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덕자리

화덕자리

무시설식 화덕자리(경주 황성동Ⅱ 라지구)

무시설식 화덕자리(경주 황성동Ⅱ 라지구)

불을 이용하여 난방, 취사, 조명, 제습 등의 기능을 하는 화덕시설을 노(爐)라고 하며 화덕자리〔爐址〕는 이러한 기능이 중지된 상태의 터를 말한다. 화덕시설은 크게 내부화덕, 외부화덕, 야외화덕, 이동화덕으로 나눌 수 있다. 내부화덕은 집자리〔住居址〕 내부에 설치되는 것으로 자연환경이나 사회구조 등에 따라 다양한 형식이 나타난다. 외부화덕은 화덕시설이 집자리 벽 밖에 설치되는 것이다.

이는 취사공간과 생활공간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집자리 내부에는 조명도구를 본격적으로 채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야외화덕은 집자리와 분리되어 따로 떨어져 만들어지는 것으로, 내부화덕과 같이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이동화덕은 화로와 같이 이동이 가능한 것을 말하며, 토제(土製), 철제(鐵製), 동제(銅製) 등으로 나누어진다.

구덩식 화덕자리(울산 사연리)

구덩식 화덕자리(울산 사연리)

화덕시설은 인류가 불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에서부터 확인된다. 신석기시대에 정착생활로 인해 집자리가 축조되기 시작하면서 화덕시설이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신석기시대에는 집자리 내부에 설치된 것 이외에 야외화덕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주로 집석(集石)의 형태를 띠고 있다.

청동기시대는 대규모의 취락이 형성되고 집자리의 구조도 다양화되는 시기로 화덕시설들도 다양하게 집자리 안·밖으로 만들어졌다. 내부화덕과 야외화덕(야외불뗀자리)은 위치는 달라도 사용하는 형태와 기능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 내부에 설치되는 것은 가족단위의 소규모공동체가 이용하는 것으로 주거생활에 필요한 취사(炊事), 난방(煖房), 조명(照明), 제습(除濕) 등의 기능을 하였으며, 외부에 설치된 야외화덕은 마을 공동체가 이용하는 것으로 축제, 제사, 의례 등의 마을 공동행사에 필요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돌깐돌두름식 화덕자리(진주 남강댐 수몰지구)

돌깐돌두름식 화덕자리(진주 남강댐 수몰지구)

돌두름식 화덕자리(충주 조동리 11호(上), 7호(下))

돌두름식 화덕자리(충주 조동리 11호(上), 7호(下))

내부화덕의 형태는 구덩식〔竪穴式〕, 돌두름식〔圍石式〕, 무시설식(無施設式), 돌깐돌두름식〔石床圍石式〕, 부석식(敷石式), 터널식 등으로 나누어진다. 구덩식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형태로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고 바닥에 구덩을 파서 사용한 것을 말하며, 일부는 점토를 이용하여 대(帶)나 단(段)을 만든 것도 있다. 돌두름식은 강돌〔川石〕 또는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원형이나 방형으로 돌려놓은 형식을 말한다.

규모는 대부분 지름이 30~40㎝ 정도이나 100㎝인 것도 있다. 형태나 사용흔으로 볼 때 취사나 난방이 주 기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시설식은 특별한 시설이나 구덩시설없이 바닥에 바로 사용한 형태이다. 돌깐돌두름식은 바닥에 방형이나 장방형으로 판돌을 깔고 그 주위를 돌로 돌려놓은 형태를 말한다. 바닥의 판돌재는 화강암을 쓰고, 주변을 두른 석재는 강돌을 사용함으로서 화로와 같은 역할을 하여 난방효과를 극대화하였다.

부석식은 바닥에 지름 100㎝ 정도의 원형 또는 타원형의 수혈을 파고 그 속에 강돌을 채우고 점토를 이용하여 틈새를 메워 그 주위로 장방형의 돌을 세워 만들었다. 터널식은 일종의 온돌시설로 노시설의 범주에 들어갈지 의문이지만 취사와 난방을 가장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형태라 생각된다. 이런 형태는 삼각형덧띠토기 시기의 유적인 경남 사천 늑도 유적에서 확인된다. 내부노에서 터널식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모두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확인되는 형식이다.

야외화덕은 공동점유형과 부속형으로 나누어진다. 공동점유형은 화덕자리를 중심으로 집자리가 배치된 형태와 하나의 집자리 군에서 떨어져 분포하는 형태가 있다. 이는 구성원들의 공동취사와 공동난방의 형태를 띠는 것으로 공동제의나 축제를 행하기 위한 시설로 생각된다. 부속형은 집자리 내부에 화덕자리가 없고 외부에 있는 형태와 내부에 집자리가 있으면서 외부에도 있는 형태가 있다. 이는 구성원들에 의해 공동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계절용이나 내부노의 보조시설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전기에 비해 중기에 야외노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윤호필)

참고문헌

  • 한국 상고시대의 노시설 연구-호남지역을 중심으로-(이민석, 전북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94년)
  • 수혈건물지 조사방법론(취락연구회, 2000년)

동의어

노지(爐址)

참조어

구덩식 화덕자리, 돌두름식 화덕자리, 위석식노지(圍石式爐址), 돌깐돌두름식 화덕자리, 석상위석식 노지(石床圍石式爐址), 무시설식노지(無施設式爐址), 부석식노지(敷石式爐址), 수혈식노지(竪穴式爐址), 야외노지(野外爐址), 판석식노지(板石式爐址), 터널식노지, 토광식노지(土壙式爐址)