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제례악

문묘제례악

[ 文廟祭禮樂 ]

요약 문묘의 제례의식 때 연주된 음악. 일명 문묘악(文廟樂)·석전제악(釋奠祭樂).

현재 문묘제례악은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과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제례악으로 연주되고 있으므로, 주목받는 세계 음악문화유산의 하나이다.

문묘제례악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116년(예종 11) 하례사(賀禮使) 왕자지(王字之)와 문공미(文公美)가 대성아악(大晟雅樂)을 가지고 귀국한 후 대성아악이 원구(圜丘)·사직(社稷)·태묘(太廟)·선농(先農)·선잠(先蠶)·문선왕묘(文宣王廟) 등의 제례의식 때 연주됐을 때이다.

조선왕조에 이르러 세종(1418~1450) 때 박연(朴堧)은 송나라 주희(朱熹)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와 원나라 임우(林宇)의 『석전악보』(釋奠樂譜)와 『지정조격』(至正條格)에 의거하여 정비됐다. 이 문묘제례악은 『세종실록』 권137 아악보에 전하고, 세종조의 문묘제례악은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권2의 「시용아부제악」(時用雅部祭樂) 및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아부악장」(雅部樂章)에 전한다. 그 문묘제례악이 현재까지 국립국악원에 전승되고 있다.

문묘제례악은 종묘제례악처럼 여러 악기로 연주되는 기악(器樂), 노래로 불리는 악장(樂長), 그리고 의식무용인 일무(佾舞), 이상 셋으로 구성됐다. 이 세 가지의 악가무는 따로 따로 연주되는 것이 아니고, 제례의식의 절차에 따라 함께 연주된다.

기악으로 연주되는 악곡은 "응안지악"(凝安之樂)·"명안지악"(明安之樂)·"성안지악"(成安之樂)·"서안지악"(舒安之樂)·"오안지악"(娛安之樂)이다. 일무는 문무(文舞)와 무무이다. 이러한 기악곡은 문묘의 댓돌 위에서 연주하는 등가악(登歌樂)과 댓돌 아래 뜰에서 연주하는 헌가악(軒架樂)으로 구분된다. 일무는 헌가에서 연행된다.

현행 문묘제례악의 등가와 헌가(『한국악기대관』)

현행 문묘제례악의 등가와 헌가(『한국악기대관』)

문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기는 팔음(八音)으로 된 악기로 편성된다. 즉 금부(金部)의 편종(編鍾)·특종(特鍾). 석부(石部)의 편경(編磬)·특경(特磬), 사부(絲部)의 금(琴)·슬(瑟), 죽부(竹部)의 소(簫)·지(篪)·약(籥)·적(篴), 포부(匏部)의 생황(笙簧), 토부(土部)의 훈(塤)·부(缶), 혁부(革部)의 절고(節鼓)·진고(晉鼓)·노고(路鼓)·노도(路鼗), 그리고 목부(木部)의 축(柷)·어(敔)·박(拍)으로 편성됐다. 등가의 악기는 편종·편경·특종·특경·금·슬·소·훈·지·약·적·절고·부·축·어·박이고, 헌가의 악기는 편종·편경·훈·지·약·적·노고·노도·진고·부·축·어·박이다.

현행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의 절차와 악곡 및 일무 일람표

현행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의 절차와 악곡 및 일무 일람표
절차 악곡명 주악 위치 일무(佾舞)

1

영신(迎神)

응안지악(凝安之樂)

헌가(軒架)

문무(文舞)

2

전폐(奠幣)

명안지악(明安之樂)

등가(登歌)

문무

3

초헌(初獻)

성안지악(成安之樂)

등가

문무

4

공악(空樂)

서안지악(舒安之樂)

헌가

문무

5

아헌(亞獻)

성안지악

헌가

무무(武舞)

6

종헌(終獻)

성안지악

헌가

무무

7

철변두(徹籩豆)

오안지악(娛安之樂)

등가

무무

8

송신(送神)

응안지악

헌가

-

9

망료(望燎)

응안지악

헌가

-

한 악곡은 2분음표 네 개의 음을 한 소절로 한 여덟 소절로 이루어졌다. 매 소절 끝에 북을 두 번 쳐서 한 소절의 끝을 알린다. 가락은 7음음계로 구성됐고, 음역(音域)은 12율 4청성 곧 16반음으로 이루어졌다. 가사 붙이는 법은 일자일음식(一字一音式, syllabic style)으로 됐다.

집사악사(執事樂師) 1명은 제복(祭服)을 입는다. 집박악사(執拍樂師) 2명은 모라복두(冒羅幞頭)를 쓰고, 청삼(靑衫)에 야자대(也字帶)를 띠고, 목화(木靴)를 신는다. 도창악사(導唱樂師)와 차비악사(差備樂師)는 홍주의(紅紬衣) 위에 남사대(藍絲帶)를 띠고, 목화를 착용한다. 일제강점기 문묘제례악은 종묘제례악과 함께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 의해서 전승됐다.

일제강점기 초기 문묘제례악은 1년에 두 차례(양력 4월 15일과 9월 15일) 연주됐다. 집사아악사(執事雅樂師) 1명, 집박아악사(執拍雅樂師) 2명, 차비아악수(差備雅樂手) 33명, 일무아악수(佾舞雅樂手) 36명, 이상 총 72명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의 인원은 급격히 감원됐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2.818~21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238~39, 552~53쪽

관련이미지

석전대제 / 등가

석전대제 / 등가 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석전제 문묘제례악 중 등가 연주.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어

문묘악(文廟樂), 석전악(釋奠樂), 석전제악(釋奠祭樂), 유교음악(儒敎音樂),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 제례악(祭禮樂), 경모궁제례악(景慕宮祭禮樂) , 의식음악(儀式音樂) , 제악(祭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