, Malcolm's Katie, and Other Poems〉로 엮어져 나왔다(캐나다 연방파).

소설 분야에서는 역사 로맨스가 가장 유행했다.

윌리엄 커비는 고딕 소설 〈황금개 : 퀘벡의 전설 The Golden Dog : A Legend of Quebec〉(1877)에서 뉴프랑스 지방 영주들의 삶을 낭만적으로 묘사했고, 존 리처드슨은 〈캐나다 이야기 Wacousta;or The Prophecy, a Tale of the Canadas〉(1832)에서 오타와의 인디언 추장 폰티액이 이끈 봉기를 다루었다. 이보다 더 독창적인 작품으로는 제임스 드 밀의 풍자적인 가상 여행기 〈구리 실린더에서 찾아낸 이상한 원고 A Strange Manuscript Found in a Copper Cylinder〉(1888)와 로버츠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동물 이야기 〈야생의 동족 The Kindred of the Wild〉(1902) 등이 있다(고딕 소설).

황금개 : 퀘벡의 전설 (The Golden Dog : A Legend of Quebec)
황금개 : 퀘벡의 전설 (The Golden Dog : A Legend of Quebec)
근대(1900~60)

20세기초의 대중시인들은 지방색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관습과 사투리에 대한 W. H. 드러먼드의 〈주민과 그밖의 프랑스계 캐나다 시 The Habitant and Other FrenchCanadian Poems〉(1897), 모호크족과 그들의 의식에 대한 플린 존슨의 〈부싯돌과 깃털 Flint and Feather〉(1912), 북부의 자유와 낭만에 대한 로버트 서비스의 〈개척자의 노래 Songs of a Sourdough〉(1907)를 묘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존 맥레이의 〈플랑드르 전장에서 In Flanders Fields〉(1915)는 아직도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시이다. 감상적이고 애국적인 빅토리아풍의 시에 대한 반동이 서서히 일어나, E.J. 프랫은 바다에 면한 뉴펀들랜드 지방의 생활을 묘사한 서정시 〈뉴펀들랜드 시편 Newfoundland Verse〉(1923)과 이야기체 서사시 〈타이태닉호 The Titanic〉(1935)·〈브레뵈프와 그의 동족들 Brébeuf and His Brethren〉(1940)·〈마지막 스파이크를 향하여 Towards the Last Spike〉(1952) 등의 작품에서 독특한 문체를 만들어냈다.

이 작품들은 정확한 세부묘사에 치중한 점에서 다큐멘터리의 전통과 맥을 같이한다. 프랫의 영향으로 탄생한 또다른 혁신적·실험적 시인인 얼 버니는 비극적인 이야기체 시 〈데이비드 David〉(1942)로 가장 유명하다.

토론토에서 발행된 〈캐나디언 포럼 Canadian Forum〉(1920 창간)과 몬트리올에서 발행된 〈맥길 포트나이틀리 리뷰 McGill Fortnightly Review〉(1925~27)는 '새로운 시'의 발표 무대이자 모더니즘 출현의 장이었다.

A.J.M. 스미스, F.R. 스콧, A.M. 클라인은 바로 이 잡지들과 3인 공동선집 〈새로운 지평 New Provinces〉(1936)을 통해 오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구체적인 이미지, 직설적인 언어, 자유시 형식을 강조한 이 모더니즘 시인들은 땅을 식별하고 이름짓고 소유하는 것이 시인의 임무라고 느꼈다.

클라인은 〈풍경으로서 시인의 초상 Portrait of the Poet as Landscape〉(1948)에서, 시인은 "말로 표현된 적이 거의 없는 세계에서 새로운 일람표를 만들고 이름지으며 찬양하는 현대의 아담"이라고 노래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 인습에 대한 의존, 노스롭 프라이가 〈캐나다 문학사 Literary History of Canada〉(1965) 초판에 붙인 〈맺음말 Conclusion〉에서 '수비대 정신'이라고 한 청교도 의식 등으로 특징지어진 식민지적 정신상태의 유대는 이제 깨어지고 있었다.

프라이(Herman Northrop Frye)
프라이(Herman Northrop Frye)

1930, 1940년대의 시단을 지배한 것은 경제공황, 파시즘의 대두,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강한 반발이었다. 도로시 리브세이는 〈낮과 밤 Day and Night〉(1944)에서 다큐멘터리 양식을 사용해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고발하는 한편, 서정시집 〈이정표 Signpost〉(1932)에서는 육체적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스미스와 문예지 〈프리뷰 Preview〉(1942~45)가 세계주의적·형이상학적인 시를 주창한 데 반해, 어빙 레이턴, 루이스 두덱, 레이먼드 사우스터는 시인들이 사실주의와 북아메리카의 토착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00년부터 역사 로맨스가 향토소설에 밀려 퇴조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 Anne of Green Gables〉(1908)과 그 속편들은 프린스에드워드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온타리오의 도시들과 그곳의 '수비대 정신'은 정계의 모습을 그린 세라 지넷 던컨의 〈제국주의자 The Imperialist〉(1904), 랠프 코너의 〈글렌개리에서 온 사나이 The Man from Glengarry〉(1901), 스티븐 리콕의 풍자소설집 〈한 소읍의 이야기 Sunshine Sketches of a Little Town〉(1912), 베스트셀러가 된 메조 드 라 로셰의 젤나 시리즈(1927~60) 등의 배경이 되었다.

프레리 지역에서는 편협한 소규모 농촌사회가 혹독한 자연과 맞서 싸우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사회적 리얼리즘 소설이 등장했다. 잔인한 아버지에게 속박당한 강인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마사 오스텐소의 〈기러기 Wild Geese〉(1925), 자기 자신과 땅을 지배하기 위해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프레더릭 필립 그로브의 〈습지의 정착민들 Settlers of the Marsh〉(1925)·〈대지의 산물 Fruits of the Earth〉(1933)은 농부들의 용기에 대한 감동적인 증언이다.

1940년대에 출판된 소설에서는 형식과 주제에서 과도기적인 성격이 두드러졌으며, 이는 작품의 주인공에게도 반영되어 대부분 민감하고 불안정한 정서를 지닌 어린이나 예술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 범주에 드는 소설로는 싱클레어 로스의 〈나와 우리집은 As for Me and My House〉(1941), W.O. 미첼의 〈누가 바람을 본 적이 있나요? Who Has Seen the Wind?〉(1947), 노바스코샤의 애너폴리스 계곡을 배경으로 한 어니스트 버클러의 〈산과 계곡 The Mountain and the Valley〉(1952) 등과 같은 초원소설이 있다. 파노라마 같은 작품 〈고독한 두 사람 Two Solitudes〉(1945)과 〈밤을 멈추게 하는 시계 The Watch That Ends the Night〉(1959)에서 휴 매클레넌은 개인과 가정을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캐나다를 영어권과 프랑스어권으로 나누어버린 도덕적·사회적·종교적 갈등을 포착하려고 했다.

실라 왓슨의 수수께끼 같은 신비한 소설 〈이중 갈고리 The Double Hook〉(1959)와 한 가정주부의 직무유기를 다룬 에설 윌슨의 〈늪의 천사 Swamp Angel〉(1954)는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오지를 배경으로 탐색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1960년대 이후

1950년대 이후에는 소설의 이러한 과도성이 그 자체로 소설의 주제가 되거나 아니면 좀더 확신에 찬 형식 속에 녹아들어갔다.

인기를 누린 로버트슨 데이비스의 뎁트퍼드 3부작 〈제5의 사업 Fifth Business〉(1970)·〈맨티코어 The Manticore〉(1972)·〈놀라운 세계 World of Wonders〉(1975)는 융의 패러다임 안에서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온타리오 남서부를 배경으로 한 앨리스 먼로의 〈소녀와 여인들의 생활 Lives of Girls and Women〉(1971), 마거릿 로런스의 마나와카 소설 〈돌로 된 천사 The Stone Angel〉(1964)·〈신의 희롱 A Jest of God〉(1966)·〈예언자들 The Diviners〉(1974)은 제약이 많은 소도시의 인습에 반기를 든 여주인공들을 묘사한 작품이다.

돌로 된 천사(The Stone Angel)
돌로 된 천사(The Stone Angel)

문체가 복잡한 매비스 갤런트의 단편집 〈분명한 사실 Home Truths〉(1981)은 고립된 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환상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렸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매력적인 여인 The Edible Woman〉(1969)·〈부상 Surfacing〉(1972)·〈여사제 Lady Oracle〉(1976)·〈신체의 손상 Bodily Harm〉(1981)·〈하녀 이야기 The Handmaid's Tale〉(1985)에서 신랄한 아이러니를 통해 현대의 도시생활과 성(性)의 정치학을 파헤쳤다.

모디카이 리슐레르는 몬트리올을 무대로 한 소설 〈더디 크래비츠의 수련생활 The Apprenticeship of Duddy Kravitz〉(1959)과 〈세인트 어베인의 기수 St. Urbain's Horseman〉(1971)에서 유대인의 블랙 유머로 현대사회의 위선과 그 실상을 꼬집었고, 레너드 코언은 〈아름다운 패자 Beautiful Losers〉(1966)에서 성인의 자격·관능·창조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다.

1970, 1980년대의 많은 작가들은 사실주의에서 초현실주의·재귀소설·여성해방소설·피카레스크 소설 양식으로 옮겨감으로써 소설의 인습을 의도적으로 파괴했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상상력의 근원으로서 장소 탐구가 여전히 가장 흔한 주제이기는 했지만, 서술형식은 실험적이고 장난기까지 섞여 있다. 잭 호긴스는 〈세계 만들기 The Invention of the World〉(1977)에서 가상의 섬을 지도로 그렸으며, 오드리 토머스는 혁신적인 단편집 〈친엄마 Real Mothers〉(1981)와 장편소설 〈라타키아 Latakia〉(1979)·〈썰물과 밀물 사이의 삶 Intertidal Life〉(1984)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드러냈다.

〈종마 사육사 The Studhorse Man〉(1969)·〈황무지 Badlands〉(1975)에서 로버트 크로치는 초원소설의 사실주의를 변형시켜 자아탐구의 여정을 그린 포스트모더니즘적 패러디를 선보였다. 루디 위브는 〈큰 곰의 유혹 The Temptations of Big Bear〉(1973)과 〈화전민 The Scorched-Wood People〉(1977)에서, 서부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기초로 한 서사적 소설을 창조해냈다.

조이 고가와의 〈아주머니 Obasan〉(1981)는 제2차 세계대전중 일본계 캐나다인들이 억류되었던 사건을 그린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18세기 탐험가 조지 밴쿠버에게 초점을 맞춘 조지 보얼링의 〈불타는 물 Burning Water〉(1980)과 재즈 음악가 버디 볼던의 일대기인 마이클 온다체의 〈학살에서 살아 남다 Coming Through Slaughter〉(1976)는 역사와 자서전을 뒤섞은 재귀법 소설이다.

〈전쟁 The Wars〉(1977)에서 티모시 핀들리의 화자는 편지·신문기사철·사진 등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이 주인공에게 미친 영향을 재현해 보이고 있다.

1960, 1970년대에는 시 작품도 전성기를 누렸다. 이것은 캐나다인들이 미국인들과 다름을 주장하면서 민족주의가 새로이 대두한데다가, 〈캐나디언 리터러처 Canadian Literature〉(1959 창간)·〈티시 Tish〉(1961~69) 같은 문학신문과 소규모 문예지가 등장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애트우드는 1966년 풍자적·함축적인 시들을 모은 〈원형경기 The Circle Game〉를 출판한 데 뒤이어 19세기 작품 〈힘든 오지생활〉의 저자를 소외된 현대인으로 해석한 〈수재나 무디의 일기 Journals of Susanna Moodie〉(1970)를 발표했다. 온다체는 콜라주 〈빌리 더 키드 작품집 The Collected Works of Billy the Kid〉(1970)에서, 또 보얼링은 장시 〈조지, 밴쿠버 George, Vancouver〉(1970)에서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켰다.

대프니 말럿은 〈스티브스턴 Steveston〉(1974)에서 한 도시의 과거를 재구성했으며, 크로치는 〈현장기록 Field Notes〉(1981)에서 대초원이라는 자신의 뿌리를 새로이 발견해냈다. 장소와 역사에 대한 심취는 온타리오 주 벨빌 북부의 시골을 다루거나 서부와 북극지방으로 여행한 체험을 다룬 앨 퍼디의 〈살아 있다는 것 Being Alive〉(1978)에 실린 시에도 스며 있다. 〈겨울 태양 Winter Sun〉(1982)·〈경악 The Dumbfounding〉(1982)의 마거릿 애비슨, 〈시집 Collected Poems〉(1968)의 앤 윌킨슨, 〈아라라트 산 Cry Ararat〉(1967)의 P.K. 페이지, 〈과거로 돌아가는 꿈 Dreaming Backwards〉(1981)의 엘리 맨들, 〈환상의 나무 The Vision Tree〉(1982)의 필리스 웹, 〈입자 던지기 A Throw of Particles〉(1983)의 D.G. 존스는 장소·여행·신화에서 이끌어낸 이미지를 통해 형이상학의 문제, 또는 존재의 부서져버리기 쉬운 입자들과 씨름했다.

특히 초원지방이 상상력의 중심지로 차츰 자리를 굳혔으며, 한편에서는 독자적인 목소리와 체험을 표현하려는 여성들의 욕구가 〈룸 오브 원스 오운 Room of One's Own〉·〈애틀란티스 Atlantis〉 같은 문예지나 〈바른 글모음 Writing Right〉(1982)·〈캐나다 여성작가 단편집 Stories by Canadian Women〉(1984) 등의 선집으로 결실을 맺었다.

캐나다의 영어문학(극과 비평)

시인이나 소설가들과 마찬가지로 캐나다의 극작가들도 국가 기원의 신화를 추구하면서 종종 역사적 사건으로 눈을 돌렸다.

가장 초창기 형태의 극작품인 찰스 메어의 〈추장 티컴시 Tecumseh〉(1886)와 세라 앤 커즌의 〈1812년의 여주인공 로라 시코드 Laura Secord, the Heroine of 1812〉(1887)는 둘 다 1812년의 전쟁을 토대로 한 운문극이다. 1920, 1930년대에는 메릴 데니슨, 그웬 패리스 링우드, 허먼 보던이 비상업적인 소극장의 지원을 받으며 캐나다 극문학을 정착시키기 위해 애썼다. 1950, 1960년대에는 여러 직업극단이 생겨나 극작가들에게 좀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었고, 그결과 존 콜터는 〈리엘 Riel〉(1962)의 주인공으로 메티스 반란을 이끈 루이스 리엘을 내세워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방극단과 실험극단의 수가 늘어나는 데 비례해 혁신적이고 대담한 작품의 공연도 점점 더 잦아졌다.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동성애를 다룬 존 허버트의 〈운명과 인간의 눈 Fortune and Men's Eyes〉(1967), 인디언 매춘부의 이야기인 조지 리가의 〈리타 조의 희열 The Ecstasy of Rita Joe〉(1971), 온타리오 주 남부의 아일랜드 이주민 가족 학살을 다룬 제임스 레니의 도널리 3부작(1976~77) 등이 그 예이다.

집단창작극인 〈농장의 잔치 The Farm Show〉(1976)·〈종이밀 Paper Wheat〉(1978), 릭 살루틴의 〈1837년〉(1976)·〈캐나다 사람들 Les Canadiens〉(1977)에는 모두 향토색이 짙게 배어 있다. 데이비드 프리먼의 〈전율 Creeps〉(1972), 데이비드 프렌치의 〈가출 Leaving Home〉(1977), 데이비드 페너리오의 〈근무중 On the Job〉(1976), 마이클 쿡의 〈머리와 내장과 뼈의 춤 The Head, Guts and Sound Bone Dance〉(1974)은 철저한 사실주의 작품이다. 캐롤 볼트의 〈붉은 에마 Red Emma〉(1974), 살인용의자 리지 보던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인 샤론 폴록의 〈혈연관계 Blood Relations〉(1981), 베티 램버트의 〈제니의 이야기 Jennie's Story〉(1984)는 옛 여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존 그레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명한 전투기 조종사 이야기를 뮤지컬 〈빌리 비숍 전쟁터로 가다 Billy Bishop Goes to War〉(1981)로 만들었다(희곡, 문학비평).

비평가들은 캐나다 문학을 대개 식민지시대의 태동기, 이주민들에 의한 파생기, 민족문학의 개화기라는 3단계로 나눈다.

1920년대에는 묘사와 가치 평가를 담은 개관서가 여러 권 출판되었는데, 그중 아치볼드 맥메칸의 〈캐나다 문학의 원류 Head-waters of Canadian Literature〉(1924)가 대표적이다. 현대 비평계는 주로 시를 대상으로 그 기원, 신화 만들기의 경향, 자연과 공감하는 정도를 분석했다. 1965년 〈캐나다 문학사 Literary History of Canada〉가 출판되면서 캐나다 문학은 진지한 연구분야로 발전했다.

캐나다인의 상상력이 어떻게 해서 정체성을 추구하게 되었는가를 묘사한 프라이의 〈맺음말〉은 애트우드의 〈생존 Survival〉(1972)과 D. G. 존스의 〈바위에 앉은 나비 Butterfly on Rock〉(1970)에 영향을 미쳤다. 프랭크 데비의 논문 〈의역을 뛰어넘어 Surviving the Paraphrase〉(1978, 〈캐나디언 리터러처〉 70호)는 이러한 축소지향의 주제 접근방식이 '수비대 정신'이라든가 희생자라는 인물유형의 우세, 캐나다가 타락과 구원의 과정을 거친 새로운 낙원이라는 환상 같은 반복되는 주제를 끄집어내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구조와 형식의 연구는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존 모스의 〈고립의 유형 Patterns of Isolation〉(1974)과 톰 마셜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땅 Harsh and Lovely Land〉(1979)처럼 그 뒤에 나온 비평서는 대부분 이러한 접근방식을 이어받아 하나의 전통을 그려내려고 했다. 로렌스 리쿠의 〈수직적 인간, 수평적 세계 : 캐나다 프레리 소설에 나타난 인간과 풍경 Vertical Man, Horizontal World;Man and Landscape in Canadian Prairie Fiction〉(1973), W.H. 뉴스의 〈서부의 발언 Articulating West〉(1972), 패트릭 오플래허티의 〈뉴펀들랜드 문학 연구 The Rock Observed : Studies in the Literature of Newfoundland〉(1979)에서는 지역주의 지향을 반영하고 있다.

엘리 맨들이 편집한 평론집 〈캐나다 비평의 흐름 Contexts of Canadian Criticism〉(1971)과 평론지 〈캐나디언 리터러처〉·〈에세이스 온 캐나디언 라이팅 Essays on Canadian Writing〉에서는 좀더 폭넓은 비평들을 찾아볼 수 있다.

캐나다의 프랑스어 문학

자크 카르티에가 1535년 2번째 북아메리카 탐험 때 처음 발견한 세인트로렌스 강 계곡은 17, 18세기에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1763년 뉴프랑스가 영국에 양도되었을 당시 6만 명이 넘는 현지의 로마 가톨릭교도들은 이미 여러 프랑스 방언이 뒤섞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프랑스 본토에서는 그때까지 표준 프랑스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프랑스 문학). 뉴프랑스가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된 뒤 프랑스에서 오는 이주는 사실상 끊겼지만, 프랑스어를 쓰는 주민 수는 계속 늘어났다. 캐나다의 프랑스어 사용자 중 5/6 정도는 퀘벡 지방에 살고 있었고, 이들은 스스로를 프랑스계 퀘벡인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문학은 그들 공통된 역사를 기록하고 독특한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프랑스 통치시대의 캐나다 프랑스어 문학

이 2세기 동안 뉴프랑스에서 인쇄되어 나온 프랑스어 글은 단 한 페이지도 없었다. 이 식민지에 인쇄기가 들어온 것은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된 뒤였다. 뉴프랑스에서 씌어졌거나 뉴프랑스를 다룬 실질적인 식민지문학은 프랑스에서 인쇄되어 유럽인들에게 읽혔다. 발견이나 탐험 기록, 공적인 보고문과 서신, 여행자의 인상기, 선교사와 종교단체의 연보, 식민지 역사 등이 그러한 부류에 속했다. 이러한 원고나 인쇄된 출판물 외에 민요·민담·전설 같은 풍부한 구전문학도 있었다. 프랑스 통치기부터 전해내려오는 구전 전통과 문학작품의 풍부한 유산을 되찾기 위해 학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영국의 정복 이후 캐나다 프랑스어 문학

7년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뒤 한동안 지적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영국의 통치가 시작된 뒤 처음 70년간은 프랑스어를 쓰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언론이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2개국어로 발행된 〈퀘벡 가제트 Quebec Gazette〉(1764)와 그뒤에 나온 프랑스어 신문 〈카나디앵 Le Canadien〉(1806)·〈미네르브 La Minerve〉(1826)는 대중의 의사소통, 유럽·미국과의 접촉, 캐나다 내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을 위한 유일한 매체였다.

미네르브(La Minerve)
미네르브(La Minerve)

이 신문들의 지면에는 프랑스계 이주민인 조제프 케넬과 조제프 메르메의 시와 노래를 비롯해 일화·시·수필·설교문 같은 단편적인 형태로 문학이 다시 싹트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캐나다 프랑스어 문학계 최초의 중요한 작가인 케넬은 아마추어 배우들을 위한 극도 썼으며, 그의 희극 〈바보와 시골뜨기 애인 Colas et Colinette〉(1788)은 1968년에 만들어졌다.

캐나다 프랑스어 초기문학

캐나다의 프랑스어 문학은 1830년대에 처음 출판되기 시작했다. 1830년대에 첫 시집이, 1837년에 첫 소설이 선을 보인 직후 희극과 비극도 처음 출판되었다. 이처럼 각 시기가 일치한 것은 초등·중등 교육이 점차 체계화된데다가, 1855년 프랑스와 무역관계가 재개되기 이전에도 프랑스의 책과 정기간행물을 쉽게 구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1837년 봉기가 실패로 끝나기 이전 및 이후에 책임 있는 정부를 요구하는 국민운동이 일어난 사실에서 분명히 나타나듯이 국민의 민족의식이 점차 강해졌기 때문이다. 당시의 주요출판물인 프랑수아 그자비에 가르노의 〈캐나다 역사 Histoire du Canada〉(1845~48)는 퀘벡 시의 서적상인 옥타브 크레마지의 애국시처럼 새로운 정신을 구현한 것이었다.

퀘벡 운동

1840년의 연방법에 따라 캐나다의 순회 상원과 하원이 1859년 퀘벡 시로 옮겨오고, 의회에 딸린 서기관·공무원·언론인들도 함께 들어왔다. 신설된 라발대학교의 소재지이기도 한 이 수도는 '퀘벡 문예운동' 또는 '1860년 운동'으로 알려진 캐나다 최초의 프랑스어 문인집단에게 이상적인 곳이었다. 10여 명의 이 집단 구성원들은 프랑스어권 캐나다가 존속해야 한다는 애국적·보수적 및 로마 가톨릭적 신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변인격인 아베 앙리 레몽 카스그랭은 대혁명 이후 프랑스가 무신론과 물질만능주의로 빠져버린 지금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북아메리카에서 영적인 사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구세주사상을 고취시켰다. 이들에게는 몇몇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들만이 숭배와 모방의 대상이었다.

영국 통치기를 다룬 필리프 오베르 드 가스페의 역사 로맨스 〈옛날의 캐나다 사람들 Les Anciens Canadiens〉(1863), 앙투안 게랭 라주아의 식민지 소설 〈장 리바르 Jean Rivard〉(1862~64), 팜퓨 르메의 〈복수 Les Vengeances〉(1875)와 루이 프레셰트의 〈어느 민족의 전설 La Légende d'un peuple〉(1887)의 수많은 시집은 당대 작가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교훈을 주는 주제에 몰두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좀더 독창적인 작품들도 있었다.

외도르 에방튀렐의 〈처음 선보이는 시 Premières poésies〉(1878)는 인습적인 이미지를 깨뜨린 작품이며, 퀘벡 최초의 소설가 로르 코낭(본명은 마리 루이즈 텔리시테 앙제르)은 매우 정교한 심리소설 〈앙젤린 드 몽브룅 Angéline de Montbrun〉(1881~82)을 썼다.

몬트리올 학파

19세기말에는 몬트리올이 이 지방의 상업 중심지가 되었고, 1895년 장 샤르본노와 루비니 드 몽티니가 이곳에서 몬트리올 문학파를 결성함으로써 차세대 문예운동이 시작되었다. 60여 명의 회원이 매주 모임을 갖고 임원까지 선출했던 이 단체는 중간에 공백기가 있기는 했지만 거의 40년간 이어졌다. 회원들은 시를 주종으로 하여 폭넓은 작품을 출판했으며, 1898~99년에 4차례 대규모 공공집회를 열었고, 1900, 1925년에 공동작품집을 펴냈다.

그들의 문학 원칙은 절충주의였지만, 프랑스와 벨기에의 고답파·상징주의 운동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몬트리올 학파는 프랑스어권 캐나다 문학사상 최초로 프랑스의 동시대 시인들과 견줄 만한 뛰어난 시인을 배출했다. 천재 시인 에밀 넬리강은 모든 작품을 10대(1896~99)에 쓰고 그뒤 정신이상이 되었다. 그의 정교한 소네트와 론델은 비평가 루이 당탱(본명은 외젠 시어즈)에 의해 1903년에 출판되었다.

20세기의 첫 10년 동안 몬트리올 학파에서는 심미주의자들과 지방주의자들이라는 2개의 주요집단이 나타났다(→ 지방주의). 르네 쇼팽, 마르셀 뒤가, 폴 모랭, 로베르 드 로케브륀 같은 심미주의자들은 파리 유학파로서 당대의 프랑스 문학 및 문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들은 1918년 〈니고그 Le Nigog〉라는 잡지를 창간했으나 곧 폐간되었고, 늘 소수파에 머무른 그들은 종종 호사가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30년간 주류를 이룬 사람들은 공잘브 데졸니에르, 알베르 페르랑, 샤를 질, 알프레드 데로셰르, 클로드 앙리 그리뇽, 블랑슈 라몽타뉴 보르가르 같은 지방주의자들이었다.

지역적인 주제와 지방어에 대한 그들의 선호는 〈테루아르 Le Terroir〉(1909)라는 기관지에 잘 나타나 있다. 비평가 아베 카미유 루아가 부추긴 이러한 편향성은 당시 앙리 부라사와 아베 리오넬 그룰이 주창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민족주의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방주의자들은 퀘벡 사회가 도시화·산업화하고 있던 시점에서 전원적·농업적 주제를 앞세우는 역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프랑스 소설 〈마리아 샤프데랜 Maria Chapdelaine〉(1914)은 마지못해 인정하면서도, 시골생활을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그린 퀘벡의 작가 로돌프 지라르의 〈마리 칼뤼메 Marie Calumet〉(1904)와 알베르 라베르지의 〈쓴 빵 La Scouine〉(1918)에는 비난을 퍼부었다. 미래의 문예사조를 예견한 장 오베르 로랑제르(〈Les Atmosphères〉, 1920) 같은 시인은 무시당했다(→ 유미주의).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 교육을 받은 도시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지적생활은 눈에 띄게 확대되었지만 이 추세는 1905~36년 퀘벡 주에서 집권한 자유당에 의해 조심스럽게 지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시기의 캐나다 프랑스어 문학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캐나다의 경제 침체, 퀘벡의 사회적·경제적 발전, 유럽의 정치적 격변 등으로 퀘벡의 지방주의 문학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소설 부문에서는 장 샤를 아르베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공격한 〈삼베 깃발 Les Demi-Civilisés〉(1934)을 내놓았다. 3년 뒤 펠릭스 앙투안 사바르는 〈강의 우두머리 메노 Menaud, maître-draveur〉에서 영국계 미국인들이 퀘벡의 천연자원을 차지한 현실을 서정적인 언어로 한탄했고, 1938년 랭게는 〈30에이커 Trente arpents〉에서 퀘벡 농촌경제의 쇠퇴과정을 추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1939~45)을 거친 뒤 캐나다의 프랑스어 소설은 철저하게 도시적으로 변했다. 가브리엘 루아는 몬트리올의 노동자 거주지역을 묘사한 〈납피리 Bonheur d'occasion〉(1945)로 페미나상을 받았고, 로제르 르믈랭의 〈플루프 집안 Les Plouffe〉(1948)은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사회사실주의).

그러나 모든 소설가가 사회적 리얼리즘에 끌린 것은 아니었다.

로베르 샤르본노, 앙드레 지루, 로베르 엘리 같은 몇몇 작가는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받아 1인칭 내성소설(內省小說)을 썼다. 그밖에 〈불청객 Le Survenant〉(1945)·〈마리 디다스 Marie-Didace〉(1947)를 쓴 제르맹 게브르몽 등은 계속해서 농촌사회를 고찰했는데, 시각은 좀더 객관성을 띠었다. 가장 많은 작품을 써낸 소설가 중 한 사람인 이브 테리오는 〈아가국 Agaguk〉(1958)·〈아시니 Ashini〉(1960)에서 퀘벡의 에스키모와 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찾아냈다.

엑토르 드 생 드니 가르노의 형이상학적인 무운시 〈허공에서의 경기 Regards et jeux dans l'espace〉(1937)는 시문학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40, 1950년대에는 가르노, 알랭 그랑부아, 안 에베르, 리나 라스니에 등 4명의 시인이 차례로 시단을 지배했다.

이 네 사람은 서로 다른 기법과 이미지를 사용하면서도 고독·소외·좌절·절망을 표현한 점에서는 같았다. 모두가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중에서도 그랑부아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 이로써 문학사상 처음으로 프랑스 시인이 아니라 퀘벡의 시인들이 다음 세대의 모델이 되어 '엑자곤'(Hexagone) 시인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문학단체 겸 출판사인 렉자곤사(1953)는 향후 15년간 퀘벡 시단을 지배했다.

아름다운 활자체로 된 시집을 수십 권 출판하고, 〈리베르테 Liberté〉(1959) 같은 문예지를 창간하는 한편 퀘벡과 전세계 작가들이 모이는 작가회의를 해마다 개최했다. 이 단체를 이끈 가스통 미롱, 로랑 지귀에르, 질 에노, 페르낭 웰레트, 장 귀 필롱, 미셸 방 델 등은 시인 겸 이론가들로서, 세련된 시뿐만 아니라 시를 해석하는 평론도 썼다.

퀘벡의 연극계도 때를 같이해 현대적인 형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몬트리올의 생 로랑 극단(1937~52)은 전문적인 프랑스 현대극 공연에 대한 취향을 일구었다. 극작가 그라시앙 젤리나스와 마르셀 뒤베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가부장적인 국민연합 정부의 통제를 받는 사회에서 겪는 삶의 문제를 구어체로 쓰기 시작했다. 상설극장과 직업극단이 수없이 생겨났는데, 그 소속인원들은 부업으로 캐나다 라디오 방송과 캐나다 국립영화제작소 일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퀘벡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사회가 전후세계보다 낙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48년 화가 폴 에밀 보르뒤아는 과거를 부정하는 혁명적 선언문을 발표했고, 1950년에는 피에르 엘리오트 트뤼도가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사회·정치평론지인 〈시테 리브르 Cité libre〉를 창간했다. '조용한 혁명'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조용한 혁명

1960년대에 퀘벡 사회는 역사상 최대 격변기를 거쳤다.

새로 들어선 자유당 정부는 이 지방의 근대화에 착수했고, 교육제도를 정비했으며, 강력한 문화부를 만들었다. 여러 분리주의 단체는 퀘벡 독립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퀘벡당으로 한데 통합되어 1976년에는 퀘벡 주의 집권당이 되었다. 자칭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라는 일단의 작가들은 잡지(1963~68)를 창간하고 출판사를 세워 퀘벡의 탈종교화·사회주의화·독립을 요구하는 자신들의 주장을 표현했다. 지식인들은 점차 목소리를 높였고, 문학작품의 생산은 10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다.

시에서는 폴 마리 라푸앙트의 〈시선집 Choix de poèmes : arbres〉(1960)과 가티앵 라푸앙트의 〈생 로랑에 바치는 송시 Ode au Saint-Laurent〉(1963)에서 퀘벡의 영토가 재발견되었다.

폴 샹베를랑의 〈퀘벡의 땅 Terre Québec〉(1964)은 혁명적인 언어를 채택해 민족주의를 표현했으며, 전위잡지인 〈바르 뒤 주르 La Barre du Jour〉(1965 창간)와 〈레 제르브 루주 Les Herbes Rouges〉(1968 창간)에서는 개인적인 반항이 우세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심은 지귀에르의 〈발언의 시대 L'Âge de la parole〉(1965)와 이브 프레퐁텐의 〈말 없는 나라 Pays sans parole〉(1967) 같은 작품에서처럼 제목으로 직접 나타나기도 했다.

퀘벡의 정체성 추구에 대한 시적 기록인 미롱의 〈마모된 인간 L'Homme rapaillé〉(1970)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 모음이라 할 수 있다. 미셸 라롱드의 냉소적인 시 〈정직하게 말하라 Speak White〉(1970)도 그에 못지않게 영향력 있는 작품이다. 1970년대의 시는 특정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좀더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라울 뒤게와 클로드 고부로의 작품은 미국의 반문화가 지닌 관심사를 주제로 채택했고, 니콜 브로사르와 프랑스 테오레는 프랑스 여권주의자들의 글에서 다루어진 관심사를 취급하면서 자주 두드러지게 형식주의로 흘렀다. 발표되는 시들이 점점 난해해지자 일반대중은 질레스 비뇨나 폴린 줄리앙 같은 대중가수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대개 정치적 의미를 함축한 '퀘벡 노래'가 대중의 시가 되었다.

가장 널리 읽힌 장르는 소설이었다.

소설작품들은 흔히 성(性)과 연관된 급진적 주제와 1960년대의 프랑스 누보 로망을 일부 모방한 비전통적 구조를 통해 '조용한 혁명'이 가져온 대변혁을 반영했다. 퀘벡의 '신소설'은 자크 고드부의 〈수족관 L'Aquarium〉(1962)에서 비롯되어, 〈그 다음 일화 Prochain épisode〉(1965)를 필두로 한 위베르 아캥의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소설에서 절정에 달했다.

같은 해에 나온 마리 클레르 블레의 메디시스상 수상작 〈에마뉘엘의 생애의 한 계절 Une Saison dans la vie d'Emmanuel〉(1965)는 퀘벡의 농촌생활을 통렬하게 보여준 작품이며, 고드부의 〈안녕, 갈라르노! Salut, Galarneau!〉(1967)는 퀘벡의 미국화과정을 그렸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제라르 베세트는 〈비밀 Le Libraire〉(1960)의 냉소적 사실주의에서 〈배양 L'Incubation〉(1965)의 내적 대화형식을 거쳐 〈유인원 Les Anthropoïdes〉(1977)의 상징적 서술로 옮겨갔다.

시인 안 에베르는 소설 〈카무라스카 Kamouraska〉(1970)로 성공을 거둔 뒤 〈바람의 그림자 속에서 Les Fous de Bassan〉(1982)로 페미나상을 받았다. 레장 뒤샤름은 〈삼키려다 되려 삼켜진 사람 L'Avalée des avalés〉(1966)을 비롯한 소설에서 핵(核)시대에 젊은이들이 느끼는 환멸을 그렸다. 1970년대에 인기를 누린 그밖의 소설가로는 퀘벡의 사회제도를 조롱한 자크 페롱, 보셰망 일가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발표한 작가 겸 출판업자 빅토르 레비 벨리외, 〈예, 각하! La Guerre, yes sir!〉(1968)에서 두 문화의 병존을 비웃은 로슈 카리에르, 〈방탕한 여자 La Sagouine〉(1971)에서 영원히 기억에 남는 아카디아인 가정부를 창조해냈으며, 〈귀향 Pélagie-la-charrette〉(1979)으로 공쿠르상을 받은 앙투안 마예 등이 있다.

그뒤 이브 보샤망의 〈수코양이 Le Matou〉(1981)와 이와 비슷한 류의 소설들이 성공을 거둔 것은 '행위소설'이 다시 사랑받게 되었음을 뜻한다.

현대에 들어와 퀘벡의 연극무대와 극작계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해마다 수십 편의 창작극이 무대에 올려졌다. 이 '새로운 퀘벡 극'은 미셸 트렘블레의 〈의자매 Les Belles-Soeurs〉가 성공을 거둔 1968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극의 특징은 즉흥창작과 집단창작, 무산계급의 언어(장 클로드 제르맹과 장 바르보의 희곡에 보이는 'le joual'), 패러디(로베르 귀릭의 〈퀘벡의 왕자 햄릿 Hamlet, prince du Québec〉, 1968), 관객의 참여(프랑수아즈 로랑제르의 〈이중 게임 Duble jeu〉, 1969) 같은 실험적 접근방식이다. 1970년대의 가장 중요한 극작가는 흔히 동성애로 상징되는 소외의 여러 측면을 제시한 미셸 트렘블레였다. 현대의 퀘벡 연극계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발전은 여성극단의 출현이었다.

'여성실험극단' 같은 이들 단체는 드니즈 부셰르의 〈요정들은 목이 마르다 Les Fées ont soif〉(1978)나 조베트 마르셰소의 〈지겨운 여자들의 이야기 La Saga des poules mouillées〉(1981) 등의 문제작을 공연했다.

1960년 이후 출판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이 점차 늘어나자 퀘벡에서의 출판활동도 활발해져, 연간 500편 이상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수백 권의 작품선집·도서목록·전기·비평서가 등장했고, 캐나다의 프랑스어 문학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철저하게 기록·분석되는 문학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장 에티에르 블레, 앙드레 브로슈, 질 마르코트, 피에르 네프뵈 같은 비평가들은 존 아르, 로랑멜로, 폴 위진스키 같은 문학사가들과 함께 전통적인 문학 장르를 연구하는 한편 공상과학소설·탐정소설·연속만화 같은 새로운 형태의 준(準)문학작품도 정당한 연구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