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암리식토기

흔암리식토기

[ 欣岩里式土器 ]

진주 어은 1지구 75호 집자리 출토 흔암리식토기

진주 어은 1지구 75호 집자리 출토 흔암리식토기

가락동식토기(可樂同式土器), 역삼동식토기(驛三洞式土器), 미사리식토기(渼沙里式土器) 등과 함께 청동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의 한 형식이다. 전형적인 흔암리식토기(欣岩里式土器)는 역삼동식토기의 구멍무늬〔孔列文〕와 가락동식토기의 겹아가리〔二重口緣〕 또는 짧은빗금무늬〔短斜線文〕가 하나의 개체에 복합적으로 새겨진 것을 말한다.

문양으로 구멍무늬+겹아가리를 비롯하여 구멍무늬+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 구멍무늬+짧은빗금무늬, 구멍무늬+골아가리무늬〔口脣刻目文〕+짧은빗금무늬, 구멍무늬+골아가리무늬+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 등이 확인된다. 일부 토기에는 짧은빗금무늬 대신에 ‘X’자모양이나 톱니무늬〔鋸齒文〕 등이 새겨지는 경우도 있으며, 구멍무늬 역시 구멍이 완전히 뚫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突瘤文〕이 모두 존재한다. 이들 문양요소가 새겨지는 토기의 형태는 대부분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이다.

흔암리식토기는 역삼동식토기와 함께 거의 전국적인 분포현상을 보이지만, 가락동유형의 지역색이 강한 충청도 동부의 금강유역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중요 유적으로는 여주 흔암리, 하남 미사리, 속초 조양동, 강릉 방내리, 천안 백석동, 보령 관산리, 남원 고죽동, 산청 사월리, 경주 월산리, 제주도 상모리 유적 등이 있다.

흔암리식토기가 출토되는 집자리〔住居址〕는 대부분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 평면에 무시설식(無施設式) 화덕자리〔爐址〕와 저장구덩이〔貯藏孔〕가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서 흔암리식토기와 주로 공반되는 유물로는 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무늬토기, 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 등의 토기류가 있다. 석기는 피홈〔血溝〕이 있는 홈자루식간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을 비롯하여 삼각만입돌화살촉〔三角灣入鏃〕, 이단슴베돌화살촉〔二段莖式石鏃〕,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도끼〔石斧〕 등 각종 석기류가 확인된다.

흔암리식토기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서북지방의 팽이모양토기〔角形土器〕와 동북지방의 구멍무늬토기가 한강유역에서 결합하여 형성된 것으로 이해하는 한강유역 발생설이 통설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연구성과에 따라 압록강·청천강 유역의 겹아가리토기 요소와 두만강 유역의 구멍무늬토기 요소가 원산만 유역에서 접촉하여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연대에 대해서는 가락동식토기나 역삼동식토기보다 늦은 청동기시대 전기의 후반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였으나, 최근에는 전기의 이른 시기부터 등장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절대연대는 아직 측정자료가 많지는 않으나, 방사성탄소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13~9세기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난다.(이형원)

흔암리식토기(1~3 : 조양동, 4 : 방내리, 5~6 : 미사리)

흔암리식토기(1~3 : 조양동, 4 : 방내리, 5~6 : 미사리)

참고문헌

  • 남한지방 무문토기문화의 전개와 공열토기문화의 위치(이청규, 한국상고사학보 제1호, 한국상고사학회, 1988년)
  • 한국 청동기시대 전기 중부지역 무문토기 편년 연구(이형원,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