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리 유적

미사리 유적

[ 河南 渼沙里 遺蹟 ]

지역 하남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舊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미사리)에 위치한 마을유적으로 1960년 김원룡 선생에 의해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학계에 처음 보고되었으며, 1980년 4개 대학 연합팀에 의한 긴급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住居址〕가 처음 조사되었다. 숭실대학교박물관 주관으로 1987년에서 1992년까지 3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집자리 37기, 구덩유구〔竪穴遺構〕 34기, 지상가옥(地上家屋) 1기, 도랑〔溝〕1기, 목책시설(木柵施設) 1기, 기타 용도를 알 수 없는 유구 3기 등이 조사되었다. 유적이 위치하고 있는 미사리는 한강 중류에 위치한 남북 4㎞, 동서 1.5㎞가량 되는 럭비볼 모양의 하중도(河中島)에 있는데, 유적은 해발고도 20m 내외의 충적대지상에 분포한다. 유적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백제시대에 이르는 층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청동기시대 문화층은 A지구 Ⅷ층에 해당된다.

집자리는 시기에 따라 크게 덧띠새김무늬토기〔刻目突帶文土器〕 단계와 흔암리식토기(欣岩里式土器) 단계로 구분되며, 흔암리식토기 단계는 세 시기로 세분된다. 덧띠새김무늬토기가 출토된 집자리는 최근 ‘미사리식집자리’로 불리는데, 평면 형태가 방형으로 바닥에는 편평한 돌을 깔고 주위에 돌을 두른〔石床圍石式〕 화덕자리〔爐址〕를 특징으로 한다. 4기의 집자리가 한 단위를 이루면서 조사되었는데, 모두 화재에 의해 폐기되었다. 집자리에서 출토된 유물은 덧띠새김문무늬토기를 비롯하여 둥근 바닥의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 삼각만입돌화살촉〔三角灣入鏃〕, 물고기모양〔魚形〕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등이 있다.

흔암리식토기 단계의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으로 내부에 구덩식〔竪穴式〕 화덕자리가 설치되어 있다. 이 단계에는 장축을 한강의 흐름방향과 동일하게 두었으며, 가족 구성원의 증가에 따라 장축방향으로 가옥을 증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 내부에서 출토된 토기는 구멍무늬〔孔列文〕와 짧은빗금무늬〔短斜線文〕가 함께 장식된 흔암리식토기와 동체 상부의 점토 접합흔에 짧은빗금무늬를 새긴 퇴화된 흔암리식토기, 그리고 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등이 있는데, 이들 토기가 출토된 집자리간에는 시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항아리모양토기〔壺形土器〕와 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 흑색 내지 갈색의 간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는 홈자루간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물고기모양〔魚形〕및 긴네모모양〔長舟形〕 반달돌칼〔半月形石刀〕, 간돌화살촉〔磨製石鏃〕, 양날도끼〔兩刃石斧〕, 돌끌〔石鑿〕, 갈판〔耉石〕, 그물추〔漁網錘〕, 가락바퀴〔紡錘車〕,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으며, 기타 곱은옥〔曲玉〕과 대롱옥〔管玉〕 등의 치레걸이〔裝身貝〕가 출토되었다.

구덩유구는 대부분 흔암리식토기 단계의 것으로 보이는데, 길이가 100㎝ 내외의 크기로 원형, 타원형, 장방형, 방형의 형태이다. 가옥에 부속된 저장시설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외에도 지상가옥과 목책시설이 조사되었는데, 대형의 집자리가 조사된 고려대 34호 집자리 부근에 분포하고 있어 가장 위계가 높았던 가옥군에 부속된 시설임을 알 수 있다.

덧띠새김무늬토기 단계의 집자리와 흔암리식토기 단계의 집자리의 선후관계에 대해서는 조사자 간에 의견 차이가 있으나, 최근 남강댐 수몰지구 내의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에서 미사리식집자리가 조사되면서 덧띠새김무늬토기 단계를 보다 이르게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더욱이 미사리 유적에서 조사된 덧띠새김무늬토기 출토 집자리를 청동기시대 조기(早期) 단계까지 소급시키는 견해도 있다. 사적. (송만영)

참고문헌

  • 미사리 1∼5(미사리선사유적발굴조사단·경기도공영개발사업단, 1994년)
  • 미사리유적의 주거양상과 변천(최종택, 마을의 고고학, 제18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요지,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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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미사리 유적

하남 미사리 유적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